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학생이라고 안 아플까
일반적으로 월경도 하고 예민하고 체력이 달리는 여학생들이 더 많이 아플 것으로 생각하지만 힘든 데 남녀가 따로 없다.
남고생, 태권도 유단자. 수험생이고 체력보강을 위해서 찾아왔지만 자세히 진찰을 해보니 고구마 줄기처럼 증상들이 딸려 나온다. 경추가 펴져서 일자 목으로 어깨 결림, 축농증 수술은 중학교 때 받았으나 여전히 코막힘이 심해서 킁킁거림. 귀 울림도 있고 머리가 멍하다. 키 성장은 했는데 근육이 늘지 않아서 힘이 딸린다. 요추 좌우로 냉적이 있어서 오래 앉아 있으면 허리가 아프다. 살도 안 찌고 수족냉증이라 손발이 차갑다 못해 마비가 온다. 여자만 냉증이 있는 게 아니란 말씀.
빨리 낫게 하고 비용도 적게 들이면서 근본적으로 나아지는 치료를 해주는 게 좋은 의사다. 돈 많이 들이고 오래 치료하라고 하면 누군들 못하겠냐고. 택시 탔을 때 기사님이 빙 돌아서 가면 바가지 쓰는 것 같고 기분 안 좋다. 소소한 증상들을 정리한다고 수험생의 시간을 낭비할 것이 아니라 분명히 환자에게 꼭 필요한 ‘지름길’을 찾으면 절반은 성공이다.
광부가 광맥을 찾듯 지름길을 탐색해보니 뇌력 보강과 부신 치료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축농증으로 코가 붓고 일자목으로 경추와 어깨 근육이 피로하면 뇌에 산소 부족과 혈류 순환이 약해진다. 두통, 저혈압, 아침 기상 힘듬, 귀 울림, 집중력 저하, 어깨 결림 등은 <청상견통탕> 처방으로 결정하였다. 허리 촉진에선 신수혈과 명문혈에 생긴 냉적으로 보아 부신 기능 약화에 따른 신진대사 저하증을 중점으로 <소영전>을 합방하였다.
한의 치료의 묘미는 증상과 체질에 따라 덧셈 뺄셈으로 복합적인 ‘맞춤 처방’을 구성하는 데 있다. 약을 먹자 증상들이 나아지면서 얼굴 피부가 하얘지기 시작했다. 부신에 침을 맞기 위해서 들릴 때마다 나도 신기하게 얼굴을 쳐다보았다. 원래 검은 얼굴인 줄 알았는데 볼과 이마부터 뽀얗게 윤기가 나면서 제 색깔이 돌아오는 것이었다.
“자기 얼굴이 원래 이렇게 하얬었어? 한약 먹고 보너스로 피부까지 좋아졌으니 경사 났네. 이참에 엄마 소원 좀 들어드리자. 아침 깨울 때 벌떡 일어나 드리는 게 효도여~”
녀석은 볼우물을 깨물며 빙그레 웃었다.
하루도 안 아프다는 날이 없어요.
키 175cm, 체중 65kg 남고생. 농구, 달리기, 국선도에 헬스 트레이닝 등 운동 좋아하고 체격도 늠름한데 엄마는 걱정이 늘어졌다.
“젊은 애가 하루도 아프다는 말 안 한 적이 없어요. 오늘은 어깨가 결린다고 찡그리고 아침마다 알러지 비염으로 훌쩍이지 않나. 공부해야 되는데 맨날 머리 아프다고 눕질 않나. 대신 아파 줄 수도 없고 참 속상해요.”
“고등학생 다들 그렇게 힘들어해요. 어려서 철모르니까 교복 입혀 놓으면 열 시간씩 앉아서 공부하지. 그 세월이 십수 년이잖아요. 예전 우리 같으면 어디 가서 두 시간도 못 앉아 있어요. 땡땡이 안 치고 졸업장 받는 것만 해도 장한일이죠.”
자나 깨나 앉으나 서나 밤이나 낮이나 뇌리 속을 지배하는 시험 스트레스는 심신을 지치게 하고 뇌력을 깎아 먹는다.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 ‘머리는 좋은데’, ‘욕심이 없어서’, ‘노력을 안 한다.’라며 혀를 차시지만 본인들이 애가 더 탄다.
공부가 잘되면 뇌힘이 딸려서 피곤하고 능률이 안 나서 공부가 손에 안 잡히면 마음이 괴로워서 더욱 지치는 것이 시험 스트레스다. 신경이 예민한 애들은 스트레스의 중압감을 극복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통증과 괴로움을 호소한다.
두통은 기본이고 어깨 결림, 소화 불량, 가스 더부룩, 배 아픔, 코 막힘, 눈 피로, 비염 등 증상도 다양하다.
“입맛 없다. 배 아프다. 밥을 안 먹고 가려고 드니 이것저것 해대느라 골 빠져요. 잘 먹어서 해주면 다음엔 안 먹고 변덕이 죽 끓듯 하죠. 애 기다리느라 맘 편히 잠도 못 자요. 이런 시집살이도 없어요. 남편은 남편대로 애만 챙긴다며 삐지고...”
옆방에서 공부하는 다 큰 아들 신경 쓰이게 할까 봐 부부 생활도 거절하고 반찬도 아이 위주로 장만하게 되니 남편까지 불만이 많단다.
“데리고 들어온 자식도 아닌데 중간에서 제가 눈치가 보여요.”
여성학자 오한숙희 님의 책에도 나온다. 남편이 라면 끓여달라면 힘들다고 그냥 아무거나 먹으라던 아내가 아들이 들어오자 달걀까지 동동 띄워서 라면을 끓여다 바치는 걸 보고 화가 치밀어 싸움이 커진 이야기. 아마 가출까지 했다지.
이 정도면 수험생을 뒷바라지하느라 엄마의 육체적 정신적 그림자 노동까지 장난이 아니다. 남편과 자식은 빚쟁이라고 했던가. 이승에서 뼈 빠지게 갚아야 다음 생에서 안 만난다니 말이다. 입시공을 연마 중인 아들과 육아공을 기르는 엄마에게 새롭게 갈고 닦아야 할 수련법을 전수하였다. 시중의 정신을 흥분시키는 음료수를 조심하고 배 아픈 아들에겐 유자차나 매실차를 주라고. 머리 내공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밥 안 먹는 것은 배가 불편해서 안 먹기도 하거니와 스트레스가 바로 비위 기능을 억눌러 버리니 뇌력 보충도 같이 필요하다. 뇌가 힘내야 소화도 잘된다. 어깨와 목이 아픈 아들에게는 때밀이 수건을 이용한 샤워 수련을 전수하였다.
우리나라의 입시는 부모와 아이들이 치르는 복식조 경기 같다. 부모님은 선수가 아니라 응원단이다. 잘하라고 격려만 잘해줘도 될 일을 같이 경기장에 뛰어들어 힘을 빼느라 내분에 싸움까지 일어난다. 부모는 눈 맞추고 많이 웃어주면 된다. 귀하고 어여쁜 아이에게~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