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셋 (WASET: World Academy of Science, Engineering and Technology, 세계과학공학기술학회) 등 이른바 해적 학술단체가 운영하는 가짜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에 한국인 학자들이 대거 참여해왔다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의 보도 이후, 제도 개선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정치권, 정부, 학계 등에서 잇달아 나오고 있다.
지난 25일 국회 과학기술방송통신위원회 업무보고에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와셋 등 해적 학술단체와 관련한 의원들의 질의가 잇따르자 정부 차원에서 실태조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실제 와셋에 소속 연구자들의 이름으로 논문과 초록이 게재된 것으로 드러난 정부출연 연구원과 주요 대학들도 일제히 자체 실태 조사에 들어간 사실이 확인됐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과기정통부는 국가과학기술지식정보서비스 (NTIS)에 등록된 데이터와 정부출연 연구기관을 관리하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 (NST)를 통해 조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기부는 이 조사에서 2017년 말까지 NTIS에 등록된 해외 학술지 및 학술대회 참석 실적 내역을 전수 조사한 결과, 와셋 게재 논문 3백여 건 과 와셋 개최 학술대회 참석을 실적으로 등록한 국외 출장 50여 건 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과기정통부 연구개발정책과 이석래 과장은 “해적 학술지와 가짜 학술대회 이용에 있어 고의성이 있었는지 등을 분석, 조사하기 위해 학계 전문가를 초빙해서 실태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과기정통부는 또 앞으로 국내 학자들이 해외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할 때 한국학술지인용색인 (KCI) 등재 기준에 준하는 수준의 해외 학술지에 투고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이르면 9월쯤 학계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NST도 관할 25개 정부출연연구원 소속 연구자들이 와셋 운영 학술지와 학술대회에 참여한 사례를 70여 건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뉴스타파 데이터팀이 이들 25개 출연연 소속 연구자들의 논문과 초록 건수를 별도로 분석한 결과, 모두 18개 기관에서 총 170건의 논문과 초록을 와셋에 게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저자 수는 총 417명이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KICT)이 논문과 초록을 합해 33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 (ETRI) 31건, 한국생산기술연구원 (KITECH) 22건 순으로 나타났다.
여러 대학교에서도 자체 조사를 벌이는 중이다. 전북대학교는 와셋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했거나 와셋 학술대회 발표를 위해 출장비를 집행한 연구과제 책임자들을 대상으로 소명자료를 요구하는 등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밝혔다. 전북대는 “빠른 시일 내에 가짜 또는 수준이 낮은 학술단체에 대한 리스트 (또는 판단기준)를 확보하여 전 연구자에게 가짜 학술단체에 대한 안내를 실시하고, 안내한 단체와 관련된 연구비 지급은 승인하지 않을 예정이며, 이와 관련된 사항에 대해 사후 통제를 강화하여 관련 비용 지급 시에는 전액 환수하겠다"고 밝혀왔다. 전남대학교, 경북대학교, 강릉원주대학교도 뉴스타파 보도와 관련해 자체 조사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은 지난 22일 성명에서 가짜 학술지와 학술대회 관련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공공연구노조는 “개인의 연구윤리 부재로만 문제를 축소할 것이 아니라 왜 이런 일들이 한국의 연구공동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지를 근본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한다"며, “뉴스타파에 보도된 대학과 출연연 연구관리 기관에 대한 수사는 당연하고, 국가 R&D 관리 시스템도 다시 점검하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계의 자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교수, 연구자, 대학원생 등 50여 명이 참석한 뉴스타파 ‘가짜학문 제조공장의 비밀’ 시민 초청 시사회 (23일, 서울시청 바스락 홀)에서는 연구 평가 제도 개선, 연구자들 간의 자발적인 자정 노력 등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출처: 뉴스타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