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어지럼증이 많아서

앉았다가 일어날 때 갑자기 핑 돌고 아득해지는 어지럼증을 경험해본 사람들이 많다. 고등학교 조회 시간에 운동장에 부동자세로 서서 듣는 교장 선생님의 “에... 또... 마...” 일장 연설이 어찌나 지겹던지. 어찔하고 앞이 깜깜해지거나 휘청하기도 하고 다리 힘이 풀려서 주저앉고 싶어진다. 서 있으면 중력을 거슬러 머리 쪽으로 가는 뇌 혈류가 부족해서 기립성 저혈압으로 허혈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여자들은 신체 기능상 만성 혈 부족증에 시달리기에 십상이어서, 저혈압이면서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 증상이 특히 여성들에게 많다. 여성들은 35년 동안 매달 월경을 하고 임신 출산 모두 혈액과 영양분을 쓰기 때문에 혈액이 충분히 보충되지 않으면 혈 부족증에 빠진다.

생리량이라도 펑펑 많아 보라. 골이 지끈거리는 알 수 없는 두통에 진통제도 잘 안 듣는다. 임신해도 태반이라는 혈액 공급장치를 통해서 엄마의 몸에서 아기 쪽으로 혈액을 보내 영양분을 공급한다. 출산하면 먹이는 젖도 혈관에서 뽑아낸 물질이니 모든 게 혈을 소모하는 일들이다.

어지럼증은 단순히 철분이 있고 없고의 문제만은 아니다. 요즘은 그나마 식생활이 좋아져서 순수하게 영양과 혈액 총량이 부족한 진성 빈혈은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머리 쪽으로의 배분의 문제는 남는다.

이렇게 오묘하고도 어려운 뇌 순환을 생각할 때 차라리 헬멧처럼 머리를 밤에는 떼어서 잘 두었다가 아침에 덜컥 쓰고 나오면 걱정이 없을 터인데 그럴 수도 없다. 혈압이 떨어지는 저혈압은 ‘게을러 보이는’ 병이다. 가장 큰 특징은 만성 피로와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머리 쪽에 허혈증이 생기면

네발짐승들은 심장과 머리 높이가 같아서 뇌 순환에 전혀 문제가 없다. 그러나 사람이나 학처럼 목이 길고 뇌가 심장보다 높이 얹혀 있는 직립 동물들은 혈액 순환의 구조가 좀 특수해야 한다. 기린은 롱다리에 목이 아주 길어서 고혈압이다. 머리가 아주 높기 때문에 혈압 즉 수압이 높지 않으면 피가 꼭대기까지 올라갈 수가 없다.

우리 몸은 머리가 심장 높이보다 50~60cm 이상 높다. 몸에는 총 혈액이 4~5L 정도 있다. 그러나 생각 좀 해보자. 혈액도 물인데 아래로 흐르기 쉽지 거꾸로 위로 역류하기 힘들다. 중력을 거슬러서 머리로 역류하려면 심장이 쥐어짜는 힘도 중요하고 혈액량도 충분해야 하고 목을 통과해서 머리로 가는 혈관의 길도 잘 뚫려 있어야 한다. 사람 역시 척추가 곧게 서서 머리 쪽으로 피를 밀어 올리기가 쉽지 않다. 심장이 짜주는 힘이 혈관에 대한 압력, 즉 혈압으로 나타난다.

혈압은 심장 대동맥 위치의 위팔에서 재는데 120/80mmHg를 정상으로 친다. 그러나 우리는 팔의 혈압이 궁금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알고 싶은 것은 머리 쪽의 뇌로 들어가는 혈압이다. 허나 머리를 재자니 딱딱한 두개골 때문에 측정이 안 되고 목에서 재자니 목 졸라 사람을 상하게 하니 편의상 팔에서 재는 것이다. 그 결과를 가지고 뇌에는 어느 정도 올라가겠구나 하고 간접 추정하는데, 이것이 추정이다 보니 팔의 혈압은 멀쩡해도 머리와 발의 혈압이 정상이 아닌 경우가 많다.

보통 높이가 10cm씩 높아질 때 혈압은 약 7~8mmHg씩 떨어지니 뇌저부에서는 팔에서 잰 혈압보다 보통 40~50mmHg 정도 떨어지기가 쉽다. 만약 혈압이 90/60mmHg이라면 뇌저에서는 40mmHg 이하로 떨어질 수 있어서 두부 저혈압증이 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발 쪽으로 가는 혈관도 좁아지고 순환 장애가 일어나면 200mmHg 정도 되어야 할 수축기 혈압이 100~150mmHg로 부족해진다. 그럼 다리가 차가워지고 저릴 수 있다. 머리에서 혈압을 측정한 결과 수축기 동맥압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나타나는 증상들은 다음과 같다. 특히 팔에서 잰 혈압은 정상이었으나 두부 저혈압 증상을 나타낸 경우가 30%나 되었다고 한다.

