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들이 뇌 연구를 위해 국가적 차원에서 조(兆) 단위 연구비를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국방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항공우주국(NASA)·국립보건원(NIH)이 주도해 5조5000억원을 쏟아붓는 ‘브레인 이니셔티브’를 2013년부터 시작했다. 860억 개의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수조 개의 시냅스를 죄다 그리겠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도 비슷한 시기 ‘휴먼 브레인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EU 25개국 135개 기관이 뇌과학을 공동으로 연구하는데 총 1조4000억원을 투입한다.
일본은 2014년부터 브레인 마인즈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영장류 뇌를 지도로 그리고 있다.
중국도 최근 수년 들어 빠른 속도로 선진국 뇌공학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연구환경 덕이다. 뇌공학이 발달한 미국·유럽 선진국은 동물 대상 실험 요건이 엄격하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의 연구진은 중국 과학자와 공동연구 또는 중국 현지 실험 등으로 관문을 뚫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스위스연방공대는 척추마비 원숭이의 뇌·척추 신경계에 탐침을 꽂아 사상 최초로 원숭이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지난해 11월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이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은 중국의학연구소 소속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연구진이 원숭이 머리를 잘라 다른 원숭이의 몸체에 이식한 적이 있는데, 이 실험 역시 중국 하얼빈대에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연구진은 선진국의 고급 뇌공학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한국도 시작은 늦지 않았다. 1998년 뇌 연구촉진법을 시작으로, 2003년 뇌프론티어사업단이 출범했다. 10년간 250억원가량을 투입하는 뇌 연구개발(R&D) 프로젝트도 시작했다. 2002년엔 세계에서 가장 먼저 뇌공학을 연구하는 학부(바이오및뇌공학과)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등장했다. 이후 한국뇌연구원(2011년)·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뇌과학연구소(2011년)·기초과학연구원(IBS) 뇌과학이미징연구단(2013) 등이 속속 들어섰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뇌 연구는 선진국에 뒤져 있다. 미국·유럽 기업이 뇌 공학기기·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동안 한국은 파급효과가 큰 제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일부에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한국 연구진은 최근 4년 동안 1만 개에 가까운 논문(9236건)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술이전까지 발전한 논문은 불과 18건에 불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