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고민
요즘 일하는 엄마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다보니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면서 생기는 고민 또한 늘어나고 있다. ‘내가 과연 지금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것일까?’ ‘내가 직장일을 하느라 아이를 잘 보살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이가 아픈 것이 혹시 이 이기적인 엄마 때문은 아닐까? 내가 직장을 관둬야 할까?’ 혹시라도 아이가 아프거나 칭얼대기라도 하면 내가 직장을 다니느라 아이를 잘 보살피지 못해서 그런 것인 양 마음이 찔리고 아프기 그지없다.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일까? 이 질문에 답을 찾아보기 위해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 역사 속의 두 엄마에 관한 얘기를 해보자. 우리 역사 속에서 아주 유명했던 두 엄마의 예를 들어보면서 좋은 엄마가 어떤 엄마일지 생각해보자.
건강하지 못했던 엄마
사극 드라마에서 가장 많이 다루어진 조선의 여인은 아마도 장희빈이 아닐까 싶다. 중인의 신분으로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국모가 되었다는 사실 하나 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치열하고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갔는지를 엿볼 수 있다.
흔히들 장희빈을 조선 최고의 악녀로 알고 있지만 나는 그저 몸과 마음이 아팠던 불쌍했던 한 엄마로 보고 싶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아픔들이 꽤나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장희빈에게는 아들이 한 명 더 있었다. 왕비에 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 한 명을 더 낳았다. 그런데 불행히도 알 수 없는 이유로 그 아들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후에 급사해 버렸다. 갓 해산한 장희빈에게는 무척이나 큰 슬픔이었을 것이다.
또한 그녀에게는 오랫동안 앓았던 몸의 병도 있었다. <승정원일기> 숙종 19년 2월 21일의 기록을 살펴보면 내의원 의관들이 당시 중전의 자리에 있던 장희빈에게 숙환(宿患)의 병세가 있음을 보고하는 내용이 보인다.
숙환이란 말 그대로 오랫동안 앓았던 질병을 뜻한다. 그녀에게는 담화(痰火)의 질병이 오랫동안 있었다. 아마도 입궁 이후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면서 노심초사하는 것으로 인해 생긴 마음의 병이 아닐까 싶다. 갓 태어난 아들이 갑자기 죽자 이 숙환은 더욱 심해졌다. 장희빈은 조선 최고의 여인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결국에는 몸도 마음도 건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귀하디귀한 아들이자 세자였던 경종은 건강했을까?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보면 경종은 전혀 건강하지 못했다. “내가 이상한 병이 있어서 십여 년 이래로 조금도 회복될 기약이 없다.” “임금이 항상 병을 앓고 있어서 강연을 오랫동안 폐지했다.” “임금이 동궁에 있을 때부터 걱정과 두려움이 쌓여서 드디어 형용하기 어려운 병이 생기게 되었는데, 해가 갈수록 더욱 고질이 되어 화열(火熱)이 위로 오르면 때때로 혼미하기도 했다.” 이렇게 경종의 병에 관한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여기저기서 보인다.
철저한 신분제 사회인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유일하게 중인의 신분으로 국모의 자리에까지 오른 놀라운 기록을 남긴 장희빈이라는 여인은 전혀 건강한 삶을 살지 못했던 것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한 엄마 밑에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경종이 세자 시절부터 앓았다고 하는 이 이상한 병의 원인이 엄마의 건강하지 못했던 삶과 충분히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건강했던 엄마
이제 시선을 돌려 몸과 마음이 건강했던 엄마의 예를 살펴보자. 바로 율곡 이이의 어머니인 신사임당이다. 신사임당은 어려서부터 그림에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또한 당시 여성들은 가까이 하기 힘들었던 한문 경전을 공부하기도 하였다. 신사임당의 아버지는 뿌리 깊은 남존여비의 사상을 지녔던 여느 조선 시대 남자들과는 달리 딸의 재주와 능력을 무척이나 아끼고 존중해줬다. 그래서 사위를 고를 때에도 시댁의 재산이나 지위를 보지 않았고 딸이 계속 그림을 그리면서 재주를 펼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는가를 보았다. 매우 트인 시각을 가진 분이었던 것 같다.
신사임당은 이원수라는 이에게 시집을 갔다. 신사임당의 친정도 그저 평범한 집안이었지만 남편인 이원수 역시 과거를 준비하던 그저 그런 인물이었다. 요즘 말로 하자면 두 집안 모두 평범한 소시민의 집안이었던 것이다.
신사임당은 4남 3녀를 모두 친정에서 낳았고 친정에서 길렀다. 친정에서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하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았다. 잘 먹고 잘 쉬니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했다. 그렇게 건강하니 배움에 정진하여 끊임없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할 수도 있었다. 또한 일곱 명의 자식들을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었다.
그 결과 아들인 율곡 이이를 역사에 이름을 남긴 뛰어난 학자로 길러낼 수 있었다. 그 바탕에는 건강하게 살았던 엄마 신사임당이 있었다.
장희빈과 신사임당의 사례를 비교해 보자면 자식을 잘 키우려면 엄마가 먼저 건강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중인의 신분으로 한 나라의 국모에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건강하지 못했던 엄마 장희빈, 그리고 평범한 집안에서 이름 없는 여인으로 살았지만 건강했던 엄마 신사임당.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못했던 엄마 밑에서 자랐던 경종은 세자 시절부터 이름 모를 병에 시달렸고 나라를 제대로 다스리지도 못했다. 몸과 마음이 건강했던 엄마 밑에서 자랐던 율곡 이이는 건강하게 자라 조선 성리학의 한 획을 긋는 대학자가 되었다. 어떤 엄마가 자식을 잘 키운 엄마이겠는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가 좋은 엄마
이제 어떤 엄마가 좋은 엄마인지에 대한 나만의 답을 내려 볼까 한다. 집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좋은 엄마가 아니다. 그렇다고 직장을 다니는 엄마가 나쁜 엄마도 아니다. 자식을 위해 무조건적으로 희생하고 헌신하는 엄마가 좋은 엄마도 아니다. 물론 아이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것은 부모가 갖춰야 할 덕목임에 분명하다. 그렇다고 그 희생이 엄마에게 불행한 마음이 들게 할 정도라면 이는 하지 않으니 만 못한 희생이다. 결국 좋은 엄마는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이다.
동의보감에 이런 구절이 있다. “엄마가 편안해야 아이도 편안하여서 아직 생기지 않은 병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母安子安 可消患於未形也)”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로 키우기 위해서는 먼저 엄마부터 몸과 마음이 편안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니 가장 좋은 엄마는 자식을 내팽개치고서 사회적으로 성공한 엄마도 아니고 자식만을 위해서 자신을 무조건 희생하는 엄마도 아니다. 가장 좋은 엄마는 ‘건강한’ 엄마다. 건강한 엄마가 성품도 건강하고 인생도 바르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 아이를 잘 키우고 싶다면 엄마의 건강부터 챙기라고 말하고 싶다. 건강한 엄마가 건강한 정신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