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장엔 최저생계비 150만원"…희망을 잃은 사람들


'대학원에 들어가지 않았다면, 그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검찰의 질문에 다르게 답했다면, 지도 교수를 끝까지 믿지 않았다면…'


김 약사는 하루에도 수십번 13년 전 그날로 돌아갔으면 한다.


만가지 후회가 머리를 가득 채운다. 30대 후반, 한 가정의 가장이자 개국 약사로 한창 미래를 설계해야 할 그가 몇 년 사이 겪은 현실은 가혹했다.


당시 같은 연구실에서 몸담았던 다른 3명의 동기들도 그와 같은, 아니 더한 고통에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고 있다.


누구는 그동안 왜 제대로 말 한마디 하지 않았느냐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느냐고, 좁은 연구실 안에서 있었던 그 모든 일들을 몰랐느냐며 그들을 탓할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대학원들의 연구 현실을 따지고 담당 교수와 관계를 돌이켜 본다면, 그들의 잘못은 교수가, 사회가 당시 학생이었던 그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고 믿었던 어리석기만한 신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꿈 하나로 대학원에 진학해 제약업계, 약학계에 이바지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젊은 약학 석·박사들의 삶은 가시밭길 그 자체가 됐다. 이제 이들에게 남은 실낱같은 희망 하나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지금의 상황을 알리는 것뿐이다.



◆ 김 약사


모든 판결은 끝나고…남은 건 빚더미


김 약사는 올해 초 성균관대의 구상권 소송 판결에서 1억 1500만원을 배상하라는 선고를 받았다. 학교측의 구상권 청구에 제대로 항소도 하지 못한 채 김 약사는 배상금 전액을 떠안게 됐다.


2006년 처음 생동조작 수사가 착수되고 식약청, 검찰 조사를 받은 이후 10년 가까이 그의 삶은 평온했다. 검찰 조사를 받을 때도 참고인 수준이었고 무혐의 처분이 나오면서 당시 사건에 연루됐던 학생들은 모두 안도했다.


뭔가 잘못됐다고 깨달은 건 2년 전 대학이 그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때였다. 건보공단의 민사소송이 진행되는 과정 조차도 그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함께 연루된 동료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고나서야 그는 깊은 늪에 빠져있단 걸 실감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후였다. 이미 공단이 지 교수와 자신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은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했고, 학교는 소송이 종결되자마자 지 교수와 그를 포함한 4명의 연구원들이 연루된 피해금액 60억을 모두 배상했다.


4년 가까이 자신이 연루된 재판이 진행됐지만 정작 그는 어떤 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직접 나서 손쓸 틈도 없었다. 재판 과정에서 그의 위임장이 위조됐던 것으로 확인됐는데, 현재 성균관대는 이것을 문제삼아 지 교수를 사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한 상태다.


동료들과는 달리 진행된 그와 지 교수에 대한 학교의 구상권 청구 소송 1심에서 김 약사는 1억여원의 배상금이 확정됐다. 손도 써보지 못한 채 항소는 포기했다.


1년 전 학교의 구상금 청구 소송과 함께 몇 년 전 문을 연 약국 보증금과 부모님 명의의 자택이 가압류됐다. 자신의 잘못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현실을 받아드리자고 마음을 다독여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이제 그 자신의 불행을 넘어 다른 동료들이 그리고 수많은 후배들이 자신과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어렵게 용기를 내 싸우기로 결심했다.


김 약사는 "학생 때는 교수가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며 "수개월 밤낮을 바꿔가면서까지 일했는데 그 결과는 평생을 따라다닐 꼬리표와 수억원 대 빚이다. 지금의 내 피해와 짐이 후배들, 다른 대학원생들에는 지워지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최 연구원


평생 벌어도 못갚을 돈…최저생계비로 살라니


현재 한 중소 바이오업체에서 근무 중인 최 연구원은 요즘 하루하루가 버겁기만 하다. 그는 현재 박 교수, 김 모 연구원과 함께 공단의 민사소송과 학교 측의 구상금 청구 소송 피고소인으로 묶여 있다.


최 연구원을 포함한 3명의 당시 대학원생들에 청구된 구상금은 30여 억원. 최 연구원은 그중 5억원이 넘는 금액을 학교에 지불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학교가 구상권 청구 소송를 제기한 이후 그에게 매달 지급되는 월급은 150만원. 1년 전 통장에 월급이 150만원 찍히고 난 후 처음 알았다. 최저생계비가 150만원이란 것을.


두명의 자녀를 둔 가장이 한달 150만원 최저생계비로 생활을 하기란 쉽지 않다. 더 힘든 것은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이다. 실낱같은 희망이었던 지도 교수는 현재 연락조차 되지 않는다.


학교가 구상권 청구 소송을 제기한 이후로는 그를 비롯한 동료들의 전화도 피하고 있다. 그나마 연락이 되도 자신도 이제 "아무것도 해줄 게 없다"는 말만 돌아올 뿐이다. 형사소송, 민사소송이 진행될 때까지만 해도 "모두 알아서 하겠다"며 학생들을 안심시켰던 교수였다.


최 연구원은 지금의 현실보다 더 견딜 수 없는 게 교수를 신뢰했던 지난 시간들이다.


