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1월 22일 소설(小雪) 이후부터 2019년 1월 20일 대한(大寒)까지가 운기학(運氣學)에서 제6기(第六氣)이다. 운기학은 원래 양력이 아닌 음력으로 해마다의 기후 변화를 설명하는 학문이고, 무술년(戊戌年)은 음력 설날 직전까지이므로 비록 양력으로는 2019년 1월 20일이지만 음력으로는 무술년이다.
무술년(戊戌年)의 제3기(第三氣)인 사천(司天)은 태양한수(太陽寒水)이고 제6기인 재천(在泉)은 태음습토(太陰濕土)이며 제6기의 주기(主氣)는 태양한수(太陽寒水)이다.
재천(在泉)이 습토(濕土)이므로 올해 하반년(下半年)은 습기(濕氣)가 유난히 왕성한데, 특히 재천에 해당하는 제6기에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천(司天)인 한수(寒水)가 비록 재천인 습토의 견제를 받기는 하지만 원래 사천은 1년 내내 영향력을 행사하고 게다가 이 기간은 본래 한수가 성하여 많이 추워야 하는 계절이므로 결국 추위와 습기가 어우러진 한습(寒濕)이 심하게 된다. 그야말로 엄동설한(嚴冬雪寒)이라는 말처럼 추울 때는 몹시 춥고 눈이나 비가 많은 기간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지나친 습기를 해소시키기 위하여 저절로 바람이 일어날 수도 있다. 원래 바람은 예고 없이 있다 없다 변화가 심한 것이므로 한풍(寒風)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봄철에 동풍을, 여름에 남풍을, 가을에 서풍을, 겨울에 북풍을 대면하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이므로 그 바람의 기운이 생장을 주관하여 만물을 기르지만, 봄철의 서풍, 여름철의 북풍, 가을철의 동풍, 겨울철의 남풍은 상반된 방면에서 오는 바람이어서 만물을 해치고 죽이게 되므로 사람을 상하게 한다. 이를 허풍(虛風)이라 한다.
태양한수가 사천이고 태음습토가 재천인 해는 일 년 내내 한습이 그 특징인데 재천인 제6기에는 한습의 피해가 가장 심한 기간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기간에 한습에 적응하지 못하면 곧바로 병(病)이 들게 된다. 『내경』에서는 이때 쓴맛을 먹어서 습을 말리고 따뜻한 것을 먹어서 한기(寒氣)를 이겨내야 한다고 하였는데,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맛이 쓰고 뜨거운 재료를 위주로 하고 시거나 싱거운 맛으로 보조하라 하였다.
재천인 습기가 왕성하면 한기가 습기의 억누름으로 인하여 속에 쌓이게 되고 이로 인하여 병이 들게 되므로 습기를 제거하고 수(水)의 장기가 피해를 보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고도 하였다. 기름진 음식을 너무 많이 먹는 등의 행위로 비습(脾濕)이 성하지 않도록 조심하고 신수(腎水)의 기능을 북돋우는 음식이나 보약을 먹어야 한다.
『내경』에서는 태양한수가 사천이고 태음습토가 재천인 해에는 검은색의 곡식과 누런색의 곡식이 잘 자라므로 이런 곡식 위주로 식사를 하면 건강에 유리하다고 말한다.
1450년경 출간된 고조리서 『산가요록(山家要錄)』에 ‘송고병(松膏餠)’ 이라는 음식이 있다. 송고(松膏)는 송기(松肌) 즉, 소나무 속껍질을 말하므로 송기떡이다. 송기가루를 찹쌀가루와 섞어 꿀로 반죽하고 잣을 이겨 넣고 기름에 지지는 전병이다. 산가요록이 원래 산속에서 어렵게 사는 사람들을 위해 만든 책이므로 너무나 당연한 처방이다. 그런데 어쩔 수 없이 먹은 이 송기는 바람과 습기로 인한 피해를 없애 주는 매우 좋은 약효가 있으니 일종의 전화위복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맛이 쓰고 성질이 따뜻하여 올겨울 한습(寒濕)을 막아 줄 좋은 음식이다.
