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이제 밤이 추워지기 시작하고 해가 뜨는 시간도 늦어지면서 슬슬 가을이 다가오는 것이 실감 납니다. 더워졌다가 갑자기 추워지기를 반복하는 환절기 날씨는 체온을 항상 일정하게 유지해야 하는 몸에는 상당한 스트레스가 됩니다. 그래서 쉽게 지치고 감기나 소소한 염증 같은 몸이 약해지면 생기기 쉬운 질환들이 자주 보이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마음 역시 그 영향으로 잘 지치게 되나 봅니다. 가을 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요.
그래서 환절기의 기분을 좀 더 산뜻하게 하고 기운이 나게 할만한 차가 어떤 게 있을까 생각해 봤는데요. 꽃을 더한 차들이 아무래도 기분 좋은 하루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꽃은 보는 것만으로도, 향기만으로도 행복하고 편안한 시간을 만들어 줍니다.
꽃향기만 더한 차가 있는가 하면 꽃을 직접 넣은 차도 있습니다. 꽃잎을 넣은 경우는 정말 많죠. 꽃을 담은 차는 몇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 루피시아의 가가고사이(加賀五彩) +
일본 가나자와 지방의 가가유젠이라는 기모노 염색에 사용하는 다섯 가지 색상에 맞춰 녹차, 백차와 꽃잎들을 배합한 차입니다. 장미, 수레국화, 매리골드, 블루멜로우 꽃잎들이 들어가 있습니다.
+ 마리아주 프레르의 얼그레이 프렌치 블루 +
전통적인 얼그레이의 구성인 홍차와 베르가못 오일에 수레국화 꽃잎을 추가한 것으로 기존의 얼그레이보다 부드러운 맛을 냅니다.
수레국화꽃입니다. 충남 당진에서 촬영했습니다.
첫째로는 꽃이나 꽃잎을 직접 넣는 경우입니다.
주로 장미꽃은 꽃잎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대감이 많이 커지죠. 붉은 장미 꽃잎, 노란 매리골드 꽃잎, 파란 수레국화 꽃잎, 노란 오렌지 꽃잎, 붉은 잇꽃 꽃잎, 노란 캐모마일, 노란 금목서 꽃잎, 진한 보랏빛 블루맬로우 꽃잎 등이 블렌딩에서 자주 등장하는 꽃들입니다. 꽃잎들의 다양한 색만으로도 차를 우려내기 전 기분을 좋게 만들어줍니다.
+ 선운산야생꽃차의 벚꽃차 +
찻잎이 든 것은 아니고 벚꽃만 건조해서 말린 것입니다. 차를 우려내고 그 위에 띄우면 봄을 느끼는 기분 전환용으로 괜찮습니다. 순수한 벚꽃차는 딱히 향기롭지는 않습니다.
일본식 벚꽃차입니다. 벚꽃을 소금에 절여 놨다가 다음 해에 먹습니다. 소금을 털고 씻어낸 후 따뜻한 물에 우려내는데 그래도 소금의 짠맛이 남아 있습니다. 짠맛 때문에 거부감이 들 수 있지만, 벚꽃의 색과 형태는 건조한 것보다 더 생생한 편입니다.
블루맬로우는 우려낸 차의 색을 바꾸기도 해서 좀 더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게 해줍니다. 안토시아닌 색소로 온도와 시간에 따라 파란색에서 보라색으로 우러나고 여기에 레몬즙 같은 산을 추가하면 분홍색으로 극적으로 변합니다.
대개 장미, 금목서 등은 향기까지 진한 편이라 차의 풍미를 바꿔주기도 합니다. 꽃 자체만으로도 매력적이지만 장미는 특히 홍차와 금목서는 우롱차와 대단히 잘 어울리기도 합니다. 여기에 공예차라고 해서 찻잎과 꽃을 서로 묶어서 꽃 모양으로 피어나게 만드는 차도 있습니다. 둥글게 말려 있는 차가 물속에서 점점 벌어지면서 꽃처럼 펼쳐지는 연출은 접대용으로도, 기분전환용으로도 꽤 좋습니다.
+ 그리폰티 컴퍼니의 뷰티 오브 더 이스트 +
녹차와 재스민꽃을 실로 묶어서 둥글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뜨거운 물에서 천천히 풀리면서 꽃이 핀 모양이 됩니다. 맛은 부드럽지만 조금 쓴맛이 있고 충분히 꽃이 피는 것을 볼 정도면 꽤 많이 우러나기 때문에 맛을 위해서라면 중간에 물을 좀 따라내고 다시 부어주는 쪽이 낫습니다. 오랫동안 물에 담겨 있는 것을 고려해서인지 차가 과다추출이 잘 일어나지 않게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둘째로는 꽃의 향기만을 입히는 음제라는 방법으로 만든 경우입니다.
