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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독에 빠진 나를 구하라~


설문조사 결과다. 현대인들이 집에 가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TV를 켜는 것이 1위.
홀로인 빈방이 싫어서 사람 소리 나게 잠들 때까지 틀어 둔다고도 한다.


책을 쓰면서 끔찍한 경험을 했다. TV 앞에 딱풀처럼 들러붙는 버릇이 생긴 것. 퇴근만 하면 노트북을 거실로 끌고 나와 리모컨을 돌려가며 한 문장 쓰고 TV 화면 보고, 케이블을 200번대에서 무려 800번대 채널까지 눌러댄다. 밤마다 홀로 원고를 쓰다 보니 지루함, 피곤함, 외로움에 몸부림치다가 그만 중독된 것. 거들떠도 안 보던 드라마와 원고를 동시상영 하는 인간이 됐다. 그러다 마지막은 핸드폰이 이겼다. 노트북은 꺼버리고 멍청하게 화면을 바라보는 나. 신종 노예다!

반평생 TV와 적당히 냉정을 유지하던 내가 초단기간에 중독에 빠진 것이다. 학교 다닐 때도 음악방송 틀어놓고 공부한답시고 DJ의 수다에만 귀를 쫑긋하지 않았던가.


내 안의 중독성 유전자에 진저리를 치길 석 달 만에 리모컨으로부터 도망칠 수 있었다. 현대인들 거의 모두 TV 화면부터 컴퓨터와 핸드폰까지 전자제품에 중독되어 있다. 드라마와 함께 일주일을 보내며 자다 깨서도 핸드폰과 태블릿으로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검색하는 올빼미. TV와 인터넷이라는 올빼미를 재우려고 잠을 택했다. 평생 달빛형 인간에서 아침형으로 리모델링한 것이다. 물론 아침에도 뉴스나 어린이 만화라는 만만치 않은 유혹이 있다. ‘자동 TV 모드’라는 중독은 결국 노트북을 들고 골방으로 기어들어서야 끝났다. 웅녀 할머니가 왜 동굴에서 수련을 했는지 알만하다. 흠흠.



TV와 게임의 늑대와 양치기 소년 놀이


진료실, 아픈 엄마가 진찰받는 동안 아기는 핸드폰으로 유튜브를 본다. 겨우 한 돌짜리가. 만 두 살이면 리모컨을 휙휙 돌리는 신동이 된다. 맘에 안 들거나 지루하면 빨리 돌리라고 화를 낸다고 한다.


커도 걱정이다. 아이가 어릴 적 친구가 놀러와서 물었다.
“너희 집엔 닌텐도 없니?” 컨트리한 엄마가 신형을 사줬을 리 없는 아이는 난감해한다. 꼬진 오락기를 주섬주섬 꺼내 나란히 앉아 오락기를 두드리며 둘 다 화면을 본다. 얼굴을 마주 보지 않는다. 대화도 필요 없다. 이게 친구랑 노는 것인가.


TV가 아이들을 잡아두는 이유를 알아보자. 아이들의 뇌가 눈 부신 빛에 반응하면서 마음은 화면 앞에서 긴장 상태가 된다. 뇌는 스스로 방어를 위해 차단하는 경향이 있어 오래 보면 최면효과와 비슷해진다. 오히려 생각이 정지되어 화면이 보내는 정보만 수동적으로 멍한 상태로 받아들인다. TV는 이런 무감각에 대응하기 위해서 ‘놀래주기 효과’를 도입하여 자극적인 내용을 끼워 넣고 빛의 강도와 카메라 앵글을 순간순간 바꾸고 움직여서 긴장감을 유지시켜 화면에 붙잡아 둔다.


문제는 대뇌 신피질은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내용이 진짜 상황이 아닌 것을 알지만 생존의 뇌인 시상하부나 뇌간은 모른다. 감정의 뇌인 변연계로 경고를 올려보내고 심장, 부신 등이 재빨리 흥분하고 스트레스 호르몬을 방출한다. 다시 뇌에서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알리면 진정 호르몬이 나와서 없던 일로 하는 일이 수없이 반복된다.


TV나 게임이 ‘늑대와 양치기 소년’ 놀이를 뇌와 몸에다 계속하는 것이다. 미국의 어린이들이 평균 5~6세가 될 때까지 TV 시청이 5,000~6,000시간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우리 어린이들도 하루 세시간 정도는 보거나 비슷한 사정일 터. 이런 과잉 자극은 아이들의 두뇌 발달에 엄청난 혼란을 주고 있으며 자연과 교류하는 능력이 심하게 떨어지고 감각이 둔화된다.


