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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하면 여러 가지가 떠오른다. 그중에서도 봄에는 그 시기에만 만날 수 있는 멋진 풍경이 있다. 봄이 아니면 만날 수 없는 절경. 지금 이 시기에 서산에 가면 정말 아름다운 꽃 천지를 보게 된다.



고택 안팎을 노랗게 수놓은 수선화 군락


서산의 봄은 이제 노란색으로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노란 수선화가 지천에 핀 모습, 그 강렬함은 쉽게 잊기 어렵다. 수선화의 이름은 익숙한데 생김새는 생각보다 모르는 사람이 많다. 수선화는 노란색을 띤다. 꽃잎 위로 고개를 내민 암술과 수술이 참 아름답다. 단아하고 고결한 이미지가 잘 부합하는 그럼 모습이다. 이런 수선화 수만 송이가 일제히 피어난다면? 화사한 봄 풍경으로 이만한 장관도 없다.


이 봄, 함께 떠날 목적지는 서산 유기방가옥이다. 유기방가옥은 2005년 충남도 민속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고택이다. 그만큼 건축사적이나 향토사적으로 가치를 인정받는 곳이다. ‘류기방’이라는 분의 집인데, 대대로 후손이 거주하며 지낸 가옥이다. 재밌는 건, 이 집의 고유명사는 ‘유기방’인데, 정작 집 주인은 ‘류기방’ 씨라는 거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명칭이 사실 사람의 이름이라는 걸 알고 참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거주 중인 집주인의 이름을 딴 고택은 여기밖에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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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은 집의 규모도 제법 큰 편이다. 부엌과 방, 대청마루, 건넌방으로 구성된 안채가 정면 일곱 칸, 측면 3칸이다. ㄴ자 형의 사랑채와 행랑채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구조다. 사람이 거주하는 고택치고는 꽤 규모가 있다. 집 내부는 누구나 들어가 볼 수 있도록 개방해놓았다. 미리 예약을 하면 한옥스테이도 가능하다.


유기방가옥은 주말이면 관광객이 몰려든다. 수선화가 정점을 이루는 3월 말에서 4월 중순까지는 집 안팎으로 북적북적하다. 그래도 당당하게 집의 내부를 다 공개해서 보여준다. 주인장의 넓은 마음 씀을 엿보는 느낌이다. 물론 관광객의 목적은 이 집이 아니다. 집의 안팎을 단장하고 있는 수선화가 이 시기 유기방가옥에서는 주인공이다. 조금만 멀리서 바라보면 이 가옥과 수선화 군락은 완벽한 한국의 봄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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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방가옥의 안팎으로 펼쳐지는 수선화 군락은 6,600여㎡, 그러니까 약 2천 평 정도다. 이 넓은 부지를 주인인 류기방 씨가 18년 전부터 수선화를 하나하나 심어서 만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전국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서산만의 진풍경이 펼쳐지는 셈. 얼마나 흐드러지게 피었는지 직접 가서 꼭 보라고 권할 만큼 멋지다. 수선화 군락은 가옥 주변에서 시작해 뒷산 언덕을 따라 쭉 이어진다. 류기방 씨는 지금도 계속 수선화를 심으면서 군락을 넓혀가고 있다. 3~4년 뒤면 훨씬 더 멋지게 변모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이미 수선화 군락은 입소문을 타고 주말마다 많은 관광객을 부른다. 수선화 축제라고 해도 될 만큼 북적거린다. 수선화 군락으로 가는 길목에 마을 주민들이 직접 먹거리를 팔거나 한복 대여점 같은 걸 운영해서 부수입을 올릴 정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방가옥은 봄철 한때 꼭 한 번 가볼 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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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원한 감칠맛이 일품인 간장 냉면


유기방가옥에서 20분 거리에 서산 시내가 있다. 이 시내에 알음알음으로 유명해진 냉면집이 있다고 해서 찾았다. 시내 중심에서 약간은 벗어난 위치. 밤이면 유흥의 중심이겠구나 싶은 주변 환경이다. 이런 곳은 대체로 낮에 고요하다. 허름한 단층 건물이 다닥다닥 이어지는 한쪽에 간판이 보인다. 식당 이름이 독특하다. ‘구 옹진식당’. 예전 황해도 땅이었던 인천시 옹진군과 모종의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작명이다. 황해도식 냉면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스친다. 어쭙잖은 추측은 다행히 빗나가지 않았다.


주인장의 아버지가 옹진 사람이라고 했다. 원래 황해도 옹진 사람으로 전쟁 때 남쪽으로 건너왔고, 다시 서산에 내려와 정착한 케이스다. 고향에서 해 먹던 냉면을 목숨줄 삼아 생을 잇고자 했는데, 맛이 좋아 입소문이 났다. 그렇게 이어온 지 벌써 수십 년. 냉면은 대를 이어 내려오고 서산의 숨은 명소가 됐다.


가게 안은 그리 크지 않다. 테이블 몇 개가 전부. 평일 조금은 늦은 시간임에도 손님이 끊이지 않는다. 지역에서는 간장 냉면으로 알려져 있는 듯 찾아오는 손님마다 “간장 냉면”이라는 명칭을 썼다. 북에서 내려온 냉면의 맥이 충청도와 경상도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도,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기 마련이라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지 적이 궁금했던 차다. 처음부터 큰 기대를 품기보다 여기에선 어떤 독특함을 만날까 궁금해하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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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도의 메뉴판 없이 벽에 붙은 가격표가 전부다. 가격은 7,000원. 메뉴표에도 ‘냉면 (간장)’이라고 적고 있다. 이곳에서는 저 명칭이 통용되고 있음을 다시 확인한다. 주문을 넣고 기다리는 동안 면수가 나왔다. 한 모금 입에 물고는 눈을 크게 떴다. 깊이가 느껴지는 메밀의 향. 냉면 팔아 이름 좀 날린다는 여느 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이 함께 나왔는데, 중국 동북지역에서 먹었던 조선족의 그것과 비슷해 보인다. 육수가 검다. 한 입 들이켜서 맛을 보곤 다시 감탄했다. 시원하고 짭조름한 육수의 맛. 입소문이 당연하다.


황해도식 냉면은 평양냉면과 유사한 과정으로 만든다. 육수를 내고 그 육수를 식혀서 굳어 둥둥 뜬 기름을 걷은 뒤 국수를 말아낸다. 다른 점이라면 육수에 간장을 더해 감칠맛을 더한다는 정도. 물어보니 정확히 황해도식 냉면의 과정을 따르고 있었다. 간간한 국물이 자꾸만 젓가락질을 채근한다. 적당히 쫄깃하면서 잘 끊기는 면도 좋고 깊이 있는 육수도 좋다. 되려 함께 내준 양념류를 안 넣는 게 훨씬 나은 선택이다. 이곳에서는 이틀 가까이 우리고 졸여서 만든 정성 가득한 육수를 온전히 즐기는 게 만든 이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서산을 찾는다면 맛봐야 할 숨은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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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양이 미모의 소녀를 연상시키는 수선화는 한의학에서도 사랑과 연관된 질병 치료에 활용된다. 꽃과 비늘줄기가 월경 조절, 생리불순, 자궁질환을 다스리는 데 처방된다. 혈액순환 촉진과 열을 내려주는 성질이 있어 감기와 피부염, 풍병에도 효과가 있다. 뿌리는 악성 종기, 관절염 등에 사용된다. 수선화는 독성이 없어 복용이나 발라도 좋다. 다만 몸이 차고 맥이 약하다면 복용하지 않는 게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