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에 이렇게 쓰여 있다고 한다.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이 좋지 않으니 그의 일을 거들 짝을 만들어 주리라…….”
그래서 남자를 먼저 만들고 나중에 여자를 만들었다고 한다. 아담의 갈비뼈로 이브를 만들었다는 성경을 굳게 믿었던 16세기 시대, 이탈리아 파도바 대학의 베살리우스 교수는 인체를 해부해서 여자와 남자의 갈비뼈 수가 똑같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럴수 럴수 아니…… 이럴 수가?’ 사람들이 엄청 놀랐다고 전한다.
역사 이래로 남성은 여성이 신권에 버금가는 ‘생명창조’의 능력을 가진 것을 두려워 한 것 같다. 질투와 시기심 때문에 정치와 종교는 가부장제를 통해 여자의 존엄성과 가치에 대한 진실을 은폐하고 씨받이 취급을 했다.
자궁은 음란어도, 비속어도, 금기어도 아니다. 악과 질병을 유출했다는 판도라의 상자(Pandora Box)는 자궁이나 질을 상상한 것은 아닐까. 클리토리스를 ‘악마의 젖꼭지’라 칭하여, 은밀한 부위에 달린 젖꼭지로, 악마에게 젖을 물리는 마녀의 증거로 삼았다. 중세 유럽에서만 약 600만 명이 마녀 혹은 죄악에 빠졌다는 이유로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허나 깊은 의식 속에서는 모성이 훨씬 초월적이고 숭고함을 인식했을 것이다. 못했다면 그건 무식, 무지의 소치?!
티베트 불교에서는 여성이 어머니가 되는 것은 위대한 일이긴 하나 수행으로 깨달음에 이르기에는 월경을 하는 여성의 몸이 장애가 된다고 하였다. 텐진 빠모(Tenzin Palmo) 스님은 “나는 여성의 몸으로 붓다가 되리라.”는 서원을 품고 5000m가 넘는 히말라야의 설산 동굴에 들어가서 12년간 치열하게 수행을 하였다. 깨달음이란 마음의 문제이지 육체의 차이는 아무 장애가 되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한국 불교계 또한 여성을 어떻게 대접하는가. 아무리 연륜과 덕이 높은 비구니(여성)일지라도 갓 수계를 한 비구(남성)에게 먼저 예를 갖춰 절을 해야 하는 계율이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함께 수행을 하는 도반인 비구니에게 그러할진대 일반 여자를 ‘저기 아랫것들’로 보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것인가. 심지어는 수행자가 계율을 어기면 다음 생에 여자로 태어나거나 남자로 태어나도 불구가 된다고 설법을 하니 부끄러운 일이다. 차별을 없애고 여성의 명예를 회복시키는 것이야말로 선덕을 쌓는 일!
‘여자와 남자를 차별하지 않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깨달은 부처의 자비로’ 세상의 모든 여자와 남자에게 축복 있기를.
오늘 아침 신문 제목이다. ‘오빠 어깨 주물러봐’ 여경 성희롱 넘치는 경찰 조직! 근무시간에 흰머리를 뽑게도 한다는 기사다. 짜증난다. 나는 태어나자마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자동으로 주민등록번호 기호 2번을 받았다. 국가한테 2번이라고 요청 한 기억이 없는데 말이다. 국가와 세상이 차별하는 여자. 과학의 눈으로 따져도 여자는 2순위인가? 당연히 아니다.
여자는 자신의 반쪽 씨에 남자의 반쪽 씨를 보태어 열 달 동안 자신의 피로 완전한 생명을 길러내는 창조자다. 사람은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다고들 하는데, 나는 여기에 자궁을 추가하여 여자는 ‘육장육부’라고 생각한다.
일하기 좋게 근육을 붙이고 성기를 밖으로 빼서 손쉽고 정확하게 정자를 운반하게 만든 ‘일반형’은 남자 몸이다. 여자에게는 난소와 질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는 상동기관이 없는 자궁이라는 위대한 장부가 있다. 자고로 보물은 밖에다 허술히 간수하지 않는 법.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몸 깊숙한 곳에 특별한 자궁을 마련하였다. 복부 깊숙한 곳에 생식기와 자궁을 내장하고, 근육 대신 비상열량도 되고 충격 완화재와 보온 단열재인 다목적 지방으로 몸을 소중하게 감싼 여성의 몸은 ‘고급형’이라고 할 수 있다.
생명을 만들어내는 일이 워낙 절대적이고 중요하기 때문에 여성의 몸에는 정교하고 정확한 시스템과 기능이 필요하다. 난자는 정자보다 키는 25배, 크기는 1000배나 크고 무게는 10만 배나 무겁다. 그 속엔 유전물질은 물론 발생에 필요한 동력기관과 영양물질이 가득 찼다. 그러니 엄청 귀하고도 비싸다.
수정란 단 한 개의 세포가 10개월 동안 자궁 속에서 자라나 무려 3kg나 되는 아기로 태어난다. 기적을 만드는 자궁은 경이롭고 엄청 값비싼 장기다. 과거에서 현재에 이르는 전 인류는 자신의 몸에서 피를 나누어준 엄마와 자궁의 이타적인 사랑 덕에 존재하는 것이다.
피는 아깝고 귀한 것. 밥벌이를 하는 것은 몸에 피가 되고 살을 만들어 주는 먹이를 구하려는 것. 고로 피는 몸속의 돈이다. 아이는 엄마 자궁에 빨대를 꽂은 것처럼 굵은 혈관으로 공급되는 피를 통해 모든 영양분을 끌어다 제 몸을 키운다.
모성애란 결국 자신에게도 끔찍하게 소중한 피를 나누어주는 것. 여자들이 진짜 피를 물려주는 혈통의 주인공. 반쪽 씨 외엔 주고 싶어도 피 한 방울 넣어줄 수 없는 아빠들은 아기를 품에 안은 것에 감사하며 피눈물 나는 부성애로 보답을 해야 하리라.
자, 엄마의 달덩이 같은 뱃속… 따뜻한 양수 속을 헤엄쳤던 기억을 떠올려보자. 굵은 탯줄로 매달렸던 흔적. 배꼽에 대해 사랑을 담아 애무를!
PS. 배꼽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영화 ‘그래비티’ 강추! 할아버지가 아들 낳으라고 ‘라이언’이란 이름을 붙여준 스톤박사가 우주선에 매달린걸 보면… 지구 엄마와 인력이 연상된다.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