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의외의 음식이 있다.
대구와는 좀처럼 짝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음식, 평양냉면이다.
대구에 평양냉면이 있다는 게 알려진 건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구의 평양냉면 노포
지난 5~6년간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에서 평양냉면의 열기가 아주 뜨거웠다. 평양냉면의 오묘한 맛에 중독된 사람이 많아지다 보니, 최근에는 신생 평양냉면 가게도 꽤 생겼다. 물론 수도권 지역의 얘기다. 평양냉면의 열기가 대구에서도 번진 건 맞는 듯하다. 대중의 입맛에 맞춰 문을 연 신생 평양냉면집도 분명히 있다. 그것도 수가 적지 않은 편. 조금만 공들여 찾아봐도 7~8곳의 평양냉면집이 눈에 띈다.
대구의 평양냉면에 관심이 간 건 그런 신흥 냉면집 때문이 아니었다. 50년이 훌쩍 넘은 노포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부쩍 관심이 갔다. 대구에도 꽤 오랜 역사를 가진 평양냉면집이 있었다는 건 음식사회학의 관점으로 볼 때 아주 흥미로운 일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음식이 맛있다 맛없다, 저 집이 유명하다 아니다 정도로만 구분해왔지만, 실상 음식이라는 건 사회현상의 한 단면이다. 원론적으로 이야기하면 평양냉면은 원래 이북 음식이다. 그런데 남쪽에서도 평양냉면이 이어져 오고 있었고, 심지어 최근에는 젊은 층에서도 평양냉면을 선호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평양냉면이 남쪽에서 명맥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는 사람이 그 주변에 늘 있다는 방증이다.
평양냉면이 그 특유의 물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맛을 꾸준히 찾는 고객층이 반드시 필요하다. 서울 사대문 안에 오래된 평양냉면집이 많다는 건 그만큼 이북 출신이 많았고, 수요가 있었다는 이야기다. 한편으로는 이런 사례도 있다. 공주에도 평양냉면을 하는 집이 있었다. 그곳을 가본 사람들은 “아, 이건 평양냉면이다.”라고 했는데, 어느 순간 이 집은 평양냉면이 아닌 막국수라고 이름을 바꿨다. 그 맛을 찾아오는 사람이 많지 않은 데다 장사를 하기 위해 그쪽 지역의 입맛에 맞춰 개량하다 보니 처음의 맛과는 많이 달라진 것. 천안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대구의 평양냉면 노포는 두 군데인데, 그중 하나가 부산안면옥이다. 2.28기념 중앙공원 맞은편 공평동 골목 안에 있다. 대구에서 평양냉면을 하는 것도 신기했는데, 상호에 부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유가 궁금했다. 알고 봤더니, 이 집의 창업주가 본래 부산에서 평양냉면을 만들어 팔다가 대구로 오신 분이었던 것. 연유를 들어보니 한국전쟁 때 피난 온 분이 부산에서 냉면 장사를 시작하셨던 게 시초였다. 그러다가 대구로 옮겨왔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평양냉면 가게
농촌진흥청 자료를 살펴보면 메밀의 주산지와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나 피난민 수용소의 지역이 거의 일치한다. 그리고 다른 자료를 보면 전쟁 이전까지 평양에는 40여 곳의 제면소가 있었고, 대규모 면옥은 5곳이었다. 안면옥, 중앙면옥, 제일면옥, 임면옥, 기성면옥인데, 그중 안면옥이 부산안면옥의 본류다.
안면옥은 1905년에 평양에서 문을 연 집이었고, 주인의 성인 ‘안’을 면옥의 이름으로 썼다. 현재 대구에서 이 집을 운영하고 계신 사장님은 방 씨인데, 이분의 외삼촌인 안목천 씨가 부산으로 냉면집을 옮겨갔다. 그리고 1969년에 다시 외조카인 방수영 씨가 대구로 옮겨왔다.