두부 저혈압의 흔한 증상들

두통, 수면 장애, 집중력 저하, 건망증, 통증 감수성 증가, 근육 긴장, 신경 예민, 어깨 및 뒷목 결림, 쉽게 우울함, 어지럼증, 귀울음 등이 나타날 수 있다. 두부 혈압과 혈류가 현저하게 떨어지면 정신적으로 침체되고 집중이 힘들어지며 몸 전체가 노곤하고 피로감을 느끼며 식사 후에는 심한 식곤증을 호소한다.

이런 증상들은 대부분 목과 어깨의 근육 긴장, 교감신경의 과도한 긴장, 근육 경련, 동맥 좁아짐 등을 동반해서 나타난다. 대뇌동맥에 혈액 공급이 충분하지 못하면 운반되는 산소와 영양의 보급이 떨어지고 노폐물의 축적이 일어나서 근육의 통증과 피로가 뒤따른다. 특히 저혈압이면 이런 현상이 더 나타날 수 있고 심장이 약하거나 목 부분에 경결과 비틀림이 있으면 더욱 심해진다. 따라서 머리가 무겁고 멍해지며 두통이 생기고, 잠을 자도 피곤하고, 아무리 자도 피로가 회복되지 않으며 만성 졸음에 시달린다. 어깨와 뒷목이 쉽게 결리고 근육이 긴장이 오며 통증의 감수성이 커진다. 기억력이 약해지고 건망증도 생긴다. 당연히 의욕 상실과 만성 피로에 시달리며 입맛도 살맛도 떨어진다. 여기서 뇌 순환이 더 약해지면 어지럼증을 느끼는 일이 많아지고 귀울음 증상도 나타날 수 있다.

이쯤 되면 불면증과 우울감이 따라오니 여자 몸을 모르는 사람은 성격 탓과 게으른 탓을 하며 아픈 꾀병처럼 여긴다. 의학도 남성의 눈으로 바라보는 과학이다. 눈높이가 달라서 여자들의 이 괴로움과 억울함을 헤아려 주지 않는다. 여자들이 와서 하는 자책이 ‘저는 게으르고’, ‘살림도 잘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늘 기운이 없고’, ‘눕고만 싶고’, ‘의욕은 있는데 손끝 하나 까딱하기 싫고’이다.

“이렇게 중요한 뇌 순환도 심장의 피 순환부터 시작됩니다. 와이어 쇠심이 들어있는 브래지어는 심장에 힘을 보태 주어도 모자란 판에 기운 빠지게 하는 걸림쇠거든요. 여자들은 소녀 시절부터 삼사십년 하루 열 시간도 넘게 착용합니다. 여러분 상상해보세요. 나일론 스펀지로 만든 두툼한 모자가 있다고 칩시다. 고무줄 밴드가 뱅 둘러져 있고 밑단에 쇠심이 들어 있는 모자를 하루 열 시간씩 10년 20년씩 쓴다고 치면 과연 머리가 좋아할까요? 호흡을 못 해서 머리털이 빠지고, 피부도 나빠지고, 우선 열 받고 답답하지 않을까요? 심장을 시원하고 힘차게 움직이게 해주는 것도 혈액 순환을 잘 시키는 가장 중요한 지혜입니다.”

가족이 도우면 치료가 더 잘돼요

어지럼증 한 가지 증상만 달랑 가지고 한의원을 찾으시는 분이 어디 있겠나. 머리, 어깨, 무릎, 발, 귀, 코, 눈, 전국구로 고통 거리를 쌓아놓고 참다가 와서는 시리즈로 엮어서 ‘좔좔좔’ 토로하시는 분이 많다. 사실 몸은 네트워킹 조직이라서 서로 줄줄이 연결되어 있다. 떡시루처럼 켜켜이 쌓인 묵은 증상들은 처음부터 바로잡아야 큰 고생을 안 한다.

사회단체에서 일하는 딸이 엄마를 모시고 왔다. 기본 증상은 소화 장애가 심해서 배고픔을 모르고 헛배 부르고 뭉쳐있는 느낌으로 답답하심. 최근 심해진 증상은 팽하고 어지럽고 눈앞이 캄캄하고 머리를 한대 ‘탕’하고 맞으신 느낌이란다. 혈압은 정상이고 위장약은 거북해서 못 드신다고 하며 턱관절 장애로 치과 치료를 해왔다.

“평소 기분은 어떠세요? 성격이 조용하신 편인 것 같으신데요.”
“신경이 예민한 편이고요. 특별히 스트레스받을 일은 없는데 사흘이 멀다 하고 몸이 다운돼서 힘들어요.”
“엄마느은~, 스트레스받을 일이 왜 없어요? 아버지가 성질이 벼락같은 분이면서.”

