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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병명부터 바꾸자


우리 아이들이 ‘꼬부랑 할머니’로 기억하는 시할머니는 90세 넘어까지 사셨다. 팔십 중반에 몸피가 바짝 줄어 눈이 어두워지시고 걷지를 못하셔서 앉은뱅이로 밀고 다니셨다. 딸이 의사, 사위는 한의사, 손녀는 약사인 의료계 가족들이었지만 자연의 생로병사 법칙 앞에 어쩌랴, 예지력과 총명함을 갖춘 아담하고 고우신 어른이었다. 마지막 3년은 기억력이 저하되고 거동이 불편하셨지만, 천천히 돌아가실 준비를 하셨다.


오늘날 65세 인구의 10%는 치매로 추정되고, 70세가 넘으면 이미 뇌가 줄어 2cm가 넘는 빈 공간이 생기며, 85세 되신 분들의 40% 정도는 치매라고 한다. 치매에 대한 두려움보다 대비책을 알아보자.


치매는 염증, 영양 불균형, 체내에 쌓인 독성물질 등 여러 원인의 복합작용으로 발병한다. 나이 들면 장기기억보다 최근에 입력된 것부터 날아간다. 자식과 손주는 알아보는데 최근에 일어난 일은 모르는 식으로. 오래된 당신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자체로 ‘동화’이고 ‘소설’이다. 현재는 모른다. 없다. 가끔가다 처녀 시절 고향집에 당숙이 어쩌고 중신아비가 다녀가고는 아는데 세월이 흘러 당신이 이미 할머니가 된 기억은 깜박거리신다. 휴전선으로 갈라져 못 가본 지 몇 십 년 된 고향집, 처녀 적 꿈 많던 소녀 시절로 돌아간 것이다. 난 알았다. 할머니가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추억은 누구의 아내 어머니 할머니가 아니라 부모님 사랑받으며 동무들과 수놓고 깔깔거리던 애기씨 당신이라는 걸.


지금 같으면 시할머니를 ‘치매’라고 불렀을 테지만 가족들 아무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위중한 병으로 급히 돌아가시는 분도 있지만 느리게 한발 한발 퇴행하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럽지 않은가. 치매(痴呆)의 한자 뜻은 '어리석다', '미련하다', '미치광이'라고 되어있다. 인지장애가 심하다 해도 치매라는 병명은 아주 불편하다.


옛날엔 치매 공포가 크지 않았다. 어느 집 어른이 자리보전하고 누우시면 동네 사람들이 논밭에 오가다가 죽 한 그릇 과일 한쪽이라도 들고 수시로 안부를 살펴 가며 보살폈던 ‘복지공동체’였기 때문이다. 거동이 불편해도 지팡이에 의지해서 햇살을 쪼이며 앞마당을 거닐고 능력에 맞는 소일거리로 끊임없이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그 시절, 살아있는 모든 활동 자체가 재활 치료였다. 재촉하지도 않고 천천히 준비되고 받아들여지는 자연사의 축복이 당연시되던 시절이었다. 자연과 공동체에서 멀어진 지금의 핵가족 아파트 시대는 부모와 자식 세대의 격리와 단절을 가져오고 노화와 죽음을 공공의 적처럼 장애와 퇴화로 생각한다. 나이 듦, 노화는 겨울나무처럼 단출하게 몸 살림을 줄이고 뇌 기억을 지우며 자연스러운 소멸의 과정을 밟아가는 여정이 아닐까. 아기 때 하나에서 열까지 부모에 의지하고 젖 빨아 먹고 똥 기저귀 치우게 했던 빚을 나이 들어 갚는다.


치매는 진단이 나오는 순간부터 온 가족과 자신에게 공포를 준다. 기억력이 약해지고 단어 생각이 잘 안 나서 의사 표현이 부정확하며 방향감각이 둔해져 길을 잃기도 하고 돈 계산, 나이, 시간 개념이 줄어든다. 감정의 변화가 달라져서 성격도 바뀔 수 있다. 일반인들은 ‘증상’을 이해 못하고 ‘인격’과 결부시켜 망령이니 노망이니 말하게 된다. 하지만 ‘정을 떼느라고 그러시는 것’이라고 이해하려 노력했던 윗세대처럼 자연스럽게 노화와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치매라는 공포와 모멸적 단어로 병에 대한 사회 인식은 더욱 나빠진다. 좀 더 예의와 존중을 담은 병명을 생각해보자.



혈압과 영양 관리가 기본~


기억력이 약해져 건망증이 생기신 어르신, 형제끼리 서로 돈 꿔주고 안 받았다고 싸움이 났다. 적어 놓은 게 있긴 한데 주는 걸 잊은 것인지 돌려받고 나서 지우는 걸 잊어버리신 걸까. 단돈 10만 원에 딱 둘만 남은 아우 형제가 의가 상했다. 보다 못한 자식들이 화병도 치료할 겸 중풍에 치매도 걱정되어서 모시고 왔단다. 상황을 설명하는 자식까지 못마땅하신 듯 째려보신다.


