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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구이저우는 청정한 자연이 살아 있는 땅이다. 그곳에서 장쾌한 폭포와 함께 오랜 지혜가 담긴 간장을 만났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절경


목적지는 구이저우(貴州)성인데, 비행기가 내린 곳은 쓰촨(四川)성의 충칭(重庆)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 츠수이(赤水) 지역이 쓰촨성과 구이저우성의 경계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남서쪽에 위치한 구이저우성은 그동안 중국인들에게 늘 멀고 험한 땅이었다. 오죽하면 ‘땅의 8할은 산이고 1할은 물이며 나머지 1할이 밭(八山一水一田)’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일까. 하물며 ‘연중 맑은 날이 3일이 채 못 되고 농사를 지을 만한 평평한 땅도 3평이 되지 않으며,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단돈 3푼도 없다(天無三日晴, 地無三尺平, 人無三分銀)’고도 했다. 그만큼 척박하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땅을 개간하는’ 인간의 눈에 비친 모습일 뿐이다.


구이저우는 드넓은 중국 그 어디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천혜의 자연을 가졌다. 눈길을 두는 그 어디라도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기후는 전형적인 아열대성으로, 습하지만 연 평균 기온이 섭씨 15.6도로 일정하다. 바로 인접한 충칭은 분지 지형이라 한여름에는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덥지만, 구이저우성은 상대적으로 여름에 시원하고 한겨울에도 혹한이 없다. 공기 좋고 물 좋은, 살기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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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칭에서 츠수이까지 차를 타고 세 시간 정도를 달렸다. 도로는 최근에 개발된 듯한 흔적이 역력했는데, 2008년 올림픽을 전후해 중국 정부가 시작한 서부 개발계획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개혁개방 이후 동남부 지역을 우선적으로 개발해 왔다. 그 후 점차 중앙 내륙지역도 개발을 시작했고, 최근 서부 산간지역 개발에도 한창 열을 올렸다. 수천 킬로미터를 가로지르는 개발 속도는 어마어마하다. 동쪽에서 서쪽으로, 개발의 손길이 넘어오는 데는 채 20년이 걸리지 않았다. 도로를 닦는 일 외에도, 도시 개발은 또 다른 역할을 한다.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장소를 세상에 내보이는 것. 숨겨 뒀던 절경들을 하나둘 꺼내 보이고 있는, 지금의 츠수이가 바로 그 예다.



장대한 폭포가 압도하는 풍경


츠수이의 강물은 처음 보는 물빛이다. 검붉은 색의 거대한 강물이 눈앞에서 유유히 흐른다. 보기에 따라서는 핏빛으로 볼 수도 있겠다 싶을 만큼 붉다. 우리 발음으로는 ‘적수하(赤水河)’, 중국 발음으로는 ‘츠수이허’라 불리는 강이다. 양쯔강의 지류지만, 양쯔강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다. 츠수이 지역은 중국에서도 대표적인 단하지모(丹霞地貌) 지형이다. 단하지모는 붉은색 사암과 역암이 오랜 세월에 걸쳐 융기와 풍화, 침식을 거치며 퇴적된 지형을 말한다. 멀리서 보면 마치 노을처럼 붉은빛을 띠는데, 그러니까 단하의 붉은 사암이 강물에 녹아 내려 만들어진 물빛이 바로 츠수이허인 셈이다.


츠수이는 그 자체로 국가가 공인한 풍경구다. 핵심은 폭포인데, 츠수이 지역에만 약 1,000개의 폭포가 있다. 많은 폭포 중에서도 츠수이를 대표하는 폭포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그중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은 쓰동거우(四洞溝). 네 개의 골짜기가 얽혀 있다는 의미란다. 울창한 대나무 숲을 지나면 약 2km에 걸친 수렴동, 월량담, 비와애, 백룡담 4개의 폭포를 차례로 만나게 된다. 그런데 웬걸. 큰비가 내린 직후 백룡담의 물이 불어나 출입이 통제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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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을 풀어 준 건 츠수이대폭포였다. 황궈수폭포 다음으로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크다는 츠수이대폭포는 폭이 60m로 황궈수에 비해 40m 정도 작지만 높이는 76m로 황궈수보다 6m 정도 더 높다. 5~6년 전만 해도 교통이 매우 불편한 오지였던 탓에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츠수이의 단하지모 지형이 세계자연유산에 등재되면서 비로소 세상에 그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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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찾은 폭포는 풔광옌(佛光岩). 츠수이대폭포가 웅장하고 시원한 느낌이라면, 풔광옌은 보는 이를 압도하는 아찔함이 있다. 풔광옌은 츠수이의 단하지모 지형이 가진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가장 잘 보여 준다. 드러나 있는 단하지형의 면적만 1km에 달하고 폭포의 높이는 260m 이상이다.


