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비 학술단체 와셋 (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이 운영하는 가짜 국제학술대회에 한국의 차세대 학자가 될 대학원생들이 무리를 지어 다녔다는 사실이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와 독일 공영방송 NDR의 국제협업 취재로 드러난 바 있다.


뉴스타파의 후속 취재에서 이 대학원생들은 대부분 BK21플러스 연구비로 가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왔고, 여러 대학교의 BK21사업단이 와셋이나 오믹스가 조직한 학술대회 참가와 논문 발표를 버젓이 사업단의 실적으로 등재한 사실도 드러났다.


BK21플러스 사업은 차세대 학자 육성을 목적으로 한 정부 주도의 인재양성 사업이다.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젊은 인재 양성 사업 예산이 교수와 대학원생들을 와셋 같은 엉터리 학술대회에 보내는 데 허비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이렇게 BK21 연구비로 가짜 학술대회에 참가한 것이 국제화 실적으로 둔갑해 BK21사업 재선정 등에 활용되는 악순환 구조가 되풀이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이 정부의 BK21사업비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단을 꾸려 사업신청서를 내야 한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세종대 BK21사업단의 사업신청서에는 실제 학생들의 와셋 학술대회 참석이 연구 실적으로 올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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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셋 같은 가짜 국제학술대회 참가도 연구 실적으로 인정


한국연구재단이 규정하고 있는 국제학술대회 기준이 어떠하길래 와셋 같은 곳에서 운영하는 학술대회도 BK21 연구실적으로 인정되는 것일까?


현행 BK21사업의 국제학술대회 인정 기준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해 4개국 이상에서 학자들이 참가하고 발표 논문이 20건 이상, 이 중 외국인들의 발표 논문이 50% 이상만 되면 국제학술대회로 인정된다. 이런 외형적 조건만 갖춰지면 학술대회의 질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 아무런 논문이나 통과되고, 동료 학자 평가도 없고, 주최 측이 학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업 조직이라도 상관없다. 이 때문에 돈벌이가 목적인 와셋이나 오믹스같은 해적 학술단체가 운영하는 학술대회도 당연히 현행 BK21 기준을 충족한다. 이 기준대로라면 가짜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해 발표하는 것도 정상적인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것과 똑같은 평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1999년 BK21사업이 처음 도입될 때에는 국제학술대회와 관련해 아예 아무런 기준이 없었다. 한국연구재단 인재양성지원실 박길수 실장은 “당시 (국제학술대회 관련) 기준이 없어 지금처럼 문제가 생겨서 BK21사업 2단계가 도입된 2007년부터 기준이 대폭 강화됐다”고 말했다. 2단계 당시 기준은 구두 발표논문 50건 이상일 경우에 국제학술대회로 인정해줬다. 하지만 이후에 20건 이상으로 기준이 대폭 완화됐다. 박 실장은 “대학원생들의 국제화 경험을 위해 보내는 건데, (50건 기준 때문에) 학생들이 갈 수 있는 학술대회가 별로 없다는 불만이 많아서 낮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형식적 기준 때문에 엉터리 국제학술대회 참석 실적도 정상적인 학술대회와 마찬가지로 BK21사업 실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제자들과 와셋에 참석한 적이 있는 서울대 김동규 교수는 “(와셋이) 페이크 (가짜)가 아니었고 연구재단에 증빙서류를 냈기 때문에 문제는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대 고승영 교수는 “학술대회 참가실적을 관리하는 건 한국연구재단이기 때문에 그건 연구재단의 문제”라고 말했다. 와셋과 같은 곳에 교수나 학생들의 발길이 쏠리게 되는 이유다.


정부의 ‘글로벌화' 강조와 와셋 참석 급증의 상관관계 조사해야


정부가 2014년부터 이른바 ‘글로벌화'를 강조하면서 와셋과 같은 가짜 국제학술대회 참석이 크게 늘어난 게 아닌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포항공대 생물학전문연구정보센터 ‘브릭' 이강수 실장은 “BK21을 비롯한 다른 연구사업에 ‘글로벌’이 어떤 식으로 평가지표로 들어갔는지가 굉장히 중요한 이슈”라며 “와셋 참석 증가와 글로벌화 지표 도입의 상관관계를 조사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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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타파 취재 결과, 실제로 와셋이 운영하는 학술지에 투고하거나 학술대회에 참석한 국내 학자의 숫자는 2014년부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재진이 만난 일부 대학원생들도 실적에 반영되기 때문에 와셋 같은 곳에 참석한다고 털어놓았다.


차세대 학자들이 될 대학원생들이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에 대해 ‘브릭’의 이강수 실장은 “학생들을 가장 저급한 학술대회를 경험시키고, 나중에 그 학생이 그 경험을 바탕으로 학자의 길을 갔을 때 사고라든가 생각의 수준이 그 수준에서 멈춰버리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와셋이 정상적인 학회라고 생각했다"는 대학원생들


지도교수의 승인을 받고 와셋에 참석했던 일부 대학원생들이 취재진에게 보인 반응은 실제 이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 연세대학교의 한 대학원생은 와셋이 “워낙 다양한 주제로 발표를 하는 것도 있지만, 정상적인 학회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대학교의 한 박사과정 학생은 “와셋은 모든 연구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 학회”라며 와셋이 다학제적으로 진행되는 컨퍼런스라고 옹호하기도 했다. 한 서울대 교수는 학생들의 와셋 학술대회 발표를 격려하기 위해 와셋에 함께 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외 학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해적 학술단체의 문제점을 경고해왔다. 그러나 국내 학계에서는 뉴스타파 보도 전까지 이런 가짜 학술단체에 대한 논의가 거의 없었다. 전문가들은 실제 학계나 대학 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던 가짜 컨퍼런스 문제가 ‘칸막이 문화'와 같은 학문공동체 내의 소통 부재로 인해 공론화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급한 단기 처방보다는 근본적인 해결방안 마련해야


취재진이 만난 학자들은 뉴스타파의 보도로 “터질 게 터졌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정부의 성급한 대책 마련 등 관 주도의 해결방안은 경계했다. 대신 질보다는 양적 실적 위주의 연구 풍토 등으로 망가져 버린 대학과 연구 윤리가 실종된 학계의 병폐를 제대로 치유하려면 근본적인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와셋 같은) 하나의 저질 학회, 저급 학회 참석은...그 내면에 우리나라 과학연구자들 간의 소통 문화라든가, 연구평가라든가, 대학원생 교육 문제라든가 이런 것들이 다 맞물려 있는 종합선물세트 같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핵심을 바라보려면 좀 더 깊게 들어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저는 국가기관에서 굉장히 조급하게 예방책을 만든다든가, 대안을 제시하고 이렇게 안 했으면 좋겠어요”
-포항공대 브릭 이강수 실장


서울대 수의학과 우희종 교수는 “학문이 평가되고 서열화되는 것에 대해 좀 더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국교수노조 위원장인 홍성학 교수는 “국제학술대회를 너무 중요시하다 보니까, 또 양을 중요시하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라며 “우리나라 대학을 정말 좋은 대학으로 만들려면 서열을 매길 것이 아니라 각 대학의 부실한 측면을 밝혀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