“아 글쎄 늬들이 어떻게 내 속을 알아?” 버럭 씩씩.
잽싸게 내가 끼어들 차례다.
“지금 혈압이 높고 맥박이 빨라져서 까딱하면 중풍 오실까 걱정이 돼서 자식들이 모시고 온 것이죠. 10만 원이 중요해요, 안 쓰러지시는 게 중요해요?”
“고혈압 약은 벌써부터 먹고 있는데 뭘~”
“약 드셔도 이렇게 분하다고 속 끓이고 잠 못 주무시면 흥분이 돼서 더 올라가지요. 화산 폭발하듯 터지면 고생하는 거 다 아시잖아요. 수도 파이프 삭듯이 혈관이 찢어질 수 있어서 중풍이 오기 쉬워요. 제일 무서워요.”


암은 고통스러울지언정 의식이 있어 본인 의지대로 투병과 삶에 대한 조절이 가능하지만 다들 아시다시피 뇌졸중은 혈관성 치매까지 후유증으로 나타나니 두려움을 자아낸다. 이를 막으려면 우선 혈압이 너무 높지도 낮지도 않게 알맞게 유지되어야 한다. 혈관은 원래 탄력이 탱탱한데 내벽에 상처와 기름이 끼어 막히면 굳고 딱딱해지는 경화가 일어난다. 온몸에 도는 혈관은 9~10만km나 되니 코피나 피멍이 들 수도 있지만, 뇌에서만은 노후 수도관처럼 터지지 않고 막히지 않으면 진짜 감사한 일이다. 연세 들어도 건강하고 깨끗한 혈관을 유지하게 혈압과 영양 관리가 중요하다. 한편 영양 부실하고 저혈압이 오래되면 뇌까지 혈액을 밀어 올리는 힘이 달려 뇌 순환이 약해지니 귀찮으시다고 끼니를 거르시는 것은 좋지 않다.



혈관이 깨끗하면 금상첨화


과거 한국 전쟁 때 전사한 미군 병사들을 부검한 결과 젊은데도 이미 관상동맥 경화가 진행 중이었는 데 반해 한국군 전사자들의 혈관은 깨끗했었다고 한다. 이후 60여 년이 지나는 동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사에서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도 서양처럼 2~3배 이상 늘어 평균 콜레스테롤 수치는 높아져 가는 추세다. 총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이 200mg/dl을 넘지 않도록 유지하는 것이 좋다. 여기에 복부 내장지방이 적당하고 날씬하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남성인데도 배가 빵빵해서 곧 출산(?)할 것 같다면 복부지방이 바로 간문맥으로 밀고 들어가 지방간을 만든다.


다행히 이 어르신은 부지런한 성격에 몸매는 나무랄 데 없으시나 성격이 급해서 ‘버럭’이 먼저다. 어렵게 자수성가하신 분이라 허랑방탕해 보이고 잘 놀고 웃는 동생이 늘 맘에 안 드셨던 모양이다. 앞뒤 가릴 것 없이 분기탱천하시더니 까딱하다간 엄청 손해란 걸 아시고는 마음을 편하게 먹기로 정리하셨다. 성격 급하신 분들의 특징이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것처럼 뒤끝이 없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맞다. 마음도 먹어야 하는 것. 하지만 당신의 뇌력 저하도 부인하지는 못하셨다. 어두운 날 저녁에 외출했다 갑자기 길이 낯설어져서 잃을 뻔했던 일을 얘기하시며 정말 놀라셨다 하신다. 다짜고짜 약 처방보다 설명과 납득이 먼저다.


“뇌 세포가 아무리 많아도 나이 드시면 뇌로 들어가는 혈관이 굳어지고 혈액의 양이 줄어들어 영양이 부족해지니까 자꾸 둔해지고 기억력이 나빠지는 것처럼 느껴지세요.”


나이 들어도 뇌는 꾸준한 자극 활동으로 시냅스나 수상돌기들을 만들어 내지만 속도가 느려지고 민감성이 떨어진다. 뇌 세포 자체도 발전소인 미토콘드리아의 에너지 생산능력이 떨어진다. 특히 저혈압이나 저혈압으로 인해 혈액 공급이 줄어들면 뇌가 수축하여 정신 기능이 떨어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뇌의 부피는 일 년에 평균 0.2%씩 줄어들어 70세가 되면 10%가 감소하지만, 시냅스가 줄어들면 구성 성분을 팽창시켜 공백을 메우고 다른 신경 부위들을 소집하고 재편성해서 더욱 일을 열심히 한다.


나이 들면 재빠르지는 않지만 신중하고 현명한 판단을 하게 만드는 것도 경험의 축적과 함께 뇌의 놀라운 유지능력이 가진 결과다. 오래된 컴퓨터가 느려지고 가끔은 커서가 깜박거리긴 하지만 구석구석 저장된 추억과 자료들로 인해 애착이 간다. 우리의 뇌는 한번 출시되면 새 모델로 바꿀 수 없지만, 사용자가 정성 들여 고장 나지 않게 잘 쓰면 되는 것. 잠 잘 자고 운동하고 혈관을 깨끗하게 하고 혈액 공급을 충분히 해주는 것이 총명한 뇌 건강법이다.