1997년도에 TV 만화 ‘포켓몬스터’를 보던 아이들이 픽픽 쓰러져 700명이나 구급차에 실려 간 사건이 있었다. 빨간빛과 파란빛이 어지럽게 점멸하는 장면을 보다가 쓰러졌다고 해서 광민성 간질로 추측만 되고 말았다. 애를 키우면서 관찰해보면 안다. 아이들은 TV의 점멸하는 반사 빛에 미간을 찡그리고 장면 전환이 빠른 TV 광고를 보면 눈조차 깜박이지 않고 뚫어져라 본다. 집중력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얼마 전에 방송 보도된 4살 어린이, 몇 시간씩 게임만 하는 것을 부모는 집중력이라도 키워지겠지 하고 안심했다는데. 전문가의 진단으로는 정반대. 사회성 발달이 안되고 지능 저하에 심각한 집중력 부족에 심지어 각막염증까지 온 것으로 나타났다. 젖먹이 때부터 빨리 바뀌는 온갖 화면을 오래 봐온 탓에 학교에 입학하면 산만하고 딴짓하고 의자에 앉아 있지를 못하는 주의력결핍증이 생긴다. 인간이 자연을 찾는 이유가 있다. 저자극으로 고요함을 되찾게 하자. TV 끄고 조용히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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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면 우물 안 개구리 노릇


“단테야 너 기억나니? 거실에 컴퓨터랑 TV가 있던 시절, 명색이 고3인데 질기게 TV 앞에 버텨서 삽질을 했더니 컴퓨터로 순간 이동해서 게임으로 엄마 인내심을 시험하더니 전화로 환승해서 수다 떨기 삼매경으로 완벽한 삼각 동선을 이루곤 했잖아.”


이젠 TV도 제방에서 컴퓨터로 보시고 핸드폰으로 마음껏 놀고 있다. 아니여? 퇴근하는 엄마는 본척만척 화면에 코 박고 있는 아이가 얄밉다.


세상은 혼자 또는 몇몇이서만 노는 곳이 아니다. 사람 대신 컴퓨터와 접속하고 게임으로 점수 따는 패턴 훈련으로 레벨은 올리겠지만 뇌는 피곤하다. 불쌍하다. 진정 뇌가 원하는 것은 ‘체험 삶의 현장’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경험을 쌓으며 뇌를 연마해서 진짜로 힘을 키우는 것이다.


사람과의 직접적인 만남으로 교감하는 것은 내면의 깊은 곳까지 의식이 확장되고 공감하는 느낌을 받는다. 현실과 직접 부딪쳐서 경험의 폭을 넓히고 관계 맺고 행동화하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짜 실력이다. 두 발로 직접 산에 오르고 압도적인 풍경에 감동하고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끼려면 화면 밖으로 나와 무거운 배낭을 메야 한다.


반면에 게임을 즐기고 자라난 세대들이 캐릭터가 가진 영웅 서사를 통해서 성취감을 키우고 집중력과 멀티태스킹에 능숙해지는 특징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기성세대와는 다른 능력을 키운 젊은 세대들이 회사생활에 더 헌신적이고 강한 애사심을 갖고 있다는 일부 주장도 나왔다. 물론 한 명이 게임 개발할 능력을 얻는 동안 10만 명은 그걸 사려고 돈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고 있겠지.


“방콕 게임에 시간을 낭비한 중독자들이 무슨 능력을 쌓을 수 있겠어. 책상 위 정리조차 안 하는 사람이 무슨 회사 생활? 아무리 흥미진진해도 화면 우물 안에서 개구리 노릇은 폐인의 운명이여”


“나이만 먹었다고 장가가는 것 아녀. 밥벌이는 물론이고 아내랑 결혼 생활에 아기 키우기까지 조직 훈련과 헌신적인 자세가 필요해. 가사 육아 게임은 없니?”


“그러게 나 장가 안 간다니까~~” 큰소리치는 녀석아. 어디 두고 보자고.


다림질하는데 전화벨은 울리고, 빗방울은 떨어지는데 마당엔 빨래가 널려있고, 자던 애는 깨서 ‘앙앙’ 울고, 가스 불에 올려놓은 보리 물은 끓어 넘치고... 덩달아 엄마도 울고 싶어지던 장면들. 이런 것 좀 게임으로 만들어서 시뮬레이션 연습하면 좋겠다. 그치?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