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속 핏속에 기름이 뜨면~
비가 오는 꿀꿀한 저녁 퇴근 무렵, 친구한테 술 마시자는 연락이 온다.
“이상하게~ 오늘따라 곱창이 먹고 싶네~”
“왜 남의 곱창으로 자기 순대를 채우려고 해. 너무 이기적이야. 그냥 삼겹살에 소주가 오늘 날씨에 딱 아니야?”
“사는 게 다 잔혹사지. 저는 닭을 잡아 본 적도 없이 통닭 좋아하면서... 남의 손에 피 묻혀서 먹고사는 게 우리 인생이잖아. 미안시럽지만~”
사실 삼겹살이나 곱창구이 먹어봐라. 그 기름방울이 세제 거품처럼 핏속에서 엉겨 끈적거릴 것이다. 몸속에는 수많은 갈래의 핏줄이 시냇물과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50억 개의 모세혈관, 1억 6천만 개의 동맥과 소동맥, 5억 개의 정맥과 소정맥에 모세혈관까지 합하면 총연장 9만~10만km가 된다. 손끝 발끝의 말초에 이르면 혈관은 머리카락보다 가늘어져서 모세혈관이라고 불리며 내경이 가늘어지기 때문에 적혈구도 짜부라져서 일렬로 통과해야 한다.
혈액순환의 가장 큰일은 모세혈관에서 이루어지는 물물 교환이다. 각각의 세포가 주문한 효소, 호르몬, 미네랄 및 영양분을 배달하고 산소를 보충해준 다음 노폐물과 탄산가스를 받아온다. 혈액이 통과하는 짧은 순간에 신속한 물류 교환이 일어난다.
혈액순환이 잘되려면 심장 건강이 전제 조건이다. 아프리카나 북한과 비교해서 잘 먹고 잘 살기 때문인지 우리에게는 피가 부족하지는 않으나, 혈관이 나빠지고 순환력이 떨어져 배분이 안 되는 순환 장애가 많다. 혈액순환 장애는 신호를 보내서 알려준다. 손발이 저려서 내 몸이 남의 살 같고, 두드려야 시원하고, 뒷골도 당기고, 두피가 스멀거리고 감각이 달라진다. 중풍이 온다고 벌벌 떨기 전에 혈관의 청결도, 탄력도, 혈압에 신경을 쓰셔야 한다. 건강은 바로 모세혈관의 깨끗함과 탄력성과 혈액의 신선도에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혈관이 좋으려면 혈압이 적당하고 피의 점도가 너무 묽지도 않고 짙고 끈적이지도 않아 잘 흘러가야 한다. 흐름을 막는 기름기와 내막에 달라붙는 찌꺼기도 적어야 하니 혈관을 맑은 개울처럼 깨끗이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내가 어제 먹은 삼겹살은 하얀 기름기가 장을 거치며 기름방울은 단백질과 결합하여 핏속을 떠다닌다. 파수꾼인 대식세포가 이것을 잡아먹어 합성세제의 거품처럼 포말로 만들어 혈관 벽에 침착하게 된다. 곱창구이를 시켜보라. 구멍 안에 반쯤은 기름이 붙어 있을 것이다. 혈관에도 쓸데없이 기름방울이 많으면 점도가 높아지고 흐름의 속도가 나빠진다. 혈관 지름이 절반으로 좁아지면 탄력성이 줄고 동맥경화가 되어 혈액의 압력은 몇 배로 높아져서 파열할 위험도 커진다. 혈관을 깨끗하게 하면 심장의 관상동맥, 뇌로 올라가는 경동맥, 성기로 가는 음경동맥 등 어디든지 다 같이 깨끗하게 좋아지니 일거삼득!
중풍 공포, 혈압만 조절해도 예방
젊은 환자들에게 흔히 듣는 질문 하나.
“목이 자주 뻣뻣하고 뒷골이 당기면서 얼굴이 이상해요. 손발이 화끈거리고 저리는 일도 자주 있고요. 혹시 이런 거 중풍기 아니에요? 병이 올까 봐 제일 겁이 나요.”
“너무 겁먹지 마세요. 뇌에서 빠져나온 전선줄인 뇌 신경의 문제일 수도 있고 목 근육 자체의 피로나 경추신경 때문일 경우가 많아요. 중풍의 제일 중요한 요인은 바로 고혈압이에요.”
중풍의 예고편은 얼굴이나 팔다리가 마비감이 있거나 저리고, 팔다리 힘이 쭉 빠진 것 같고, 말이 어눌해지고 잘 안 나오고 더듬거리는 것, 눈앞이 흐려지거나 물체가 두 개로 보이는 증상들이다. 당장 쓰러지지 않았더라도 진찰을 받아야 한다.
