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이는 뇌신경의 영역
“몸이 안 좋으면 더 어지럽고 메슥거려요. 미용실에서 머리 감다가 그랬는데...”
1년 전부터 어지럽고 눈알이 빠질 듯하다고 하는 수혜 씨.
본인은 억울하겠지만 몸에 좋다고 접시 돌리기 운동하다가, 목을 뒤로 젖히고 머리 감는 자세나 오래 앉았다가 갑자기 일어날 때 어찔한 느낌, 혹은 요가 물구나무 자세에서도 나타날 수 있는 증상이다. 모두 내이의 특성 때문에 생긴 일이다.
팽이처럼 도는 발레리나, 피겨 스케이팅 선수, 전후좌우로 뒤집는 에어쇼를 선보이는 전투기 조종사도 평형 기능이 뛰어난 사람들이나 가능하다. 이런 능력은 귀속 전정기관이 움직임 정보를 뇌로 보내서 안구 조절을 하고 근육과 관절을 동원하여 몸의 균형을 잡아주는 여러 감각과 소뇌의 합동작전 덕분이다.
어지럼증은 귀속의 평형기능에 문제가 있는 ‘현훈’과 일반적인 ‘현기증’의 두 가지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동영상을 찍을 때 카메라를 고정하지 않고 걸으면서 들고 찍으면 화면이 출렁출렁 흔들린다. 우리가 팔다리를 휘저으며 흔들고, 걷거나 달릴 때 만약 눈이 고정되어 있다면 시야는 계속 덜덜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절묘하게도 눈동자 근육이 정교하게 조정되어 화면 떨림 없이 반듯한 시야를 유지해준다. 이 능력이 약화되면 눈동자가 흔들리면서 어지러운 현훈이 생기고 토하게 된다.
몸의 움직임은 속귀에 전정신경이 연결된 세반고리관에 림프액의 흔들림이 일어나고 섬모세포가 흥분되어 그 신호가 뇌간에 도달한다. 뇌간에서는 눈동자를 움직이는 신경들과 복잡한 회로를 이루어 평형감각을 유지한다. 전정기관에 염증이 생기거나 수종이 생기면 귀의 세반고리관에서 몸의 위치나 자세 등의 정보를 소뇌에 전달하지 못해 현훈, 이명, 구토가 생긴다. 배를 타면 멀미가 나서 토하는 것과 비슷한 증상이다.
귀라고 말은 하지만 외이 중이를 거쳐 내이(속귀)는 두개골 뼛속에 위치한다. 여기에 전정 와우신경은 뇌에서 오는 뇌 신경 8번의 영역이다. 귀의 성능도 환경, 영양 상태에 따라 달라진다. 내이에 염증이나 미세한 이석이 떨어져 나오거나 노화 또는 혈액순환 장애로 인해 현훈이 생긴다. 심하면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으로 뇌간 손상이 되어 나타나기도 한다.
내가 의식하지도 못하는 사이 눈동자가 알아서 화면을 안 흔들리게 잡아주고 있다는 것 참 고마운 일이다. 지구가 빠르게 돌아도 세상이 흔들려도 눈과 귀 덕분에 잘 버티고 산다. 역시 땡큐다.
화난다고 귀 얼굴 따귀를 올려붙이는 폭력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셔야 한다. 귀가 약한 분은 수영이 해로울 수도 있다. 귀도 잡아당겨 주고 비벼주고 겨울 찬바람도 귀마개로 막아주고 쾅쾅 소음도 피해주시라. 귀 당기는 방향은 ‘아래로’가 아니라 귀뿌리 깊숙이 자극할 수 있는 ‘옆으로’ 다. 아얏! 너무 잡아당기면 아프기만 하다니까.
