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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과 바다의 물이 비로소 서로를 확인하는 곳, 이른바 ‘만’이 형성되는 그 지점에서 강과 바다는 어울렁더울렁 한데 어우러지며 또 다른 생명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었다. 눈을 감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생명들이 말을 걸어온다. 갯벌 위에 짱뚱어가 뛰어다니는 소리, 솨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들이 옷깃 여미는 소리. 짱뚱어와 게들이 파놓은 구멍으로 바닷물이 들락거리며 뽀골뽀골 소리를 낼 때는 슬며시 웃음이 터지기도 했다. 강진만은 풍요로운 땅 남도가 감춰둔 생태계의 보고였다.



강과 바다가 빚어놓은 생명의 보고


강진은 사통팔달의 요지와도 같은 곳이다. 전라남도의 어디로 향하든 한 시간 거리면 족하다. 지리적 이점이 상당한 고장이다. 지금까지 몇 번이고 강진을 다녀왔지만, 늘 현재보다 앞으로가 기대되는 곳이었다. 중요한 건, 몇 번씩 다녀왔지만, 강진만을 둘러보지 못했다는 것. 이번에는 여행을 떠나기 전부터 강진만이 제일 궁금해졌다. “사람들은 강진만의 아름다움을 잘 모른다.”는 지인의 말 때문이었다.


강진만은 강진읍에서 그리 멀지 않다. 차로 10분여. 주차장에서 둑 위로 오르는 계단을 따라 걸어 올라가는데, 조금씩 시야가 열리면서 드넓은 갈대밭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광활한 갈대숲이 펼쳐진다. 강진만은 강진을 가로질러 흘러온 탐진강이 바다를 만나는 지점이다. 강이 움켜쥐고 온 흙들은 바다 언저리에 쌓여 갯벌과 뒤섞였고, 그 위로 갈대들이 둥지를 틀었다. 영양분이 풍부한 하구에는 온갖 생명들이 생동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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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환경과학원이 2015년 정밀조사를 실시한 결과, 현재 강진만에 서식하고 있는 생물은 확인된 것만 1,131종이다. 식물만 424종이 자라고 있고, 조류 75종, 포유류 12종이 그 사이로 몸을 숨겼다. 어류는 47종이 강진만 언저리를 서식지로 삼았다. 천연기념물인 큰고니와 노랑부리저어새, 삵, 수달, 큰기러기, 붉은발말똥게, 기수갈고둥 등 자연 다큐멘터리에서나 들었을 법한 생물이 강진만의 주인이다. 크고 작은 생명들이 강진만에서 물결치고 있었다.


강진군은 이런 생명의 보고를 2014년부터 생태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더 늦기 전에 인간들의 손길에서 생태계를 보호하고 함께 공존하기 위한 선택이다. 대신 인간은 자연을 누리고 자연은 인간들의 손길에서 떨어져 그들의 세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했다. 탐방로가 만들어졌고, 자전거 도로가 놓였지만, 대자연의 경관과 그들의 생태계를 거스르지 않도록 신중히 공원화했다. 생태탐방로는 총 3km에 달한다. 곳곳에 쉼터가 조성됐고 탐조대도 만들어졌다. 이를 위해 56억 원이라는 예산이 투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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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로를 걷다 보면 갯벌 생태계가 얼마나 가까이에 놓여있는지 알게 된다. 내 발아래에 수많은 짱뚱어들이 뛰어다니고 있다. 이처럼 많은 짱뚱어를 보는 것도 처음이다. 크기가 손바닥만 한 칠게도 짱뚱어를 피해 요리조리 도망 다닌다. 탐방로가 없었다면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기 어려웠을 풍경이다. 이곳에서는 자전거를 대여해 자전거 전용도로를 따라 달려보는 것도 가능하다. 이미 소문을 듣고 이곳저곳에서 찾아온 라이더들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달려가고 있었다. 강진만 생태공원 절경을 만날 수 있는 최고의 포인트는 강진만의 이쪽과 저쪽을 이어주는 목리1교 다리 위다. 20만 평에 달하는 강진만이 한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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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에서 만끽하는 흥겨운 토요일


강진은 재미있는 지형을 하고 있는 지역이다. 지도를 펼쳐서 보면 마치 바지 한 벌을 보는 것처럼 강진읍을 기점으로 좌우가 길게 뻗어있다. 강진의 마량포구는 쭉 뻗은 두 다리 중 오른쪽 다리 끝에 자리한 곳이다. 마량포구는 매주 토요일마다 시끌벅적해진다. 방파제 위에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 토요일마다 ‘마량놀토수산시장’을 연다. 그곳에는 무대가 있고, 온갖 바다의 먹거리가 올라온다.


마량놀토수산시장은 초입부터 노랫가락에 흥이 오른다. 특설무대에서 열리는 노래자랑인데,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노래를 부를 수 있다. 진행자도, 지켜보는 사람들도 열심히 손뼉을 치면서 부르는 사람의 흥을 돋운다. 때로 음정과 박자에서 자유로운 이가 무대에 오르면 깔깔 폭소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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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시장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특설무대에서 색다른 쇼가 펼쳐진다. 마량놀토수산시장의 백미 ‘즉석 회 뜨기 쇼’다. 보통 광어나 농어를 횟감으로 쓰는데 그 크기가 미터급에 이를 만큼 큰 녀석이 도마에 오른다. 오늘은 농어가 주인공이다. 쇼를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오자 사람들이 무대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쇼도 쇼지만 쇼가 끝난 후에 먹을 수 있는 회 한 접시 때문이다. 한 접시에 5천 원. 초를 섞은 작은 밥 덩이가 함께 제공돼서 회를 올려 먹으면 그대로 초밥이다. 물론 회만 먹어도 된다. 그쯤이야 먹는 사람 마음이다.


시장 양쪽으로 늘어선 가게들은 무척 저렴하다. 강진군이 강진의 특산물을 알리기 위해 ‘오감행복회’와 ‘오감회’라는 메뉴 구성을 제안했고, 상인들이 이를 적극 받아들였다. 이 시장의 대표 메뉴 격인 오감행복회는 회와 채소, 탕이 넉넉하게 제공되는데 불과 3만 5천 원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는 전어를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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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거래되는 전어는 모두 강진 인근에서 잡은 자연산. 강진에서 잡힌 전어는 통통하게 오른 살이 차지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찰전어’라고 부른다. 집집마다 전어 풀코스 메뉴를 붙여 놨다. 여기까지 와서 전어를 빼놓을 수는 없는 법. 전어 풀코스는 전어회, 전어무침, 전어구이로 구성된 메뉴다. 1인당 1만 원. 요즘처럼 물가가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시대에 다른 포구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인심을 만난다. 이 코스는 먹다 지칠 만큼 푸짐하다. 특히 전어무침의 양념에 연신 감탄이 터진다. 역시 남도의 손맛이다. 명불허전이라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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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어는 잔뼈가 많아 먹기 귀찮아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칼슘이 우유의 두 배 가까이 많아 뼈째 섭취하면 골다공증을 예방하는 데 효과적이다. 등푸른생선인 전어에는 DHA, EPA 등의 불포화지방산이 많이 함유돼 있어 어린이 두뇌발달에 좋고 어르신 치매 예방에도 좋다. 시스틴 (cystin)와 아르기닌 (arginine) 성분은 성장호르몬 기능을 강화해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니 성장기 어린이에게도 좋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