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가 비워져야 위에서 채운다
아이가 입이 짧아서 밥을 잘 안 먹으면 쫓아다니면서 먹이는 엄마들이 있다. 아이가 너무 안 먹는 것이 안타까우니 중간중간 간식을 계속 주는 엄마들도 있다. 그런데 이건 정말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걸 알고 있지만 그래도 아이가 배고플까 봐 마음이 아파서 또 간식을 주게 된다. 하지만 지금 한 숟가락 더 먹인 것 때문에 나중에 아이가 두 숟가락 덜 먹게 될 수도 있다.
위(胃)는 하루 3번 음식을 받아들이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걸 하루 종일 간식으로 채워버리면 막상 밥때에는 배가 고프지 않아 또 밥을 적게 먹게 된다. 이런 악순환은 좋지 않다. 위(胃)의 속성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찔끔찔끔 간식거리를 넣는 것이 오히려 밥양을 줄이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동의보감이 말하는 위(胃)와 장(腸)의 리듬은 이러하다. “음식이 위(胃)로 들어올 때에는 위(胃)는 채워지고 장(腸)은 비어있다. 음식이 아래로 내려가면 장(腸)이 채워지고 위(胃)는 비게 된다. 위(胃)가 채워져 있을 때 장(腸)은 비어 있고 장(腸)이 채워져 있을 때 위(胃)는 비어 있으니 이렇게 비워지고 채워지기를 교대로 해야 기(氣)가 위아래로 잘 흘러서 병 없이 살 수 있다.”
동의보감의 설명에 의하면 위(胃)와 장(腸)이 동시에 채워져 있을 때는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가 채워지면 하나는 비워져야 기(氣)가 상하로 순조롭게 잘 흘러 건강하다는 것이다. 또한 이 위(胃)가 비워져야 배고픔을 느끼게 되고 음식을 먹고 싶은 욕구를 느끼게 된다. 아침밥 적게 먹었다고 점심때까지 버티게 하기 위해 중간중간 간식을 계속 먹게 하면 위(胃)가 비워지지 않는다. 그러니 막상 점심때가 되어도 배가 고프지 않고 음식을 먹고 싶지도 않다. 간식 조금 먹이고 밥은 왕창 못 먹게 만드는 것이다.
포대의 크기만큼 쌀을 담아야
물론 자식이 밥을 푹푹 잘 떠먹어야 보고 있는 부모의 마음이 행복하다. 하지만 입이 유독 짧아 부모의 마음을 안타깝게 하는 아이들도 있다. 먹는 음식의 양이 적은 아이들, 입이 짧은 아이들, 식욕이 왕성하지 않은 아이들은 말하자면 밥통의 크기가 작은 것이다.
쌀을 담는 포대에도 크기와 용량이 있다. 그 용량대로 쌀을 담아야지 무리하게 욕심을 내어서 용량을 초과해 담으려 해선 안 된다. 포대가 찢어진다. 찢어져 터지고 나면 꿰맬 수가 없다. 찢어지기 전에 용량대로만 담아야 한다.
사람의 경우도 비슷하다. 아이의 타고난 밥통의 크기가 있는 것이다. 그 크기대로 밥을 담으려 해야지 억지로 쑤셔 넣는다고 해서 더 들어가지 않는다. 억지로 넣으려 했다가는 탈이 날 수도 있다.
식성이 좋아 잘 먹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의 장위(腸胃)는 크다고(大) 본다. 반대로 밥양이 아주 적은 아이들이 있다. 이런 아이들은 타고난 비위의 기운이 허약하여 식욕이 적은 아이들이다. “비위의 기운이 허약하면 음식 먹을 생각을 잘 하지 않는다.” 입이 짧은 아이에 대한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만약 입이 짧은 아이에게 끊임없이 ‘한 입만 더’를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포대의 용량보다 쌀을 더 담으면 포대가 터진다. 자신의 밥통 크기만큼 먹고 더 이상 먹지 않으려는 아이에게 끝까지 ‘한 입만 더’를 외치며 밥공기의 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억지로 먹게 만들면 어떻게 될까? 아마도 엄마의 마음은 뿌듯할지 모르겠지만 아이의 밥통은 무지하게 더부룩할 것이다. 이렇게 밥통의 크기보다 더 많은 음식을 먹어서 몸이 상하는 것, 바로 상식(傷食)이 되어 버린다.
이 상식(傷食)의 증세는 아이러니하게도 음식을 싫어하는 것이다. “음식에 상하면 반드시 음식 먹기를 싫어한다.” 동의보감의 설명이다. 어떻게 보면 필연적인 것이기도 하다. 용량보다 더 밀어 넣어서 음식이 꽉 차 있다면 당연히 음식을 싫어하지 않겠는가? 아이의 꽁무니를 쫓아다니며 한 숟가락 더 먹인 것이 오늘은 뿌듯할 수 있겠지만 그로 인해 내일 아이가 두 숟가락을 덜 먹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 아이는 점점 상식(傷食)의 병을 얻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의 밥통의 크기보다 더 먹이려고 하지 말자. 엄마의 마음속의 희망 용량을 아이에게 강요해서는 안 된다. 물론 내 아이가 밥을 푹푹 잘 떠먹으면 너무 행복할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사람마다 오장육부의 특징이 다르듯이 아이마다 밥통의 크기가 다른 것이다. 아이는 딱 자신의 밥통 크기만큼 먹는다. 여기에 엄마의 희망 용량을 강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아이 밥 잘 먹게 하려면
사랑스런 내 아이가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는 밥을 푹푹 잘 먹게 하려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
첫째는 내 아이의 밥통 크기를 가늠해야 한다. 그 밥통의 크기를 받아들이고 그 크기만큼 주어라. 억지로 초과해서 떠먹이려고 하지 말라. 대신 음식의 종류에 신경을 많이 써줘라. 조금밖에 안 먹는데 그걸 인스턴트 음식으로 먹게 해서는 안 된다. 소량을 먹더라도 양질의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줘라. 아이가 특히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면 신선식품인 한에서 맛나게 요리해줘라. 조금 먹지만 양질의 음식을 먹게 해주면 오장육부가 자라게 되고 밥통의 크기도 자라게 된다. 식사량도 차차 늘어날 것이다.
둘째는 식사 시간을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아침 적게 먹었다고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계속 간식거리를 줘서는 안 된다. 장이 비었을 때 위를 채우고 위가 비워지면 장이 차는 그 리듬을 지켜줘라. 위가 비워져야만 배고픔과 식욕을 느끼게 된다. 끊임없이 간식으로 위를 채우지 말아야 한다. 특히 식사 한 시간 전에는 그 어떤 간식도 주지 말라.
셋째는 아픈 것을 먼저 치료해 줘라. 감기를 달고 산다면 먼저 감기를, 아토피를 달고 산다면 먼저 아토피를 치료해 줘라. 병과 싸우다 보면 식욕은 떨어지게 마련이다. 이럴 땐 식욕을 보지 말고 병을 먼저 봐줘야 한다. 건강해지면 식욕도 제자리를 찾게 된다. 아이가 아픈데 밥도 못 먹고 있으면 엄마의 마음이 더욱 아프겠지만 건강해지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라. 지금 아픈 것을 잘 이기고 나면 분명 아이는 전보다 더욱 잘 먹게 될 것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