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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상(藥象, Character) 


한의사들에게 장상( 藏象 ) 은 익숙하지만 '약상'이라는 용어는 매우 낯설다. 어느 학교 어떤 과목에서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6세기에 출간된 『동원시효방( 東垣試效方 ) 』의 "약상문( 藥象門 )" 에서 자세히 다루어졌고, 그 이전부터 이미 '약상'에 대한 이론이 존재하였다. 필자도 만일 식치방( 食治方 ) 을 실용화하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면 이 약상이라는 용어에 대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임상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고 한약 처방을 내리는 데에 약상은 고려할 요소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약은 쓰건 달건 처방대로 달여서 마시면 되지만, 식치방을 실용화하려면 그 식치방의 효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도 있는 음식-약선 음식-이 되어야 한다. 지난번 칼럼에서, 한국약선연구원이 설립된 2001년까지 "여러 가지 맛내기 식품들을 가미한 약선방에 그 기본이 된 식치방의 효능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는지 아닌지를 평가할 객관적 논리"가 없어 고민하던 중 새로운 '관계의 끈'이 만들어졌고, 10여 년 동안 보완되고 정밀해져 오늘날의 '약선설계론'이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것이 가능하도록 했던 가장 핵심적인 키워드는 '약상'이었다.


한의학에서 모든 본초는 일정한 맛(Taste)과 성질(Nature)로 표현된다. 그러면 그 맛과 성질이 어우러져 어떻다는 말인가? 그에 대한 대답이 바로 약상(Character)이다. 결혼을 앞둔 처녀 총각이 유형적인 상대의 육체만 보지 않고 무형적인 성격이나 인격 등을 종합하여 총평을 하듯이 본초도 "맛으로 표현되는 유형적인 특징" "성질로 표현되는 무형적인 특징"을 종합해야만 비로소 그 본초에 대한 총평을 할 수 있는데, 이 총평이 바로 약상인 것이다.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공전하면서 지구상의 모든 물질이 열역학 제2법칙의 영향을 받아 한열( 寒熱 ) 의 반복과 사계절이 온다. 다만 입자 운동이 활발한 대기와 그 반대인 지표면은 열전도의 속도에 차이가 있으므로, 지표면에 뿌리를 내리고 대기를 마시며 사는 본초가 동일한 시공의 조건에서 받는 대기의 영향과 땅의 영향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차이에서 비롯되는 특징을 나타내기 위해서 모든 본초에 공통되게 부여한 표현이 "맛과 성질"이며 이것의 총평이 약상이다.

한의학은 원래 모든 물질이나 생명체 사이의 비정상적인 '관계'를 정상적인 '관계'로 돌리는 방법을 연구해온 학문이다. '관계(Relationship)'라는 용어는 우주, 자연계, 인간의 생로병사 등을 가장 명료하게 설명할 수도 있는 용어이다. 본초가 인체 내에서 어떤 효과를 내는가 하는 것도 인체와 그 본초 사이의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려면 가장 먼저 모든 존재에 공통된 특징을 일정한 형태의 언어로 표현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 언어가 바로 맛, 성질, 약상이다.


자연, 자연의 산물인 본초, 그리고 인체에는 모두 동일한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 그리고 가장 기본적인 동일성은 본초끼리 혹은 본초와 인체가 상호 관계를 가지기 이전, '유형적인 그 무엇' '무형적인 그 무엇'의 융합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존재의 본체'에 있다.


이안평가(李安評價, Lee-Ahn Evaluation) 


한의학적인 본초의 본체는 '약상'이다. 그리고 본초학적으로 맛과 성질이 부여된 본초들은 약상에 따라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둘 이상의 본초를 합하여 만든 처방의 상( ) 은 약상처럼 분류할 방법이 없다. 사실 이것이 가능해야만 '어떤 식치방' '그 식치방을 기초로 하고 맛내기 식품을 가미한 약선방'을 비교할 수 있는 '둘 사이의 끈'이 만들어 질 수 있고, 어쨌든 이런 끈이 있어야 비로소 콩이든 팥이든 거론할 '거리'라도 있지 않겠는가.


이상의 ''이 만들어졌다고 가정할 때, 최종적인 목적-어떤 식치방에 여러 맛내기 식품을 가미해도 동일한 병증에 사용할 수 있는 약선방을 만드는 것-을 이루려면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문제를 풀어야만 했다. 첫째, 여러 본초가 합해진 '처방의 상'도 약상처럼 분류하려면 어떤 표현방법으로 약상을 나타내야 할까? 둘째, 처방의 상이 동일하다고 하여 반드시 동일한 병증에 사용할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이 관계는 어떻게 설명되어야 하나?


우선 처음 문제의 해답은 숫자로 표현해야만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2001년에 약상을 4가지로 분류하여 수치를 대입하였고, 10여 년 동안 수 천 가지의 처방에 숫자를 대입하면서 검토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의 방법이 만들어졌다. 다음 문제는 "일정한 조건 하에서의 동일성 논리"로 설명이 가능하다. 60kg이던 아들이 먼 외국에 있다가 1년만에 80kg이 되어 돌아와도 몰라보는 가족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만일 부분적이고 비대칭적으로 살이 찐다면 전혀 다른 모습이 되겠지만 그렇지 않고 골고루 쪘기 때문에 그 '( )' 은 변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60kg이던 아들'이 한방 고전에서 선택한 '어떤 식치방'이라 가정하고, 여러 가지 맛내기 식품들을 가미하여 약선방을 만들 때, '80kg으로 돌아온 아들'이 되도록 일정한 기준 하에서 재료를 선택하고 가미한다면, 의도하는 바대로 '원래의 식치방 효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맛도 있는 약선방'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아들에 해당하는 식치방이 그대로 잔존한다는 조건 하에서 최종적인 약선방의 상( ) 을 처음 식치방과 동일하도록 만들어 '살찐 아들'이 되도록 한다는 뜻이다.


여기에서 약상을 어떤 방법으로 수치화하여 처방에 대입하였는가 하는 점과 아들에게 옷을 입혔다가 동일한 구조이고, 통만 더 큰 옷을 입히는 문제와 비슷하다. 종류는 중요하지 않다. 정장일 수도 있고 운동복일 수도 있다. 처음 옷의 팔이 길게 나왔으면 다음 옷의 팔도 그대로 길면 된다. 문제는 살만 쪘을 뿐 동일한 아들이라는 것을 간접적으로 증명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다. , 그 수치 자체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목적이 아니라 순전히 수단이라는 것이다. 장자의 표현대로 "저것이 달이다"라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이 중요한 것이지 '손가락'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다. 손가락을 젓가락으로 대신해도 전혀 달라지지 않는다.


필자는 맛과 성미의 등급을 5개로 나누어 1부터 5까지의 정수를 부여했지만, 그 등급이 바뀌어도 괜찮고 숫자를 달리해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식치방과 약선방이 동일한 조건으로 평가되면 되지 그 결과가 '무엇'이라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동안 필자에게 교육을 받은 사람들 대부분이 참으로 희한하게도 이 수치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했다. 예컨대 말이란 뜻을 전달하고자 존재하기 때문에 혹간 애정을 표현하되 욕지거리 비슷한 언사를 해도 원래의 뜻만 이해하면 되련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쾌하게 받아들인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고 하면서.


아무튼 이런 원리로 최종 약선방이 처음 식치방의 효과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리도록 하는 평가법을 '이안평가'라 명명하였다.


※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KMCRIC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문생 박사의 약선설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