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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재마다 법제의 방식이 다르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자식 키우는 일이 그 어느 일 보다 더 힘들다는 점에서는 대다수의 부모들이 동의할 것이다. 왜 이리도 자식 키우기가 힘이 드는 것일까? 자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일까? 내 자식이 못나서일까? 부모와 자식의 성격이 맞지 않아서일까? 


자식을 키우는 것은 약재를 다듬는 과정과 유사한 면이 있다. 한약으로 쓰이는 약재 중에서는 부자(附子)란 것이 있다. 미나리아재비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인 바꽃의 뿌리를 건조한 것으로, 몸에 냉기가 쌓여 생기는 여러 통증을 풀어준다. 이 부자에는 독성이 있어서 생 것 그대로 쓰게 되면 호흡 곤란이나 의식 혼수가 생길 수 있다. 그래서 이 부자를 약으로 쓰기 위해서는 법제(法製)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법제란 약재의 부작용을 일으키는 성분을 제거하고 약효를 높일 수 있도록 여러 가지 방법으로  손질하고 가공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법제는 약재마다 방식이 다르다. 부자의 경우에는 흑두와 감초를 물에 함께 넣고 팔팔 끓여줘야 한다. 이렇게 하면 부자의 부작용은 사라지고 몸의 냉기를 풀어주는 효능만 남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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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황(大黃)이란 약재도 있다. 여뀟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뿌리로,  약재의 부작용을 제거하고 효능을 증가시켜주는 이 법제라는 것은 약재마다 방식이 다르다. 만약 이 법제를 엉뚱하게 해버리면 약재는 제대로 된 약효를 갖출 수 없게 된다. 부자는 부자의 방식대로, 대황은 대황의 방식대로 법제를 해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약재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약재의 종자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야 어떠한 법제가 필요한지 알 수 있다. 약재에 맞는 법제를 해준다면 얼마든지 훌륭한 품질의 약재를 탄생시킬 수 있게 된다.  대소 변이 막혔거나 몸에 어떤 덩어리가 생겼을 때 이를 뚫어주고 부셔주는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워낙에 성질이 강렬하여서 생 것 그대로 쓰면 지나친 설사가 생겨 환자의 기운을 깎아내리고 허탈증에 빠뜨릴 수도 있다. 그래서 밀가루 반죽에 싸서 잿불 속에 넣고서 살짝 익히는 법제를 해준다. 이렇게 하면 대황을 보다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


약재가 제 기능을 하려면


한 농부가 있었다. 그 농부는 부자라는 약재에 너무나 매료가 되었다. 부자를 꼭 키워보고 싶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준 부자 씨앗을 얻어와 자신의 밭에 심고 정성껏 키웠다. 씨앗은 무럭무럭 자라 튼실한 줄기와 풍성한 잎을 내었다. 수확 철이 되어 농부는 풀의 뿌리를 채취했다. 그리고 부자를 법제하는 방식대로 흑두와 감초를 넣고 팔팔 끓였다. 이제 명품 부자가 완성되었다고 생각했고, 이 약재를 넣고서 부자탕이라고 하는 어떤 처방을 달였다.


부자탕은 팔다리가 싸늘하고 배가 아프며 온 관절 마디마디가 아플 때에 쓰는 처방이다. 정성껏 키우고 정성껏 법제한 부자를 넣었으니 효과가 만점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웬일인지 부자탕을 먹은 환자는 낫기는 커녕 설사를 심하게 하면서 팔다리가 더욱 싸늘해졌다. 농부는 의아했다. 왜 이런 일이 생겼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실은 그 이유는 간단했다. 농부가 원한 것은 부자라는 종자였지만, 농부가 실제로 키운 것은 대황이라고 하는 전혀 다른 종자였기 때문이다. 농부는 부자라는 약재를 절실히 원했고, 부자라고 생각하고 키웠고, 부자라고 생각하고 법제했다. 하지만 실제 그 약재는 부자가 아닌 대황이었다. 그래서 흑두와 감초와 함께 끓는 물속에 넣어지는 법제는 대황과는 전혀 맞지 않는 방식이었다. 부자탕이라고 하는 처방 역시 대황이 들어가서는 안 될 자리였다. 그런데도 대황을 부자로 잘못 알아본 농부에 의해 엉뚱한 방식으로 법제되고 엉뚱한 자리에 넣어지게 된 것이었다. 이것은 대황을 망가뜨리게 만들었고 또한 부자탕을 망가뜨리게 만들었고 또한 환자를 망가뜨리게 만들었다.


