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는 산삼, 집에는 고3
멀리서 찾아온 학생과 학부모.
차를 타고 오는 동안에도 두통에 골이 흔들리는 어지럼증에 차멀미가 나서 아주 힘들어했단다.
“그 동네 선생님한테 고치지 왜 이렇게 멀리 찾아오느라 고생했어요?”
“아유~~ 그동안 안 가본데가 없이 좋다는데 다 쫓아다녔어요. 신경정신과도 다녀봤는데 한창 공부도 해야 하는 시기에 한없이 잠만 자려 드니 선생님이 자세히 진찰이나 좀 해주세요. 왜 그런지... 이젠 나도 얘 때문에 미칠 것 같아요.”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멀쩡한데 엄마 말을 듣고 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아주 어릴 때부터 머릿속이 터질듯하게 아팠고 차만 타면 멀미를 하거나 아니면 잠만 자고 늘상 어지럼증을 느꼈다고 했다. 고등학교 때 정밀 검사를 받았는데 혈액 검사와 엑스레이도 찍고 MRI 촬영도 했는데 아무 이상이 없다고 했다. 결국 신경정신과로 보내져서 신경성 스트레스에 기면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약을 먹게 되었지만 그때 뿐이었다고 한다.
“평소 걸핏하면 화를 잘 내고 공부하라면 더 난리를 치니 꾀병 같아요.”
“공부가 취미가 아니고 다른 게 더 하고 싶은가 보지요. 공부하라는 말 듣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나래도 싫지...”
“그게 아니에요. 맨날 머리 아프다고 해서 공부하라고도 잘 안 해요. 근데 대학교는 가야잖아요. 그저 보통 애들같이 화를 내면 제가 말도 안 해요. 우울하게 말도 안 하다가 난동을 부려서 집에서 별명이 폭탄이에요.”
두통, 어지럼증, 변비에 아토피까지 있으며 기억력이 안 좋고 집중을 할 수가 없어서 공부에 어려움이 컸다. 만성적으로 배도 아프고 화가 나면 그대로 잠을 자고 낮 12시-2시나 되어서야 일어난단다. 옆에서 수험생을 지켜보는 부모 마음이 오죽했겠는가. 엄마도 정말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눈물을 글썽이며 이젠 자신도 미칠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부모는 꾀병이라고 생각하고 자식은 안 믿어주어 억울하니 갈등의 골이 깊다.
내 머리는 폭발할 것 같아요.
모든 아픔엔 이유가 있다. 통증의 원인을 환자가 증명해보일 의무는 당연히 없다. 두통의 종류는 2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보통 머리가 심하게 오랫동안 아프면 MRI를 찍어보고 오는데 아무 이상이 없는 경우도 많다. 뇌동맥류라든가 뇌암, 뇌출혈 등 구조적으로 이상이 있는 경우에만 이상이 나타나는데 젊은 나이에는 드물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두통은 기능적으로 뇌저혈류가 부족하거나 뇌신경의 흥분, 습담으로 뇌의 부종이 생겼을 경우 혹은 두피 근육의 긴장이나 피로들이 겹쳐서 나타난다. 또는 고혈압이나 지나친 저혈압, 경추의 비틀림 및 턱관절 장애, 저작근의 피로 등 아주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이 서로 맞물려서 혈행 장애를 가져오고 근육과 신경통으로 이어져 두통이 생기게 된다. 특히 여학생은 월경 주기에 나타나는 생리성 두통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머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아픈지 설명을 해줄래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쿡쿡 쑤시고요. 여기가 특히 아프고 무겁고...내 머리는 폭발할 것 같아요.”
손으로 짚는 부위는 관자놀이의 태양혈이다. 나는 책에서 뇌신경 감각/운동신경 분포 이미지를 펼쳐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주었다.
“두통이라고 부르는 것은 머리에 나타나는 두부 신경통의 약자라고 생각하면 돼요. 나이가 어리니까 뇌 속에 큰 병이 있는 경우는 거의 없거든. 대부분 여기 보이는 삼차신경이 주로 통증을 느끼는데 아픔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거니까 풀어주면 되지. 잠을 못자서 온 건 푹 자주면 되고, 근육이 뭉쳤으면 냉찜질도 좋고 두피 마사지를 해주면 더 기분이 좋지. 그때그때 다르지만 다 해결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말아요.”
