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시 가습기 살균제의 충격이 가시기도 전에 국민의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하는 일이 또 벌어졌다.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에 장착된 항균필터가 독성물질인 옥틸이소티아졸론(OIT)을 내뿜는다는 것이다.
OIT는 가습기 살균제의 독성물질인 클로로메틸이소티아졸리논(CMIT)과 유사한 물질이다.
피부나 눈의 손상을 일으켜 선진국에서는 사용을 엄격히 규제한다.
하지만 환경부는 2014년 OIT를 유독물질로 지정하고도 이 물질이 함유된 필터의 유해성을 조사하지 않았다.
국정조사 중인 가습기 살균제 파문에 이어 미세먼지를 엉뚱하게 고등어 탓으로 돌리는 등 환경부의 총체적 황당함이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 22일 ‘OIT필터’가 장착된 국내 판매 가정용 에어컨 33개와 공기청정기 51개의 모델명을 공개했다.
이틀 전 OIT가 함유된 항균필터명을 밝혔다가 영어 용어가 난수표 같다는 비난이 빗발치자 이틀 만에 허겁지겁 제품명을 공개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환경부는 국내에 유통되지 않은 필터 모델까지 밝혔다가 정정하는 소동을 벌였다.
자동차용 에어컨 항균필터를 놓고도 혼선을 빚었다. 처음엔 OIT가 들어간 모델이 3개라고 발표했다가 이틀 만에 12개로 바꿨다.
충분한 검증·분석도 없이 소나기만 피하려 허둥대는 졸속행정이 부른 참화다.


독성이 든 문제의 항균필터는 모두 한국쓰리엠(3M) 제품이다.
삼성·LG·쿠쿠·위니아·청호나이스·프렉코 등 6개 업체 제품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가정·사무실·학교·군대까지 광범위하게 공급된 공기청정기와 에어컨이 국민 건강을 잡는 흉기가 됐지만 환경부는 ‘깜깜이’였던 것이다.
환경부는 업체에 자진 수거 조치를 하겠다고 했지만 찜통더위에 국민의 불안감은 계속 커지고 있다.


특히 3M 측이 한국에서만 OIT 항균필터를 생산·판매한 것에 대한 공분이 거세다.
배기가스 조작사기를 친 폴크스바겐처럼 한국 소비자들을 ‘봉’으로 여긴 게 아니냐는 비난이 인터넷과 SNS에 쏟아지고 있다.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집단 피해 소송과 불매운동 움직임까지 나타나고 있다. ‘제2의 옥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런 국민의 불안감을 해소하려면 정부의 대처가 중요하다.
항균필터에 대한 전수조사와 함께 피해신고센터를 가동하고, 조기에 모든 제품을 회수토록 강력한 행정조치를 해야 한다.
3M이 우리나라에만 필터를 공급하게 된 경위와 과정, 유해성 검증 결과도 국민에게 낱낱이 공개해야 한다.
법령 정비도 시급하다.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항균필터에 대한 규정과 안전기준을 마련하고, 생활화학물질에 대한 종합 관리·감독 대책 을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