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SH22-01.jpg


고통의 가려움과 희망의 가려움


먹을거리와 환경이 오염되면서 해가 갈수록 아토피 환자들의 수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혹시 아이의 얼굴에 태열기라도 보이면, 혹시 아이의 팔다리 접히는 곳에 홍반이라도 보이면 아토피가 생긴 것인가 하여 엄마들의 가슴이 철렁하게 된다. 이런 아토피의 가장 큰 고통은 다름 아닌 가려움이다.


“원장님! 아토피는 너무 심한 상태인데 밤마다 아이가 미친 듯이 긁어대니 정말 보고 있기가 너무 괴로워요. 제발 좀 긁지 말라고 양쪽 팔을 붙들어 매고 있어도 소용이 없고, 아토피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아놔도 다 풀어 버려요. 어쩌면 좋죠?” 아토피 아이를 치료하다보면 흔히 받게 되는 상담 내용이다.


“원장님! 아이가 많이 좋아졌는데 긁는 것은 여전하네요. 하루 종일 여기저기 긁적이고 또 딱지를 계속 뜯어 놓아요. 나을 만하다가도 긁어 놓으니 좋아졌다 나빠졌다 반복되네요. 긁지 말라 해도 듣지도 않고요. 이거 어떡하면 좋죠?” 이 역시 아토피 아이의 엄마에게서 주로 받게 되는 질문이다.


두 질문이 비슷해 보이지만 각각에 대한 나의 대답은 조금 다르다. 앞의 질문처럼 아토피가 한참 심할 때 느끼는 미칠 듯한 가려움이 있다. 그야말로 고통의 가려움이다. 이때는 벅벅 긁고 나면 피부는 따갑지만 뭔가 쾌감이 든다. “가려울 때에 긁으면 가려움이 풀어지는 것은 피부가 따갑고 얼얼해져서 그 얼얼함이 피부의 화(火)를 흩어주기 때문이다.” 화(火)를 흩어준다는 것은 소통되지 못하고 피부에 엉켜있는 기혈의 흐름을 긁음으로써 소통시켜 준다는 뜻이다. 새벽에 가려워서 잠에서 깬 아이는 시원할 정도로 긁고 나야 화(火)가 흩어지고 기혈이 소통되어 비로소 다시 깊이 잠이 들 수 있다. 만약 절대 긁지 못하게 엄마가 밤새 손발을 붙들고 있으면 아이는 가려움이 해소가 되지 않아 밤새 잠을 설치게 될 것이다.


다행히 피부는 재생능력이 빠르다. 긁은 직후에는 상처가 보이지만 깊이 잠이 든 후 아침에 깨어나면 어느 정도 아물어 있다. 그러니 이런 경우에는 밤새 잠을 설치게 만드느니 차라리 긁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낫다. 대신 손톱을 깔끔하게 잘라주고 자기 전에 꼭 손을 씻도록 해줘야 한다.


두 번째 질문처럼 다 나아가는 상황에서 느끼는 스멀스멀한 가려움도 있다. 붉은 기운도 가라앉고 조금만 더 좋아지면 피부가 깨끗해지기 일보 직전인데 아이가 계속 긁적이면서 딱지를 뜯어내는 것이다. 이런 가려움은 미칠 듯한 가려움이라기보다는 근질근질한 가려움이다. 새살이 돋을 때 느끼는 가려움이다. 이렇게 아토피가 호전될 무렵에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긁적이고 있다면 긁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다 나아갈 때 느끼는 희망의 가려움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참아야 하는 가려움이다. 뜯어내지 말아야 하는 딱지이다.


반가운 진물과 안타까운 진물


아토피가 있는 아이를 둔 엄마의 또 하나의 걱정은 바로 진물이다. 아토피 부위에서 흘러나오는 진물 때문에 여간 곤혹스러운 것이 아니다. 이 진물 좀 안 나오게 하려고 연고도 발라보지만 그때뿐이다. 이 진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진물에도 종류가 있다. 아이의 아토피 부위에서 진물이 흐르고 있다면 먼저 그 색깔을 살펴봐야 한다. 진물을 닦아 보았을 때 색깔이 누렇고 탁하고 역한 냄새도 난다면 이는 분명 좋지 않은 진물이다. 그런데 만약 이 더러운 진물이 내 아이의 피부 밑에 계속 엎드리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과연 이 아토피가 나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이 더럽고 냄새나는 진물이 내 아이의 피부에서 완전히 다 배출되어야 가려움도 없어지고 아토피도 낫게 된다.


그러니 아토피 부위에서 누런 진물이 나온다면 이는 실은 반가운 진물이다. 나와야 하는 진물이다. 낫기 위해서 몸에서 스스로 내보내는 더러운 염증의 찌꺼기이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해야 한다. “반갑다, 진물아!”