한의사인 나도 중풍이 제일 두렵다. 인간의 존엄성과 품위를 지키기 어렵고 타인의 도움과 자비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족이 중풍에 걸려도 지켜보며 간호하기 힘들고, 본인이 환자의 입장이 된다면 더 고통스러운 것이 바로 중풍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망원인 가운데 제일 높은 것은 암, 그다음이 중풍으로 해마다 수만 명이 생명을 잃는다. 목숨을 건지긴 했어도 반신불수나 언어장애, 심하면 식물인간처럼 후유증이 커서 두려운 질병이다. 요즘은 대부분 입원이나 요양 중이어서 주위에서 일반인들이 중풍 환자를 자주 볼 수는 없지만, 병원에는 많은 분들이 투병 중이어서 안타깝다.
내가 한의사가 되고 밥벌이를 하면서 제일 그립고 아쉬워하는 분은 외할머니이다. 외할머니는 초가을 새벽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한의학에서 중풍(中風)이라고 부르는 뇌졸중(腦卒中)은 뇌혈관이 터지거나 막히는 증상이다. 날씨가 추운 이른 새벽 아침에 많이 일어난다. 잠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옷도 제대로 챙겨 입지 않고 찬바람을 쏘이면 몸은 열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혈관은 바싹 수축한다. 여기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느라 힘을 주다 보면 복압이 오르면서 혈압이 더 올라가서 뇌혈관이 터지는 일이 벌어진다.
잠에서 깨면 교감신경이 아침 준비를 하느라 재빨리 흥분하기 시작한다. 낮은 온도에 노출, 밤새 걱정으로 불면, 흡연도 혈관을 수축시킨다. 평소 혈관 내벽에 기름때가 많아 좁아져 굳어있는 혈관을 가진 고혈압 환자에게 여러 변수가 겹쳐지면 0.2~0.4mm에 불과한 가느다란 뇌동맥이 혈압을 못 이기고 터지면서 뇌출혈이 일어나는 것이다. 기름때가 많은 혈관이나 심장병 환자는 혈전 찌꺼기가 떨어져 나와 작은 뇌혈관을 막아서 뇌경색을 일으킨다.
고혈압 환자는 뇌졸중에 걸릴 확률이 보통 사람의 4~5배나 높다. 이완기 혈압을 10mmHg만 낮추면 중풍은 절반 이상 예방되고 심장마비, 신부전의 위험도 크게 줄일 수 있다. 코피가 터지든 팔뚝이 피멍이 들든 목숨에는 상관없는데 머리에서만은 혈관이 터지면 안 된다. 뇌 혈관만 청소하는 법은 없다. 평소 고혈압, 당뇨, 심장 질환이 있는 분, 흡연과 과도한 음주를 하는 분들이 위험하다. 지방식이와 술, 담배를 줄이고, 규칙적으로 운동하고, 싱겁게 먹고, 잠 잘 자고, 혈압 조절 잘하는 기본에 충실하면 몸은 스스로 돕는 나를 도울 것이다.
혈관을 뚫리게 하는 방법들
교통체증에 걸렸다가 차가 술술 잘 빠지면 기분이 아주 날아갈 듯하다. 우리 몸속의 혈관도 그랬으면 좋겠다. 고기 기름을 덜 먹는 생활습관부터 갖는다. 담배는 진짜 만병의 근심거리다. 혈관을 긴장시키고 좁게 만든다. 지금 피우고 계신다면 신속히 담배와 이혼하길 권한다. 금연의 효과와 해독은 기간에 따라 십 년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금연에 실패하더라도 한 만큼 이익이니 좌절 마시고 될 때까지 하면 된다.
식품으로는 혈관 찌꺼기를 녹여줄 수 있는 연어, 꽁치, 고등어 및 생선 기름, 들기름, 올리브오일 등 식물성 기름을 듬뿍 드셔도 좋다. 버터, 마가린이 많이 든 빵과 쿠키는 맛보기로 조금만 드시길 권한다.
채소는 많이 드셔도 좋은데 익혀서 양념을 최소로 하는 것이 건강에는 좋다. 갖은양념이란 요리법은 소금, 간장 등 간이 너무 세서 혈관 건강에는 별로이기 때문이다. 쌈밥도 좋고 미나리, 양파, 케일 등은 혈관을 맑게 유지해주니 살짝 익혀서 드시는 게 훨씬 좋다. 자극적으로 짭짤해지는 나의 혀보다 심심하게 먹는 습관을 들이시라. 소스 찍어 먹는 대신 셀러리, 파프리카, 오이, 당근도 날로 꼭꼭 씹어 드시라. 식탐도 줄고 군살도 내리고 허기는 채워지니 혈관은 생생해질 것이다.
자, 이렇게 모범 식단을 드시면서 할 운동은? 마음과 몸이 긴장되면 혈관은 자율신경의 영향을 받아 저절로 같이 긴장 모드로 오그라든다. 이것을 전신 운동인 걷기와 맨손 체조, 스트레칭으로 쪽 쭉 늘리고 펴주면 최고!
마지막 당부! 화 ‘벌컥’으로 혈압 ‘쭉’ 올라가면 공든 탑이 무너진다. 화내는 것도 습관이니 물 한 잔 마시고 심호흡을 하면 경동맥 근처의 센서가 알아차려 뇌로 신호를 보낸다. 부디 화 풀라는 뇌의 말을 따라 마음을 가라앉혀 무탈하시길 바랍니다.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