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 수유를 해 본 엄마라면


모유 수유를 해 본 엄마라면 한 번은 겪어봤을 상황이 있다. 아이에게 규칙적인 시간 간격으로 모유를 먹이는 것은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해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그 번거로움을 알 지 못할 것이다. 아이가 보채면 자다가도 일어나서 모유를 먹여야 하니 마음대로 잠도 못 잔다. 아이를 위해서 엄마의 이런저런 편안함을 포기하고 모유 수유를 하다 보면 가끔 게을러질 때도 있다. 가끔은 너무 피곤해서 쓰러져 자다 보면 모유를 줘야 할 타임을 놓칠 때도 있다. 가끔은 모유 대신 분유를 줄 때도 있다. 가끔은 아이를 다른 이에게 맡기고 오랜 시간 외출을 하느라 모유 수유를 못 할 때도 있다. 이 모든 경우에 유즙이 유선에 정체되어 버린다.


유선이 유즙에 정체되면 무척 아프다. 빨리 짜내어 버리고 싶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증상이 생긴다. 바로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이다. 제때 수유를 하지 않아서 유선에 유즙이 정체된 것뿐인데 몸에서 열이 나고 손발이 뜨거워진다. 그저 유즙이 정체된 것뿐임에도 이렇게 발열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모유 수유를 해 본 엄마라면 한두 번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유즙을 짜내어 버리면 통증과 발열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해열제고 진통제고 다 필요 없다. 그저 유즙을 짜내어 버리면 모든 통증과 발열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다. 이런 상황에서 유즙은 짜내지 않고 해열제와 진통제만 먹는 것은 어리석은 짓일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상황을 ‘증유(蒸乳)’라고 부른다. 유선에 유즙이 가득 차서 붓고 아픈 상황을 바로 증유(蒸乳)라고 한다. 그리고 그 처치법은 아주 간단하다. “출산 후에 발열이 생기는 다섯 가지 경우가 있는데, 그 중 증유(蒸乳)에는 반드시 유방이 부으면서 아프다. 단지 젖을 짜버리기만 하면 저절로 낫는다.” 정체되어 있는 유즙을 짜기만 하면 발열은 저절로 낫는다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연한 얘기이다.



음식의 정체도 발열을 일으킬 수 있다


아이들에게서 열이 나는 원인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발열의 원인은 수십 가지라고들 말한다. 그런데 생활 속에서 제일 흔한 발열은 바로 감기로 인한 발열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열이 나면 바로 감기에 걸렸나 보다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아이들에게 잘 생기는 발열의 또 다른 원인이 있다. 엄마들을 잘 속이고 의사들도 잘 속이는 발열이다. 바로 음식의 정체, 즉 식체로 인한 발열이다.


식체란 먹은 것이 잘 운화(運化, 소화)되지 못하고 꽉 막혀있는 상태를 말한다. 동의보감에서는 이를 음식에 몸이 상했다고 하여 ‘상식(傷食)’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상식(傷食)이 오래되면 음식이 적취를 이룬다고 하여 ‘식적(食積)’이라고 부르는 더 심한 상태가 된다. “상식(傷食)이란 음식을 많이 먹은 것으로 인하여 소화가 되지 못하고 가슴과 배에서 정체되어 배가 그득하고 답답한 것이다. 이때에는 음식 먹기를 싫어하고 쉰 트림이 올라오며 냄새나는 방귀를 끼고 혹은 배가 아프고 혹은 토하고 설사하게 되는데 증세가 심하면 발열이 생기고 머리가 아프게 된다. 이것이 상식(傷食)이란 것이다.” 음식에 몸이 상하면 생기게 되는 여러 증세를 설명하는 동의보감의 구절이다.


이 구절을 가만히 보면 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못하고 ‘정체’되면 ‘발열’이라는 증세가 생김을 알 수 있다. 유즙이 ‘정체’되면 ‘발열’이 생기는 것과 매우 유사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식체로 인해 발열이 생겼을 때에 어떻게 처치를 해야 할까? 유즙이 정체되어 생긴 발열에는 그저 유즙을 짜내어버리면 바로 열과 통증이 그쳤다. 그렇다면 음식이 정체되어 생긴 발열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해열제가 답일까?