차에 향을 입히는 것은 꽤 전통적인 방법인데 차를 완성한 후, 어두운 방 안에 꽃봉오리 상태의 꽃을 넣고 그대로 하룻밤을 지나게 합니다. 꽃이 피면서 꽃향기가 찻잎에 스며들게 되죠. 그렇게 꽃이 피고 나면 다시 꽃을 다 제거하고 새로운 꽃봉오리들을 넣고 다시 꽃이 피게 하는 것을 반복하면서 찻잎에 꽃향기가 계속 스며들게 해서 만듭니다.
동글동글하게 말린 우롱차인 펄재스민이 음제로 만든 가장 유명한 차입니다. 전통 방식인 만큼 그렇게 종류가 다양하진 않은데요. 보통 재스민차, 치자꽃차 같은 종류가 이런 음제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꽃을 제거한 것이 더 품질이 좋은 고급 차입니다. 사람의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아무래도 가격대는 있는 편이죠.
+ 공부차의 진주자스민백차 +
겉보기엔 둥근 모양으로 말린 찻잎으로 재스민꽃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음제로 만든 펄재스민 차입니다. 차로 마시면 부드러운 차 맛에 풋사과를 닮은 재스민 꽃향기가 어우러져 있습니다.
셋째로는 찻잎에 꽃향기를 내는 향료만 추가한 것입니다.
적당한 찻잎에 꽃에서 추출하거나 합성한 향료를 더한 것이죠. 꽃이 직접 들어가지 않아 아쉽게 느껴질 수 있지만 다양한 종류의 향기를 연출할 수 있고 실제 꽃잎을 건조했을 땐 나지 않는 꽃향기도 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실제 꽃을 넣었을 때때로 원하지 않은 맛이 나는 것도 피할 수 있죠. 꽃향기는 이미 다양하게 이용하고 있기 때문에 차에 넣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 장미홍차 +
교토 아라시야마의 라 비앙 로즈라는 카페의 홍차입니다. 장미로 가득한 정원에서 난 장미 꽃잎을 홍차에 얹어 주는 것이 이색적이었습니다.
이 방법 중 한 가지 방법만 사용한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방법을 동시에 사용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장미 꽃잎을 넣고 다른 향기를 추가로 입힌다거나 하는 식의 방법도 있겠죠. 간혹 장미 향을 넣고 꽃잎을 띄워 주기도 합니다. 향기만으론 부족한 연출을 위한 것도 있고 장미 꽃잎만 사용하는 것보다 더 선명하고 진한 향기를 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 묘차의 계화우롱 +
금목서를 계화라고 부릅니다. 우롱차에 금목서꽃이 듬뿍 들어가 있습니다. 달콤한 향기를 내는 금목서꽃은 차를 매우 부드럽고 달콤하게 만들어줍니다. 특히 이렇게 금목서꽃이 듬뿍 들어갈수록 맛있습니다.
+ 칠삼차당의 계화철관음 +
대만 북부 스먼 지역에서 전통방식으로 생산한 높은 산화도와 짙은 홍배가 들어간 철관음에 금목서꽃을 블렌딩한 차입니다. 부드럽고 깊이 있는 베이스와 달콤한 맛이 서로 어우러져 깊은 맛을 냅니다.
꽃이 담긴 차들은 기분 전환에 정말 좋지만, 주의할 점이 하나 있습니다. 꽃향기는 참 기분이 좋죠. 그래서 일상생활 곳곳에서 사용하고 있기도 합니다. 향기에 대한 기억은 본능적으로 우리 머릿속 깊이 자리하게 됩니다. 차를 마시거나 꽃향기를 맡은 경험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비누, 세제, 향수 등 먹으면 안 되는 곳에 사용된 향기를 먼저 접하고 익숙한 사람에게 같은 종류의 꽃향기가 들어간 차는 본능적으로 마시면 안 된다는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그런 분에게 꽃향기가 나는 차는 기분전환이 되기보단 안 좋은 경험이 되기 쉽겠죠. 장미 향이 그런 경우가 많은데, 재스민 향이나 금목서 향은 대부분 좋아하기도 하고 싫어하는 경우가 드물어서 아직 취향을 잘 모르신다면 이런 차를 즐겨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제준태 원장의 열두 달의 수다(秀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