전쟁 이전의 역사까지 고려하면 부산안면옥은 기록으로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냉면집이다. 안면옥이 부산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한국전쟁 당시 부산에 평양냉면이 존재할 수 있었다. 부산의 냉면이 재료 수급과 지역민의 입맛에 따라 변화하면서 밀면이라고 부르는 음식으로 자리 잡게 된 게 아닐까, 조심스럽게 짐작해본다.
대구에는 부산안면옥과 더불어 대동면옥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노포가 있다. 부산안면옥과 비슷한 시기에 생긴 집인데, 서로 거리가 멀지 않다. 약령시 건너편의 계산 골목 안쪽에 있다. 둘의 거리는 어림잡아 약 2~3킬로미터 정도로 아주 가깝다. 맛도 엇비슷하다. 알고 보니 여기는 부산안면옥의 친인척이 문을 연 집이었다. 하나의 뿌리에서 나와 경쟁자 관계가 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각자의 매력을 바탕으로 살아남았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두 집은 냉면의 맛도 엇비슷하다. 큰 차이를 느끼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각자의 개성은 분명하다.
진한 육향의 육수와 강렬한 인상의 냉면
굳이 차이를 찾자면 냉면을 먹기 전에 내주는 육수가 아닐까. 부산안면옥은 육수에 5년 된 풍기 인삼을 넣는다. 반면 대동면옥은 육수 그 자체에 좀 더 집중하고 있다. 대동면옥이 흥미로운 지점은 하나 있다. 물냉면과 비빔냉면의 면을 다르게 사용한다는 점. 흔하지 않은 경우다. 이 집은 물냉면에 메밀 함량이 높은 면을 쓰고 비빔냉면에는 고구마전분의 비율이 높은 면을 쓴다. 평양의 메밀국수와 함경도의 감자농마국수라는 양대 국수 문화를 한 곳에서 보여주는 셈이다.
부산안면옥이나 대동면옥이나 육수를 낼 때 한우의 비율을 아주 높게 잡는다는 점은 똑같다. 두 집 모두 육수에서 육향이 아주 진하게 풍긴다. 이 두 집의 냉면은 서울의 밋밋한 느낌보다는 좀 더 강렬한 인상이다. 서울에서 이름 좀 날린다는 냉면에 익숙해 있다면 염도가 높게 느껴질 법하다. 그만한 육수가 진하다.
한동안 냉면 마니아의 지식자랑을 의미하는 ‘면스플레인’이라는 말이 유행했었다. 그중의 하나가 평양냉면집에서 비빔냉면을 먹는 건 바보짓이라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유행에 휩쓸리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평양냉면 가게의 비빔냉면도 무시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산안면옥과 대동면옥 두 집은 비빔냉면도 정말 좋다.
이 두 집을 찾아간다면 반드시 명심해야 할 사항이 있다. 마치 스페인의 유명한 미슐랭 3스타 레스토랑처럼 일정 기간은 운영을 안 한다는 점이다. 두 집 모두 겨울에는 손님이 없어서 11월 30일 이후부터 3월 전까지 영업을 하지 않는다. 지난겨울에 이걸 모르고 찾아갔다가 낭패를 봤다.
물론 대구에는 여기 못지않은 가게가 많다. 꽤 오랜 역사를 가진 집도 있고, 최근에 생긴 집도 있다. 가게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호불호가 심하게 갈릴만한 집도 있다. 그래도 냉면을 좋아한다면, 뜨거운 여름 성수기가 오기 전 대구에서 냉면 순례를 한 번 다녀오는 게 어떨까. 아마 2~3일은 점심 저녁으로 냉면만 먹어야 할지도 모른다.
냉면의 주재료가 되는 메밀은 단백질이 비교적 풍부한 편이다. 라이신 (lysine), 시스틴 (cystine) 등 곡물에 부족한 필수 아미노산을 함유하고 있고 비타민 B군, 그중에서도 비타민 B2가 많다. “쌀이나 보리보다 영양가가 높다.”라는 말의 근거는 여기에 있다. 메밀의 루틴 (rutin) 성분은 혈관을 튼튼하게 하여 혈압 및 혈당 수치를 조절해준다. <동의보감>에는 메밀이 비위장의 습기와 열을 내려주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소화를 잘되게 한다고 기록돼 있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