해열제가 분명히 그리고 신속하게 열을 내려주긴 하겠지만 문제는 약 기운이 떨어지면 또 열이 오른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상식(傷食)으로 인한 발열에는 해열제가 아닌 소화제를 주어야 한다. 음식이 정체되어 소화되지 못해서 생긴 열이니 음식이 소화되도록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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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한 발열 vs 상식 발열


감기에 걸려도 발열이 생기고 음식에 체해도 발열이 생긴다. 상한(傷寒)에도 발열이 생기고 상식(傷食)에도 발열이 생긴다. 엄마도 속고 의사도 속는다. 지금도 엄청나게 속고 있고 옛날에도 엄청나게 속았나 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상식(傷食)에도 발열이 생김을 특히 강조하여 놓았다. 상식(傷食)이 오래되어 생기는 식적(食積)에도 발열이 생김을 특히 유념하도록 당부하여 두었다.


얼마나 속았던지 그리고 얼마나 헷갈렸던지 ‘식적류상한(食積類傷寒)’이란 구절까지 만들어 놓을 정도였다. 식적류상한이란 식적(食積)과 상한(傷寒)이 유사(類)하다는 뜻이다. 식적과 상한이 도대체 뭐가 유사하다는 것일까? 바로 똑같이 발열이 생기기 때문에 유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헷갈리지 말고 잘 감별하라는 것이다.


감기는 한기에 몸이 상했다고 하여 상한(傷寒)이라 부른다. “상한(傷寒)의 초기에는 몸이 으슬으슬 춥고 발열이 생긴다.” 오한과 발열은 감기의 흔한 증상이다. 


그런데 상식(傷食)에도 똑같이 발열이 생긴다. “무릇 상식(傷食)이 적체를 이루게 되면 또한 발열과 두통이 생길 수 있으니 증세가 마치 상한(傷寒)과 유사하다.” 얼마나 상식과 상한이 유사했으면 이렇게 구구절절 강조를 해놓았을까? 얼마나 엄마와 의사가 잘 속았으면 이렇게 설명하고 강조하고 또 당부했을까?



틀린 그림 찾기


상식과 상한이 유사하므로 이를 감별하는 것은 마치 틀린 그림 찾기와도 같을 지경이다. 비슷하게 발열이 생기긴 하지만 그래도 상식과 상한은 다른 점이 있다. 자세히 관찰한다면 상식인지 상한인지 구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맥을 짚는 것을 제외하고 엄마가 감별할 수 있는 내용들을 살펴보자.


먼저 공통점부터 살펴보자. 상식과 상한 모두 발열이 생긴다. 또한 으슬으슬 추워하는 오한도 생길 수 있다. 두통도 똑같이 생긴다. 그리고 두 경우 모두 식욕부진이 나타난다. 하지만 상한보다는 상식인 경우에 식욕부진의 정도가 더 심하다. “음식에 상한 상식(傷食)의 경우엔 반드시 음식 먹기를 싫어한다.” 라고 하였다. 두 경우 모두 가래 끓는 기침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상식보다는 상한의 경우에 가래 기침의 정도가 훨씬 더 흔하고 심하다. 이제 차이점을 살펴보자. 상한에는 있고 상식에는 없는 증상들이다. 상한에는 콧물이 흐르지만 상식에는 콧물이 흐르지 않는다. 상한에는 목이 따끔거리고 아프며 편도가 붓지만 상식은 그렇지 않다. 


반대로 상식에는 있고 상한에는 없는 증상들이다. 상식에는 복통이 있지만 상한에는 없다. 상식에는 트림을 하지만 상한에는 없다. 상식에는 냄새나는 방귀를 뿡뿡 뀌어대지만 상한은 그렇지 않다. 상식에는 대변 냄새가 지독해지지만 상한에는 대변 냄새의 변화가 없다. 상식에는 설사를 할 수 있지만 상한에는 그렇지 않다.


만약 상식이라면 아이가 음식을 급하게 먹었거나 많이 먹었거나 하는 등의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만약 상한의 경우라면 아이가 찬바람을 쏘였거나 집안의 다른 식구가 감기에 걸렸던가 하는 등의 어떤 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비슷한 모양의 그림판이지만 두 눈에 불을 켜고 자세히 살펴본다면 아이의 발열이 상한 발열인지 상식 발열인지 감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물론 발열이 생기는 원인이야 수십 가지이지만, 생활 속에서 흔하게 접하는 두 가지 발열의 원인이 이러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아이가 열이 난다고 무턱대고 해열제부터 먹이지 말자. 아이의 1차 병원은 바로 엄마이다. 엄마가 아이를 잘 관찰해야 하고 엄마가 상황에 맞는 판단을 잘 해야 한다. 틀린 그림을 잘 찾기 위해서는 엄마의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