만약 농부가 그 씨앗이 대황임을 알고, 대황임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대황의 방식대로 법제를 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서 부자가 들어가야 할 부자탕이라는 처방이 아니라, 대황이 들어가야 할 대황감수탕이라는 처방에 넣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대황의 방식대로 법제된 대황은 “어혈과 월경이 막힌 것을 나가게 하고 몸에 생긴 덩어리를 부셔주며 대변과 소변을 잘 통하게 한다.”는 대황의 타고난 효능을 훨훨 펼쳤을 것이다.


왜 자식 농사가 이리도 어려울까?


이 세상의 모든 농사 중에서 자식 농사가 제일 어려운 것 같다. 자식이 내가 원하는 대로 자라주지 않을 때에는 정말 속상하다. 도대체 자식 농사가 이리도 어려운 이유가 도대체 뭘까? 


첫째는, 나에게 주어진 이 작은 씨앗이 무슨 종자인지 알지 못해 법제의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식물을 키울 때에는 이것이 무슨 종자인지, 행운목인지 산세베리아인지 처음부터 알고서 키운다. 그래서 물은 며칠에 한 번씩 줘야 하며 햇볕은 어떻게 쏘여줘야 하는지 제대로 알 수 있다. 하지만 자식은 그렇지가 않다. 이 녀석이 어떤 종자인지 처음부터 알 수가 없다. 종자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대황의 방식으로 법제를 할 것인지 부자의 방식으로 법제를 할 것인지 알 수가 있다. 그런데 이 녀석이 대황인지 부자인지는 자식과 부모가 여러 차례 부딪히고 깨지는 혹독한 시행착오를 거쳐야 비로소 알 수가 있다. 대황을 부자인 줄 알고 부자의 방식으로 법제를 했다가 부작용을 겪고서야, 이 녀석이 실은 대황이었구나 알 수가 있다.


둘째는, 자식이 부모가 원하였던 그 종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는 명랑하고 활달한 아이를 원했으나 자식은 자신감이 없고 겁이 많으며 내성적일 수 있다. 부모는 차분하고 학습 능력이 뛰어난 아이를 원했으나 자식은 노는 것만 좋아하고 산만하기 이를 데가 없는 아이일 수도 있다. 부모는 혁명을 이끌 수 있는 장군과도 같은 아이를 원했으나 자식은 예민하고 깐깐하기가 이를 데가 없는 유리 같은 아이일 수도 있다. 부모가 원하고 기대하는 그 종자가 아니라서 부모의 마음이 찢어지기에 그래서 더 힘든 것이 아닐까?


셋째는, 야생의 약재를 명품 약재로 만들기 위해 부모가 해줘야하는 이 법제라는 것이 많은 시간과 노력과 인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냥 스스로 알아서 잘 자라주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마음이 굴뚝같이 들 때가 많다. “엄마는 너만 할 때 혼자 알아서 다 했다. 그런데 넌 이게 뭐니?”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불쑥불쑥 튀어 나온다. 처음부터 완벽한 사람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부모가 가꾸어주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가꾸어주는 법제의 과정이 쉽지가 않다. 알아서 온화한 성품이 되고 알아서 총명한 두뇌를 갖추어 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린 자식 하나를 키워서 제대로 된 물건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어 놓기 위해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엄청난 노력과 끝이 없는 인내를 거쳐야 한다. 동의보감에서는 “무릇 약이란 병을 치료하는 물건이다. 대개 병은 자꾸 변하기 마련이고, 그것을 치료하는 것은 약에 달려 있으며, 그 약을 법제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다. 이 세 가지 중에서 하나라도 빠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기서 병이란 세상일이고, 약이란 내가 아끼며 키우는 자식이며, 법제하는 사람은 바로 부모가 된다. 약 하나 만들기도 어려운데 사람 하나 키운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는가? 그러니 자식 키우기는 힘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자식을 제대로 키우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내 자식의 종자가 무엇인지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 녀석이 대황인지 부자인지 알아야 제대로 법제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다음에는 그 종자 그대로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비록 내가 기대하던 자식의 모습과는 다르다 할지라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자식에게 햇살과도 같은 사랑을 계속 쏟아부어줘야 할 것이다. 마치 태양이 가난한 나라와 부자 나라를 가리지 않고 이 세상 모든 곳에 똑같이 그리고 끊임없이 햇살을 뿌려주듯이 말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