어지럼증도 여러 원인을 살펴봐야
광화문 교보문고에서 인터뷰가 있는 비 오는 저녁이었다. 시청역에 내려서 걷기 시작했는데 미끄덩하고 큰 대자로 나가떨어졌다. 진짜 몸이 붕 떴다가 등과 허리 골반으로 착지를 한 것이다. 최근 산에서 내려오다 미끄러지면서 소나무 뿌리에 갈비뼈를 받친 후 한 달도 안 돼서 으읔 참사 재연. 떨어지면서 반사적으로 머리가 들려서 뇌진탕은 면했는데 꼼짝을 할 수 없었다. 눈은 말똥말똥 바퀴벌레 뒤집은 모양으로 벌러덩 누워 있는데 행인들이 안부는커녕 손잡아 일으켜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에라 모르겠다. 자빠진 김에 쉬어간다고 한참 길에 누워 있었다. 천천히 일어나보니 문제는 비에 푹 젖은 박스 상자 종이였다. 바나나 껍질보다 더 고약스럽다. 한동안 장애 체험을 했다. ‘딱’ 하는 소리가 나는 순간 척추나 골반뼈가 부러졌을 줄 알았는데 멀쩡한 걸 보고 얼마나 내 몸이 기특하고 고마웠는지 모른다.
신랑과 아이 온 식구가 한의원으로 출동한 정희 씨 이야기는 남의 일 같지 않았다.
“방바닥에 있는 아이의 장난감을 밟고 뒤로 ‘꽈당’ 넘어지면서 머리를 부딪쳤어요. 의식은 있어서 말은 다 했다는데 나중에 저는 기억이 안 났어요. 병원에 가서 CT를 찍었는데 이상은 없다고 약도 진통제나 타이레놀밖에 줄 게 없다고 해서 받아 오긴 했어요.”
CT를 찍어도 뇌출혈이 약하게 터지거나 혈전이 막힌 경우에는 금방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의사도 증상과 경험으로 상황 판단을 내려야 한다. 토하진 않고 어지럼증이 약하니 출혈도 아니고 충격에 의한 통증이야 2주쯤 지나면 가라앉을 것이다. 머리는 충격을 받으면 일단 누워서 안정을 취하면서 경과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어지럼증과 메슥거림과 목 돌릴 때 당기는 증상이 점점 심해지자 한의원에 찾아온 것이다. 넘어지면서 경추도 돌아가고 목과 어깨의 인대와 근육도 순간적으로 늘어나서 통증이 일어난다고 설명해 주며 목과 어깨에 침 치료를 하고 귀 잡아당기기와 어깨 마사지를 해주고 청상견통탕(淸上蠲痛湯) 한약 처방을 하였더니 아주 좋아졌다.
현기증이라고 불리는 어지럼증은 느낌과 종류가 다양하다. 반대로 고혈압이 오래되신 분 중에는 혈압약 장기복용으로 현기증이 오기도 하고, 다이어트를 심하게 하는 경우 혈당 수치가 내려가면서 어지러운 증상이 생긴다.
구조적으로는 두개골이 삐딱하고 턱관절 장애가 있거나 1번 경추가 틀어져도 어지럼증과 두통이 나타난다.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불균형하게 좌우가 비대칭이고 근육 긴장으로 흉쇄유돌근이 붓고 승모근 긴장이 오면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한다. 안경도수가 안 맞아도 메스껍고 어지러울 수 있다.
과체중이면서 평소 운동이 부족한 분은 순환 장애가 일어나 뇌로 가는 혈류가 부족해져 허혈성 어지럼증과 두통이 나타날 수 있다. 심한 경우에는 중풍 전조증이나 이미 뇌출혈, 뇌경색이 소뇌나 뇌간부에 진행되었을 경우에도 현기증이 온다.
어지럼증 하나라도 뇌, 귀, 목, 척추, 혈압, 혈액순환, 자세 등이 모두 다 연관되어 있으므로 구역감, 두통, 어지럼증, 귀울림, 신경 저림, 마비감, 안면 감각, 말 어눌, 시력 상태 등 폭넓게 물어보고 살펴보고 과거 병력과 현재 복용 중인 약까지 꼼꼼하게 진찰해야 한다. 환자가 들어서는 모습부터 ‘목이 뒤틀렸구나’, ‘척추가 휘었구나’ 눈에 불을 밝혀 살펴보아야 한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눈썰미가 있고 질문을 꼼꼼히 잘해야 한다.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