반대로 진물의 색깔이 맑아서 마치 물과도 같고 또 냄새도 그다지 역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이런 진물은 더러운 진물이 아니라 환부가 완전히 아물기 전에 자꾸 긁어대어서 생기는 진물이다. 긁으면 안 되는데 자꾸 긁어서 살갗에 손상이 생겨서 나오는 양분이 담긴 진물이다. 다 나아가는데, 조금만 더 좋아지면 되는데, 이럴 때 긁으면 안 되는데 아이가 막 긁어버려서 갓 새살이 돋아난 부위에서 나오는 진물이다. 이런 진물은 색깔이 맑고 냄새가 심하지 않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해야 한다. “안타깝다, 진물아!”


각질이란 허물 벗기이다


가려움과 진물 외에 아이와 엄마를 괴롭히는 또 하나의 성가신 것이 있으니 바로 각질이다. 자고 일어난 후 아토피 부위에서 하얗게 혹은 누렇게 생겨난 각질을 보면 왠지 짜증이 밀려온다. 자다 긁어서인지 이부자리 위에도 우수수 각질이 떨어져 있다.


각질을 보면 어른이고 아이고 간에 뜯어내고 싶은 생각이 든다. 특히 아이들은 어디 구석에 조용히 앉아서 각질을 야무지게 뜯어내기도 한다. 각질이 죽은 살인 것 같아 왠지 뜯어내어야 아토피가 빨리 나을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각질이 한창 생길 때에는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 것일까?


아토피의 각질은 뱀의 허물과도 같다. 뱀의 피부는 계속 분열하며 자란다. 안쪽에서 새 세포가 자라나고 바깥쪽의 피부 세포층이 죽게 되면 이 죽은 세포층이 허물이 되어서 탈피를 하게 된다. 허물을 벗은 뱀의 새 피부는 말랑말랑하고 촉촉하며, 벗겨진 허물은 건조하고 뻣뻣하다. 아토피도 이와 똑같다. 안쪽에서 새 피부세포가 완전히 자라고 바깥쪽의 각질이 완전히 죽으면 그때에는 뜯어내지 않아도 저절로 각질이 떨어져 나간다. 그때까지 절대로 각질을 뜯지 말고 기다려줘야 한다. 이때 각질을 뜯어내는 것은 뱀의 설익은 허물을 억지로 뜯어내는 것과도 같다. 그 허물 벗기는 실패이다. 설익은 채로 노출된 뱀의 새 피부는 무척이나 따가울 것이다. 다음번 허물 벗기를 할 때까지 고통 속에서 기다려야만 한다.


뱀의 허물이 보이는 것은 허물벗기가 끝나갈 무렵이다. 아토피의 경우도 홍반 부위에서 하얀 각질이 보이면 아토피의 기세가 꺾였다는 뜻이다. 낫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각질은 무척이나 반가운 것이다. 각질은 절대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딱지 또한 마찬가지이다. 각질과 딱지는 바로 밑에서 한창 자라고 있는 새살을 잠시 보호하고 있는 것이다. 뱀의 허물 벗기를 기다리듯이 아이의 각질 벗기가 끝나기를 충분히 기다려줘라.



BSH22-03.jpg


이렇게 관리해 보자


우선 집안 어딘가에 사다 놓은 과자, 아이스크림, 색소 음료를 싹 치우자. 그다음으로 환부를 깨끗하게 잘 씻어준다. 그리고 취침 전과 기상 후 그리고 하교 후에 손발을 잘 씻게끔 한다. 흐르는 물로 잘 씻은 후 잘 말려서 피부가 보송보송해지도록 해준다.


가려워 긁는 것에 대해서 아이에게 야단을 치지는 말아야 한다. 가려워 긁는 것은 부처님도 예수님도 못 참는다. 그런데 어린아이가 어떻게 가려움을 참을 수 있으랴. 아토피가 심할 때에는 가려움도 심하고 진물도 탁하다. 이럴 때에는 “이만큼 진물이 나왔구나. 진물이 나온 만큼 더 좋아질 거야.”라고 설명한다. 아토피가 거의 나아가려고 할 때에는 가려움도 덜해지고 진물도 맑아진다. 아이가 자신도 모르게 긁적이고 있다면 “이제 다 나으려고 가려운 거야. 조금만 더 있으면 피부가 깨끗해질 테니 그때까지는 피부를 아프게 하지 말자.”라고 설명한다.


각질과 딱지는 일부러 뜯지 않도록 한다. 가려움은 참기 힘들어도 각질과 딱지 떼기는 참을 수 있다. 새살이 생기기 전까지 각질과 딱지가 충분히 덮어주고 있어야 하므로 알아들을 때까지 아이에게 설명해서 각질과 딱지에 절대 손을 대지 못하도록 한다.


부모의 조바심은 아토피에 극약이다. 빨리 가려는 욕심에 스테로이드제를 남용하거나 민간요법을 오용한다면 오히려 가장 늦게 도착할 수도 있는 병이 바로 아토피이다. 가장 편하게 가려고 하다가 오히려 가장 고통스럽게 될 수도 있다. 잠시 증상을 덮어버리는 약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음식을 바꾸고 습관을 바꾸고 환경을 바꾸는 노력이 필요하다. 아토피는 부모의 관찰과 지식과 인내심이 필요한 질병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