한국인에게만 있다는 ‘화병’이 이런 분에게 생기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 평생 ‘버럭과 영택 씨’ (영감탱이의 약자, 나도 환자분들에게 배웠다)랑 큰소리 내지 않고 살려면 눈치 보기에 기분 맞추기에 몸이 오그라들고 진땀깨나 흘렸을 터. 풀어내지 못한 울화병, 참다 참다 생기는 시기가 절묘하게도 완경기다. 남들은 잠깐 스치듯 가볍게 지나가고 마는 안면홍조가 심해지고 손발 화끈에 식은땀이 계속되고 있었다. 자율신경도 조절의 한계를 넘어서 흥분하고 있는 것이다. 입안이 헐고 목도 건조하며 잠도 안 오고 초조하고 우울증도 어느새 찾아오는 것 같다.

인생의 건강 숙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한꺼번에 몰린 이분에게는 소화 기능과 뇌 순환을 돕는 ‘청훈화담탕(淸暈化痰湯)’이 처방되었다. 아직 검사 상 문제는 발견되지 않았으나 뇌 혈전이 올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제부터 정말 마음 편하게 운동도 하면서 뇌혈관 건강을 챙기셔야 하는데 생활환경을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드니 염려스럽기만 하다.

모녀지간이나 가족이 오는 경우 서로 대화도 잘되고 집에 돌아가면 피드백도 잘되기 때문에 치료가 훨씬 잘되는 것 같다. 하지만 남편이 같이 오셔서 아내의 상태를 말씀드리고 협조를 구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한의원에 오는 여자들 중 마음고생 심한 분들 참 많다. 상열에 얼굴이 붓고 혈압 올라가는 분들 다들 화병이 쌓여있다.

아저씨들~~ 마음은 나쁜 사람이 아닌 거 알고 있거든요. 제발 벌컥 하고 목청 높이고 걸핏하면 고함치지 마세요. 큰소리 안 쳐도 말로 조곤조곤하면 더 잘 알아들어요. 야단맞는 아내와 아이들은 간담이 오그라들고 머리가 나빠지거든요.

늘 체온이 올라서 미열이 있으면서 몸이 자글자글 끓는 것 같다는 친구 어머니. 남편부터 아들까지 주르륵 의사신데 도통 원인을 모르겠단다. 서늘한 곳에 휴양 가는 것도 나이 드신 분들에게 좋다. 물기운이 가득한 춘천이나 삼천포에 가시면 기침도 안 나고 열이 식어서 요양을 자주 다니셨다고 한다. 진음 부족으로 몸에 수기가 마르면 화기를 제어하지 못해서 오는 일종의 건조 증상인데 이걸 체온계로만 재려 드니까 해답이 안 나오는 거다. 자연에서 답을 찾아보자면 수기 (물기운)을 보충하면 된다. 물만 마시면 배부르니까 물에서 자란 음성 식품들을 많이 드시면 된다. 생선, 연근, 미역, 해조류, 수분 많은 과일은 몸을 촉촉하게 해주어서 수기를 보충하는 식품들이다. 반대로 고추장, 설탕, 커피, 담배는 전부 열성 식품으로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식품이다.

벽 짚고 걷는 현기증

정 권사님은 어지러워서 벽을 짚으며 한의원에 들어오신 분이다. 몸은 전체적으로 붓고 만성적으로 배가 차고 속이 허하고 늘 체기로 답답하고 어지럼증과 느글거림으로 몸을 천천히 움직이셨다. 신경과 검사와 이비인후과를 거쳐서 오셨는데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다. 혈압이 좀 높아서 약을 복용 중이라고 하신다. 어지럼증으로 고생하느라 여동생이 대전 사는데 못 본 지가 5년도 더 된단다. 기가 막힌 것은 여동생도 똑같이 어지러워서 꼼짝을 더 못하신단다. 말도 안 되지만 진짜 그런 걸 어이하랴.

한의학적으로는 담궐 두통과 어지럼증이 겸하여서 허혈성 중풍의 징후로 판단되었으나 진단 상으로는 아직 나타날 단계가 아니었다. 청훈화담탕(淸暈化痰湯)과 오령산(五苓散)으로 두통과 소화 그리고 부종의 치료를 시작하였다. 배부터 부기가 빠지더니 어깨, 목, 얼굴, 두부의 부기가 빠지면서 어지럼증은 현저히 가셨다. 떡과 식혜 등 간식을 줄이고 채식과 저염식으로 바꾸고 부기와 체중이 5kg 줄어들자 지난해 살이 쪄서 못 입던 며느리가 사준 정장을 입고 오셔서 자랑하셨다. 허리춤이 줄어들자 옷핀을 꽂고 오셔서 올 때마다 허리를 보여 주셨다. 치료가 거의 되자 용기를 내셔서 하와이 사는 딸한테도 가시고 웬걸 러시아로 발령 난 아들네도 너끈히 다녀오셨다. 지금도 십여 년 넘게 인연은 계속되고 체중도 그대로 유지하고 계시는 모범 환자시다. 현기증은 나이 드신 분들에게 뇌 허혈 증상으로 많이 온다. 가는 뇌혈관이 막히지 않고 피가 뇌로 잘 보내지도록 젊어서부터 혈관 건강에 힘써야 한다.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