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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껍질 함부로 버리지 마시라.
까먹고 남은 귤껍질을 깨끗이 씻어서 무채 썰 듯 썰어 잘 말리기만 해도 향긋한 귤피차가 된다.
귤피차 5-6조각을 머그잔에 넣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노랗게 우러날 것이다.
주위에 누군가가 체격은 마른 편이고, 성격은 예민한 편이어서 사소한 생각이 많고, 잘 체한다고 한다면
손수 만든 귤피차를 선물해 보시기 바란다.



귤껍질은 오래전부터 차로 만들어 마셨다.

19세기 말, 영국의 비숍 여사가 한국을 여행하고 쓴 <KOREA and her Neighbours 1897年>의 한 부분이다.

"식후에는 뜨거운 숭늉을 마시며, 꿀물은 고급(Luxury)으로 여기고, 잔치 때는 귤껍질이나 생강을 끓여 마신다. 귤껍질을 말리는 것은 이곳 주부들의 중요한 일이어서 초가집 처마 밑에 귤껍질이 주렁주렁 달려 있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귀하디귀한 몸


조선 시대에 귤은 왕에게 진상되는 귀한 것이었다. 귤나무에 매달린 귤의 개수까지 세어서 관리하였고, 제주도에서 귤이 올라올 때면 황감제라고 하는 특별과거시험까지 열어 축하했을 정도다.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는 귤껍질로 만든 차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귤강차, 삼귤차, 향귤차, 계귤차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주로 왕실의 질병 치료와 건강관리의 목적으로 귤피차가 활용되었다는 내용이다.


영조 34년(1758년) 12월 23일 기사

"임금의 환후인 기침 기운 때문에 약방(藥房)에서 귤강차(橘薑茶)를 끓여서 올렸다."


귤강차는 여러분도 감기 기운이 있을 때 한 번쯤 마셔본 적 있을 귤피와 생강으로 만든 차다. 


그런데 영조임금이 마신 귤강차에 쓰인 귤과 요즘 귤은 다르다. 지금 우리가 먹는 귤은 1910년 이후에 들어온 온주밀감 계열이란다. 그전부터 제주도에 있던 귤은 진귤(산귤), 병귤, 동정귤, 감자, 청귤, 지각 등인데 재래귤이라고 부른다. 아쉽게도 재래귤은 거의 사라져버려서 감귤박물관에나 가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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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될수록 좋다


예로부터 귤껍질은 약재로 자주 쓰였다. 약으로 쓸 때는 오래될수록 좋다고 하여 ‘오래되다’, ‘묵다’의 의미를 가진 진(陳)자를 써서 진피(陳皮)라고도 부른다. 금방 말린 귤피는 싱그러운 귤향이 나고 3년 이상 묵힌 좋은 진피는 싱그럽지는 않지만 향은 더 강하다. 가정에서도 말린 귤껍질이 오래되었다고 버릴 필요가 없다. 오히려 잘 말린 귤껍질을 종이봉투에 담아 바람 잘 통하는 곳에 보관한다면 몇 년 지나서 더 귀한 진피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귤피차로 이기시키다


한의약에서는 이기(理氣)작용을 귤피의 대표적인 효능으로 본다. 이기(理氣)는 기를 순조롭게 한다는 말로 뭉치거나 막힌 기를 풀어준다는 의미다. 가슴이 답답하고, 소화가 안 되면서 더부룩한 느낌이 나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기가 뭉치거나 기가 체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귤피의 이기작용은 스트레스를  받아 답답한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고, 꽉 막힌 속을 시원하게 뚫어주는 효과를 발휘한다


퇴근 후 저녁에 마시면 긴장으로 인한 피로를 풀어주는 데 좋다. 특히, 마르고 예민하며 소화기능이 약한 타입이라면 늘 귤피차를 가까이하시기를 바란다. 스트레스와 바쁜 일상으로 더부룩해져 있는 위와 장을 편안하게 해 줄 것이다. 또 가릴 것이 많은 임신부에게도 귤피차를 추천한다. 입덧이나 임신 중 소화불량에 귤피차가 도움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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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재 교수의 한국의 건강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