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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밖을 본다. 가을의 눈부신 색깔은 자취 없이 아직 늙지 못한 푸른 잎 몇 장만이 찬바람에 속수무책 나부낀다. 성급한 상점들은 분위기를 돋우려 캐럴을 틀어놓는다. 주머니 털어 선물도 사고 카드도 돌리라고 재촉하듯 마음을 들뜨게 한다.


12월은 조급증을 앓는다. 밀린 숙제 해치우듯 송년회, 망년회를 찍어야 한다. 잘 말아서 부어라 마신 술과 지글거리는 고기 안주가 어쩌다 맛있지 연일 계속되는 모임은 고문이다. 나 빼고는 다 잘 나가고 걱정거리도 없어 보이는 혈색 좋은 친구들과 조직의 동료들 틈에서 술잔을 비운다. 그런 순간 문득 씁쓸하고 허전해지는지. 인간관계가 사회적 밑반찬이 되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속은 지치고 힘들어 비명이 나올 것만 같지만 한해의 마지막까지 출석 눈도장에 안간힘을 쓰며 애쓰는 당신...참 수고가 많다.


다크 서클이 쭈욱 내려와 너구리 닮아가는 영남씨, 피곤에 절어 만사가 귀찮은데 목감기도 안 낫고 어깨와 등이 쑤시니 표정이 말이 아니다. 회식이다 영업으로 마시는 건데 아내는 ‘알중’이라고 바가지를 긁으니 억울하다. 이미지 좀 챙기려는데 아침까지 폴폴 날리는 어제 먹은 안주가 밴 점퍼에 어디 인기관리가 되겠나. 술 안 마시고 저 혼자만 살겠다면 ‘집에가’ 라는 눈치가 따가운 걸 어떻게 버텨야 할지. 그래도 안 마셔야 한다! 용케 버텨온 한해의 건강, 하루아침에 와르르 무너뜨리지 않으려면 적어도 12월에는 방어와 수비에 몸조심해야 한다.


술꾼들 진짜 불쌍하다. 2차 3차 대첩을 치르고 난 다음날, 머리는 지끈지끈 속은 뒤집어지고 아이고~ 죽겠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먹고 나면 괴로울 줄 알면서도 마셔야 하는 팔자 정말 힘들다. 머리는 어찔, 아득. 속은 뒤집어지지 팔다리는 노곤해서 힘이 쪽 빠진다. 위는 파업사태, 헛구역에 쓴 물만 올라온다.


물 먹인 소처럼 누가 입 벌려놓고 강제로 먹인 것도 아닌데 이리 몸 버리고 돈 버리며 생고생이란 말인가. 하지만 다음날이면 홀랑 잊어버리고 너무도 당당히 혹은 찍소리도 못하고 자석에 끌려가듯 술집을 찾는다.


우리나라 술집은 100만 개가 넘어서 세계 최다. 알코올 소비량은 세계 2위. 소주로 따지면 30억 병. 인구로 나누면 아기까지 1년에 60병 마신 꼴. 음성적 접대와 잦은 회식에 폭탄주를 돌리는 과격한 음주 습관이 이룩해낸 최강의 음주 대국이니 깜놀!


보통 술자리다 하면 소주 한 병에 입가심 맥주 두 병, 기본 안주만 해도 벌써 2,000kcal 하루치 열량인데 저녁 한 끼에 몽땅 드시고 있다. 술은 목구멍을 넘어가면 식도에서부터 흡수가 시작된다. 엄청 빠르다. “캬! 좋다!” 할 때 벌써 흡수되어 바로 살로 증거가 남는다. 기억하라 12월 한 달, 취중몽생 하다보면 꿈결처럼 2-3㎏ 훌쩍 불어 옆구리에 손잡이가 달린다. 나도 그렇다. 그만하면 됐지 집에 가면 늦은 밤 출출한 게 라면이 왜 땡기나ㅠㅠ