웃는 뇌, 맛있는 뇌가 젊다


어르신들 모임에서 각자 돌아가며 모교의 교가를 부르고 있었단다.
“동해 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한 분이 교가를 우렁차게 부르셨다.
“아니 자네가 나하고 같은 학교 출신이구먼. 동창인 줄 여태껏 모르다니...ㅋㅋ”


나이 들어가며 기억력 감퇴는 뇌 기능의 노화, 신경세포의 소실, 신경전달물질 생성 부족, 수용체 전달능력 저하 등 어렵게 설명하자면 한이 없다. 기억력 저하의 가장 큰 원인인 고혈압, 당뇨, 심장병 같은 지병을 갖고 계시면 더욱 약해진다. 또한, 담배와 술 같은 불량 습관으로 뇌 기억회로를 약화시키는 것도 만만치 않다.


만성 질환을 관리하는 것은 기본이다. 치아가 나빠지니 식사를 대충 하는 것, 한쪽 턱으로 씹는 것도 뇌에 나쁘다. 특히 평소 경직되고 엄격한 모범생 완벽주의자들이 스스로 아픈 것, 기억력 약해지는 것을 못 참아 하신다. 성격을 너그럽고 유연하게 명랑하고 쾌활하게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도록 미리미리 연습하시는 게 어떨까. 높은 지위 폼 잡고 어깨 힘들어 갔던 분들이나, 세상 눈치를 보느라 하고 싶은 일을 못하신 한 많은 분이면 적극적으로 노력하시면 좋을 것이다.


혹독한 시집살이, 고함치는 상사, 버럭하는 남편한테 맨날 당하고 살아온 부인들. 화병으로 한 번에 폭발하면 더 무섭다. 수직적인 상하 내외 인간관계 스트레스 지수가 유난히 높은 우리나라. 놀지 못하고 죽도록 뼈 빠지게 일만 하는 분들이나 억압적인 분들이 말 그대로 병이 나기 쉽다. 이 세상 한 번 왔다 가는 거 눈치 보다 체면 차리다 한이 남는다. 억울하다. 남들은 잘 노는데 자신은 남사스러워 못하는 것이 따지고 보면 속으론 부러운 욕망이다. 100원짜리 고스톱 광사고 팔면서 매일 웃고 재밌게 살아야 한다. 이다음에 일 다 해놓고 놀아야지... 행복해야지... 근데 시간이 안 기다려준다니까. 


펜필드의 뇌지도에 따르면 신경은 정보량에 따라서 많은 쪽이 발달되어 있다. 면적이 넓은 몸통보다는 얼굴과 손의 신경이 훨씬 많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정보가 들어오는 눈과 미각과 언어를 담당하는 혀와 입술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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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를 건강하게 하려면 맛난 것으로 자극하고 칭찬과 긍정 언어로 뇌에 생기를 주자. 유쾌한 수다와 맛있는 음식으로 에너지를 채우고 스트레스를 풀자. 젊은 시절 뇌는 식욕과 성욕이라는 욕망의 쌍두마차로 달려갔으나 성욕 관심은 줄어드는 노년이다. 그럴수록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과 감사, 생명의 소중함으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 웃음은 뇌의 고급한 능력이다. 유머를 구사하고 웃음을 터뜨릴 때 뇌는 반짝반짝 넓은 면적이 활성화된다.


알츠하이머를 30여 년간 연구한 닥터 데일 브레드슨 박사의 책 <알츠하이머의 종말>에 의하면, 밀가루, 우유, 설탕 등의 식품이 문제가 된다고 하니 빵, 과자 등의 간식은 줄이는 것이 좋다. 대신 달걀, 바나나, 사과, 견과류, 콩물, 두유, 포도, 복숭아, 자두 등 자연식품 그대로 손쉽게 먹을 것은 많다.


맛있는 음식과 미각은 뇌 신경이 지배하며 전두엽의 인지 기능을 활성화한다. 얼굴에는 눈, 코, 귀, 혀, 안면 등 감각과 운동신경이 모여 있다. 젊을 때는 주름 생길까 봐 미용상 마사지를 했다면 나이 들면 뇌를 자극하고 똑똑하게 하기 위해 만져주면 좋다. 손바닥을 비벼 열을 만들어 눈을 덮어주고 귀는 옆으로 잡아당겨 펌핑하듯 자극을 준다. 귀밑, 턱밑, 혀밑에 있는 침샘도 꼭꼭 눌려주고 침을 모아 삼키는 운동도 해본다. 음식을 씹고 혀를 굴리고 꿀꺽 삼키고 소화시키고 배설시키는 능력도 뇌 신경이 지배한다. 꽃동네 요양원 입구에 쓰인 글귀처럼 ‘내 손으로 밥을 먹을 수 있을 때가 행복이다.’



Reference


<알츠하이머의 종말> 젊고 건강한 뇌를 만드는 36가지 솔루션 | 데일 브레드슨 저/박준형 역/서유헌 감수 | 토네이도 | 2018 | 원제 : The End of Alzheimer's: The First Program to Prevent and Reverse Cognitive Decline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