조선 전기(1540년경) 고조리서 『수운잡방(需雲雜方)』의 ‘송엽주(松葉酒)’ 는 솔잎을 달여낸 물과 멥쌀가루를 섞어 만든 죽을 식혀 누룩과 섞어서 독에 21일 동안 담가 만드는 술인데 여러 질병을 치료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맛이 쓰고 성질이 따뜻한 솔잎은 바로 올해 제6기의 건강을 지키는 데 매우 적합한 재료이므로 이 송엽주를 조금씩 마시면 올겨울의 한습(寒濕)을 물리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다. 1809년에 저술된 『규합총서(閨閤叢書)』의 ‘송절주’나 ‘숭순주’도 참고하여 하나를 선택하면 더 편리할 것 같다.
1670년경 안동장씨 할머니가 지으신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의 ‘쑥탕’ 은 꿩 육수에 마른 청어살을 넣고 맛이 우러날 때까지 끓인 다음 쑥을 넣고 끓이는 쑥국이다. 쓰고 매우면서 성질이 따뜻한 쑥이 주재료로 들어가 올겨울의 한습(寒濕)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청어나 꿩고기를 구하기 힘들면 청어 대신 북어를, 꿩고기 대신 쇠고기를 사용한 1800년대 말엽의 조리서 『시의전서(是議全書)』의 ‘애탕’을 사용하면 된다.
1766년에 간행된 『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의 ‘순무김치’ 나 ‘만청증’ 은 쓰고 맵고 달면서 성질이 따뜻한 순무가 주재료이고, ‘삽주국’ 은 쓰고 매우면서 성질이 따뜻한 삽주의 연한 싹이 주재료이므로 올겨울 한습의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정조 22년(1798년) 서유구가 왕령에 따라 국가사업으로 편찬한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에는 건강에 유익한 음식들이 많이 있는데, 특히 올겨울 한습(寒濕)을 이겨내는데 가장 적합한 것으로 ‘선출탕방(仙朮湯方)’ 이라는 음료를 들 수 있다.
껍질 벗긴 창출(삽주 뿌리줄기) 12근을 쌀뜨물에 담갔다 볶는다. 씨를 뺀 대추 6되, 볶은 감초 3근 반, 말린 생강 5량, 소금 6근 4량 등을 가루로 만들고, 여기에 껍질을 벗기고 뾰족한 끝부분을 제거한 다음 볶은 살구씨 1근 반을 넣어 골고루 섞으면 완성된다.
“이것을 1전씩 끓는 물에 타서 마시면 유행병이 예방되고 한습(寒濕)을 제거하며 위를 따뜻하게 하고 비장을 좋게 한다. 오래 마시면 장수하고 눈이 밝아지며 얼굴이 팽팽해지고 몸이 가벼워져 늙지 않는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밖에도 움청지류(飮淸之類)의 ‘행락탕방(杏酪湯方)’, 과정지류(菓飣之類)의 ‘밀전길경방(蜜煎桔梗方)’ 등도 활용할 수 있다.
1800년대 초엽의 조리서 『주찬』의 ‘시래기국’ 을 보면 매우 흥미롭다. 시래기에 물을 붓고 어육을 많이 넣고 고명을 섞어서 끓이는데 처음에는 국물이 많아 매우 싱거우나 오래 끓이면 맛이 저절로 짜지므로 이때 따뜻하게 먹으라고 기록되어 있다. 시래기는 소화를 잘 시키면서 습(濕)을 없애는 효능이 있다. 만일 올겨울 한습을 예방할 목적으로 사용하려면 고춧가루나 매운 다대기를 넣어서 먹으면 된다.
『시의전서』의 ‘애탕’ 외에 ‘행인정과’, ‘적복령편’, ‘상실편’ 등도 올겨울 건강 음식으로 적합하다.
우리 조상들은 먹고 마시는 음식도 항상 건강과 연관 지어 만들었던 것 같다. 현대에 와서 무조건 맛만 지향하는 음식문화는 없던 병도 생기게 한다. 여기에 고조리의 가치와 필요성이 있다.
※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KMCRIC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문생 박사의 약선설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