풍경구 입구에서부터 원시림을 따라 약 1시간 30분 정도를 걷는 길에서는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붉은 바위들과 그 한가운데를 가르듯이 쏟아지는 폭포를 마주할 수 있다. 폭포는 아래에서 보는 것보다 위로 올라가며 감상할 때 더 멋지게 다가왔는데, 보는 내내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거대한 자연 앞에 한낱 인간의 언행이란 얼마나 초라하던지!



120년 된 전통 간장의 감칠맛


츠수이를 따라 길을 달렸다. 구이저우에서 충칭으로 돌아나가는 길을 따라 유유히 흐르는 강물이 모습을 드러냈다가 사라지길 반복했다. 그 사이에 청나라 시대의 방식 그대로 간장을 담그는 곳이 있다고 했다. ‘센스장유(先市酱油)’라는 이름의 간장 회사로, 1893년부터 120년이 넘도록 그 시대의 전통을 고수한다. 간장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곳이니 공장이라 불러야 맞겠지만, 풍광 좋은 츠수이 곁에 자리한 이곳에 공장이라는 명칭은 좀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여느 명인의 작업장이라는 표현이 차라리 자연스러울 만큼 고풍스러운 경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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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오로지 츠수이의 물로만 간장을 만든다. 콩을 쪄서 숙성 발효시키는 건 우리와 별반 크게 다르지 않다. 콩을 항아리에 담아 볕 좋은 마당에 잔뜩 늘어놓고 햇살까지 함께 담아내는 풍경이 다소 이색적일 뿐이다. 마당을 지나 문을 통과해 이 광경을 목격하는 순간 탄성이 터질 만큼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국이든 중국이든 장을 익히는 평화로움은 다른 무엇으로 대체하기 어려운 푸근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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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햇살 사이를 걸어 늘어선 항아리 사이를 거닌다. 이렇게 마당에 항아리를 놓아두고 나면, 사람이 할 일은 별반 많지 않다. 대나무를 쪼개서 엮은 뚜껑을 닫고 열어 가며 햇살이 충분히 스며들도록 해 주는 게 다다. 그 단순한 일상이 반복되는 동안 콩의 입자 사이로 검은 액체가 슬그머니 올라온다. 이곳에서 생산하는 간장은 크게 3년장과 5년장으로 나뉜다. 2년이라는 시간이 맛에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들어 낼까 싶지만, 시간이 숨결을 불어 넣어 빚은 결과물은 결코 그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다. 분명 3년장에 비해 5년장의 깊이가 깊다. 한국의 전통 장과 비교하면 짠 간기는 훨씬 덜하고 감칠맛은 두드러지게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만큼 간장의 아미노산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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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을 담는 과정에 자연에서 얻은 몇 가지 이외에는 다른 첨가물을 일절 더하지 않는다고 했다. 느리지만 간결한 수고로움은 시중에 나온 어떤 제품과 비교해도 더 깊고 미쁜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그 사실을 전국에서 직접 찾아와 간장을 구매한다는 이야기에서 다시 확인한다. 구이저우의 아름다움은 비단 눈에만 황홀하게 와 닿는 것이 아니라 혀끝마저도 감미롭게 만든다. 살아 있는 자연의 힘이란 본디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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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장은 한중일 모두 애용하는 천연 조미료다. 맛을 온전히 살리는 일등 공신이지만 건강에도 아주 좋다. 콩으로 빚어 만들기 때문에 아미노산이 풍부하고 흡수율이 뛰어난 단백질이 많다. 액체 고기라고 불러도 될 만큼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주재료인 대두는 칼륨, 마그네슘, 철분 등의 알칼리 생성 원소가 많아 체액을 알칼리화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또 레시틴 (lecithin)이 함유돼 있어 콜레스테롤 농도를 떨어뜨리거나 뇌 기능을 증진시키고 간과 신장의 기능을 강화해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