삼차신경 자체는 뇌간에서 빠져나와서 머리와 눈, 이마, 볼, 턱의 얼굴 감각을 느끼는 신경줄이라서 뇌 CT나 MRI 검사로는 보이지 않는다. 태양혈은 족궐음담경락이 흐르며 턱의 사용으로 측두근의 피로가 겹치는 부분이다. 근육 피로와 통증이 오기 쉽다.
이 학생은 두부 신경통에 활맥(滑脈)이 빠르게 뛰고 있고 습담에 허열이 치받혀 몸이 붓고 심장이 빨리 뛰며 신경흥분 상태로 특히 간맥과 신맥의 균형이 깨져 있었다.
척추 진단은 목의 1-2번 경추가 비틀어져 추골 동맥을 압박하므로 뇌 속으로 가는 혈액 순환에 장애가 있고 두개골이 앞으로 숙여져 눈의 피로와 코 막힘에 산소 부족으로 인한 두통도 오고 있었다.
나쁜 자세와 한쪽 저작으로 인해 목이 갸우뚱하게 기울어 얼굴 모양도 양쪽이 조금 다르고 눈꺼풀이 소복하게 부어 있었다. 흉쇄유돌근과 승모근으로 가는 신경은 11번 뇌신경인 부신경이다. 근육과 신경은 같이 한 세트로 작동하는 복식조다. 목 앞쪽의 흉쇄유돌근이 많이 부어서 딱딱하여 뇌 쪽으로 통하는 내경 동맥의 혈행도 지장을 받았다. 등 쪽의 승모근도 뻣뻣하게 굳어있어서 경추의 커브가 없어지고 근육 긴장감이 심해졌고 견정혈은 늘 딱딱하게 뭉쳐서 만질 수도 없이 아파했다. 결국 심장에 아무리 피가 많다고 해도 뇌저로 들어가는 목 혈관의 혈액 순환이 나빠진 것이다.
복부 촉진에서는 배꼽 주위의 간문맥과 복직근이 굳어 있고 가스가 차서 손을 대기만 해도 통통거리는 소리에 장명이 심하였다. 배부 수혈을 만져보니 신수혈에 도토리만 하게 경결이 만져졌다. 평소 밥 대신 라면 떡복이 설탕을 무지 좋아하며 물은 안 마시고 음료수로 살아왔다고 한다. 따라서 혈액은 탁하고 먹은 음료가 몸속에서 껄쭉한 담음수독(痰飮水毒)으로 변하여 몸의 신진대사를 가로막고 있었다. 신장의 혈액 여과 기능은 저하되어 아토피는 물론이고 배앓이 복통에 느글거리는 담음 위완통으로 속이 더부룩하고 답답하니 짜증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증상은 코 빼고는 안 아픈 데가 없이 전신으로 복잡하여 악순환이 꼬리에 꼬리를 문 결과였다. 본인이 제일 고통스러워하는 증상부터 치료하여 얽힌 실마리를 풀면 나머지 증상도 솔솔 풀릴 것이 분명하였다.
그래서 잡은 진단명은 담궐두통(痰厥頭痛)으로 머리 두통과 느글거림, 어지럼증을 치료하면 두뇌의 혈액순환이 좋아지고 산소도 충분히 공급되어 기억력, 집중력, 학습능력도 좋아져서 자신감도 회복될 것이었다. 특히 음료수를 많이 먹거나 습담으로 오는 담궐두통의 경우 두피 쪽에도 부종이 생기고 혈관 긴장성 두통 등이 생기는데 이걸 임시 땜질로 무마시키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반하백출천마탕+총명탕 합방>으로 뇌 신경피로를 풀어주고 보혈(補血)약으로 뇌간에 혈액 공급을 풍부히 해주고 보기(補氣)약으로 심장에서 나온 혈액을 머리로 끌어 올려주었다. 전화로 안부를 묻다가 보름 후에 약을 다 먹은 학생과 엄마가 웃으면서 한의원을 들어섰다.