술은 인체의 모든 장기에 영향을 미치는데 뇌와 간부터 술에 젖어들어..절여진다. 뇌 신경세포는 알코올로 뭉텅뭉텅 파괴되어 영특한 머리도 심하게 나빠진다. 코는 중정지관(中正之官)으로 얼굴의 중심이며 자아를 상징한다. 흠뻑 취해 코가 삐뚤어질 정도면 심신의 균형은 깨지고 만다. 업무에 지장도 많고 실수나 안전사고로 밥벌이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왜냐고. 겉으로는 너그러운 척 속으로는 점수 매길 것이 분명한 회사조직. 술자리마저 업무 연장으로 부려 먹다 장렬히 전사하면 부속 갈아 끼우듯 새사람 쓰는 게 조직의 생리인 걸 모르지 않을터.


비싼 양주는 몸에 해롭지 않다고? 뒤끝 두통의 유무로 따질 수는 없느니. 알코올에 의한 간 손상 정도는 양주, 소주, 막걸리의 차이가 아니라 마신 술의 총량과 기간에 비례한다. 나는 요즘 효모가 꿈틀거리며 살아있는 생막걸리를 마신다. 술집 냉장고 안쪽에 얌전히 가라앉아 있던 막걸리를 흔들지 않은 채 윗물만 졸졸 따라 샘물처럼 마신다.


회사 접대비로, 회식비로 먹는다고 말은 그런다. 그래도 결국 몸 까이고 병원비에 치다꺼리에 몸 망가지고 돈을 탕진하니 세상에 공짜는 없다. 게다가 영수증 들여다보는 눈 회사에 다 있으니...


술은 정력을 약하게 하는 주범이다. 남녀불문 감각신경이 둔해져 쾌감을 못 느끼며 발기력에 치명적인 ‘불발주(不發酒)’ 되겠다. 여성들은 체중과 간 용량이 적은 편이라 알코올 분해속도가 느리고 혈중농도가 빨리 높아져 잘 취하며 해독능력도 낮다. 맘에 드는 남자하고만 많이 마실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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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은 외로워서 마신다고 생각한다. 술기운을 빌리면 우울감을 잊고 명랑발랄해지기까지 한다. 술김에 저지른 숱한 만행들을 보면 흥분제일까? 아니다. 오히려 지성의 뇌인 대뇌 신피질을 진정시켜 원초적 본능이 드러나 수다스럽게 주정을 떨고 시비를 붙게 한다. 이성이 작동 불능일 때 차마 대면하기 두려운 진면목이 드러나니 조심할지어다.


회식 매너? 나부터 바꾸자. 같이 술 안 마신다고 정보와 친목에서 왕따당 할까봐 두려워 말라. 나가떨어지면 비웃음만 당한다. 술귀신들의 태클을 방어하고 요리조리 피하는 게 최고의 지혜! 돌아오는 잔 대신 일어나서 반찬 나르고 마이크 잡고 보리차를 마셔준다. 인간성 좋다고 인기 짱일 거다.

왁자지껄 소란 무드는 철부지 인간들의 만용일 뿐. 겨울의 자연은 스스로 에너지를 거두고 깊이 묵상에 들어 고요히 침묵한다. 땅에 떨어진 씨앗들은 낙엽을 이불 삼아 겨울잠을 자며 봄에 싹틔우기를 꿈꾼다. 12월이야말로 자신에게 고요한 침묵을 선물해야 할 때. 수고한 당신에게 인사라도 건네주길. 살아서 일해주고 쓰러지지도 않고 잘 버텨주어서 고맙다고. 볼펜으로 손바닥에 하트모양이라도 뿅뿅 그려보자. 거울 앞에 서서 쑥스럽지만 셀프칭찬이라도 다정하게 속삭여보자. 당신 멋져. 수고 많았어. 내년에도 잘해 보자구~


안쓰러운 술꾼 구제용 해장국에 미나리와 콩나물이 빠질 수 없다. 복어가 비싸면 북엇국은 어떠랴. 보리차, 꿀물, 매실차, 유자차, 모과차로 탈수를 막고 갈증도 달래주자. 칡이 들어간 갈화해성탕과 대금음자탕은 단골 한의원을 이용해보자. 목마르고 갈망하는 모든 생명에 축복 있을진져!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