최 연구원은 "민사 소송에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면서부터 교수의 태도가 달라졌다"며 "소송에 패소한 후에는 바로 파산 신청을 했고, 학교 구상금 청구 소송에서도 자신은 가진 게 없어 어쩔 도리가 없다는 식이었다. 학생들은 죽기 일보직전인데 다른 대학 특임부총장에, 해외 대형 사업까지 진행 중인 것을 보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고 했다.



◆ 박 교수 


현재 한 국립대학 약대 교수로 재직 중인 박 교수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교편을 잡고 있는 그에게는 지금의 이 상황이 더 힘겨울 수 밖에 없다.


그에게 부과된 구상금은 15억원. 박 교수는 현재 갖고 있는 부동산이 모두 가압류에 걸려있는 상태다. 청구된 금액은 평생을 그가 일하고 갚아도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다.


약대 출신인 그도 당시 조작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도 믿을 수 없는 부분이다. 대학원 연구 특성상 교수가 지시하는 일부 부분에 대해 실험을 해 결과를 보고하면 최종 보고서 작성과 총괄 작업은 모두 교수의 몫이었다.


생동시험 조작 당사자란 꼬리표는 약학박사이자 교수인 그에게 수억원대 빚보다 더한 꼬리표이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상황이 종결됐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박 교수는 "여기저기 자문을 받고 도움을 요청해도 길이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라며 "하지만 끝까지 싸워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 김 모 연구원


한 제약회사 연구소에서 근무 중인 김 모 연구원에게도 희망은 없다. 대학원생 신분으로 교수의 지시에 따라 충실히 실험하고 연구한 게 그의 삶에 이렇게 큰 고난을 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 역시 총 16억 가까운 금액이 구상금으로 청구된 상태. 아이를 둔 한 가정의 가장인 그에게 가족 계획은 사치이다. 그 역시 최저생계비 150만원을 제외한 모든 월급은 차압된 상태다. 이 돈으로 그는 생활비와 변호사비까지 모두 감당하고 있다. 한마디로 죽지 못해 살고 있다는 그이다.


김 연구원은 여전히 학생들을 배신한 교수도, 감당하지 못할 짐을 지운 학교와 재판부 모두 이해되지 않을 뿐이다.


그는 "구상금은 교수와 학생이 공동 지급하게 돼 있지만 판결문에 비율을 정해놓지 않아 교수는 파산 신청 후 책임지지 않고 있어서 학생들이 100% 모두 지급해야 할 상황"이라며 "교수는 변호사 선임도 하지 않았다. 관심이 없다는 이야기다. 이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학교가 구상권 소송을 취하하도록 각계각층에 호소하는 것 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지 교수


지 교수 "간접적으로 도울 방법 구상"…약대·동문회 "학생들 돕겠다"


이번 사건의 중심에 있는 지 교수는 데일리팜과의 통화에서 우선 현재 경제적인 부분에서 학생들을 도울 방법은 없지만 간접적으로 학생들의 책임은 제외하는 방안을 학교에 계속 요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 교수는 "학생들은 도와달라는데 저도 다 뺏긴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다"며 "현재 직접적으로는 학교와 연락하고 있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지인들을 통해 학생들은 책임이 없고, 학교가 구상금 청구에서 학생들은 제외해 줄 것을 부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성균관대 약학대학과 약대 동문회는 학생들의 어려운 사정을 십분 이해하고 다각도로 도움을 줄 방안을 고민 중에 있지만 현재로써는 조심스럽게 대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실제 정규혁 성대 약대 학장은 학교가 지 교수와 대학원생들에게 구상권을 청구한 이후 학생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고 협조해 왔다.


지 교수가 성균관대를 떠나기 전까지는 학교가 배상한 금액을 약대 차원에서 최대한 변제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고민하고 학생들을 구제할 방안을 협의해 왔다. 하지만 현재는 조정 기간으로 지 교수가 학교를 떠나고 관련 내용이 공중파 방송 등에서 이슈화 된 이후 정 학장도 탄력을 잃은 상태다.


정 학장은 "현재 상황을 고려해보면 학교 측도 60여억원이 넘는 금액을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대신 지불한 것"이라며 "그런 상황에서 교수는 회생신청으로 더 이상 변제할 수 없다고 하고 남은 금액은 일정 정도라도 충당할 수 밖에 없어 법적 절차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정 학장은 또 "민사소송이 제기되고 학교의 구상금 청구가 있을때까지 학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다각도로 고심했고 노력도 했다"며 "현재 여러 문제로 어려움은 있지만 우리 대학원 학생들이었던 만큼 끝까지 도움을 줄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진희 성균관대 약대 동문회장도 "약대를 통해 관련 내용을 알고 연관된 학생을 직접 만나 지금까지의 상황에 대해 설명도 들었다"며 "학교의 구상금 청구가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는 상황에서 동문회가 나서서 시끄러운 상황을 연출하는 게 학생들에게 오히려 독이 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또 "이 문제와 관련해 약대와 계속 소통하고 있고 학생들이 손을 내밀면 언제든지 도움을 줄 용이가 있다"며 "현재 약대 동문회 차원에서 장학기금 모집 사업 등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런 것이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했다.



출처: 데일리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