“우리 큰애가요. 치료약을 정말 열심히 먹더니 부어 있던 목이 가늘어 지고 자라목이 펴진 것 같아요. 요즘은 화도 잘 안내고 잠도 줄어들고 머리 아프다 소리 별로 안하는 것 같아요. 다 선생님 만난 덕분이에요.”
“아니에요. 스스로 나으려고 약속도 잘 지키고 음식 조심도 한 덕이 크지요.”
본인 스스로 몸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까닭을 알고 병에 대한 이해를 하니 스스로 치유의 길로 들어선 것이었다.
꼬인 것을 하나하나 풀어보자.
흔히들 비싼 수술이나 투약만이 치료라고 생각하는데 그건 아니다. 병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잘못된 식습관, 자세, 환경, 심리적 문제 등이 오랫동안 해결되지 못하고 누적되어 생긴다.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듯이 병의 본 모습이 드러날 때 전체적으로 개선점들을 고치는 것이 효과적이고 지속적인 치료의 성패를 좌우한다. 사소해 보이는 것들을 하나하나 짚어서 경결되고 맺힌 것을 풀어주려면 의사는 엄청 꼼꼼해야 한다. ‘이건 이렇게 저건 저렇게 바꾸라’고 목청을 높이다 보면 기운이 빠져 버린다. 말하는 것은 에너지가 많이 들고 적혈구가 파괴되며 진액이 마르기 때문이다. 나도 언제 지쳐서 말 없는 의사가 될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잔소리가 세다. 문제는 비싼 투약과 검사, 시술 등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정성 들여 말로 해주는 조언은 치료가 아닌 것으로 받아들인다. 무지 섭섭하지만 타고난 ‘다정도 병’인 애정을 거둬들이고 싶지는 않다.
학교 다닐 때 시험이 가까워 오면 우리들은 합창으로 졸라댔다. “선생니임~ 문제 좀 가르쳐 주세용... 안 되면 힌트라도요.” 못 이기는 척 흘려주신 힌트들은 꼭 시험에 나온다. 누워서 떡 먹기로 알아맞히면 얼마나 기분이 째지랴. 의사의 잔소리에 담긴 ‘족집게 힌트’로 치료 효과를 톡톡히 보자.
하나. 목 교정
인체 모형도와 그림을 보여주며 추나 요법으로 목 교정을 해주고 베개와 엎드려 자는 자세를 바꾸게 하였다. 고개를 숙이면 경추가 뒤로 빠지면서 두개골이 비강을 압박하니 책을 볼 때는 독서대를 사용하게 하였다. 자라목은 명심할 것.
둘. 오링 테스트
자기가 좋아하는 캔 음료와 총명탕, 두 개를 비교하여 뇌의 반응점과 신장의 압통점에 오링 테스트를 한 결과 음료수는 힘이 형편없이 빠지고 한약은 에너지가 엄청 좋아지는 것을 직접 몸으로 느끼게 해주었다.
셋. 식이 지도
음료수 속에 든 설탕과 흥분제로 인해 부정적인 감정 변화가 폭발적으로 나타나므로 줄이게 하였다. 대신 자연식으로 심신의 균형을 조절해주는 된장, 오미가 골고루 든 김치, 나물, 잡곡밥, 미역, 생선, 산물로 골고루 먹게 하였다. 물은 생수와 진하게 달인 보리차를 같이 먹게 했다.
넷. 생활 지도
이어폰, 컴퓨터, 핸드폰 장시간 사용 금지. 취침 시 머리맡에 전자제품을 제거하고 높고 넓적한 솜 베개를 낮고 좁은 메밀 베개로 바꾸어 주었다. 자주 의자에서 일어나 몸을 펴주고 햇볕을 쬐면서 팔다리를 힘차게 저으며 걸으라고 부탁. 혈액과 체액을 오염시켜 신장을 망가뜨리는 초콜릿, 설탕, 이온 음료, 빙과류, 주스도 줄일 것. 대신 채소와 생과일을 많이 먹을 것. 음식을 양쪽 어금니를 이용해서 같이 씹기를 당부하였다.
다섯. 마사지
목의 흉쇄유돌근과 머리 마사지를 수시로. 햇볕 쪼이기 강추.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