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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김치와 바나나똥


주미는 밥알을 세는 아이다. 네 살인데 키도 작고 체중은 두 살배기보다 적다.

“선생님, 하루 한 숟갈도 안 먹어요. 안 먹고 어떻게 사느냐고 다들 거짓말이라고 하겠지만 사실이에요.”

진짜라고 힘주어 말하는 엄마는 속이 상해 눈물을 글썽거린다. 밥을 넘기려면 물이 한 잔이고 굶길 수 없어 하루 열 병의 유산균 음료와 주스로 산단다. 장에 밀어낼 내용물이 없으니 장폐쇄증까지 온 적도 있었다. 늦도록 우유배, 물배가 차는 아이들은 고형물을 씹기 싫어한다. 젖을 빠는 건 우유를 먹는 것보다 몇십 배나 힘이 든다. 아이들은 엄마 젖이 줄어들면 배고파서 밥상 위로 기어 올라가 이것저것 입맛을 탐색하여 익혀간다. 엄마가 치료받으러 온 것이라 주미는 진찰실을 들락거리며 놀기만 했다. 나를 비롯해 간호사 언니들하고 사진도 찍고 친해지길 두세 달. 약을 먹어서 칭찬과 사랑을 받고 싶어졌나 보다.

오랜 불기식(不嗜食)에 비기허증(脾氣虛症)으로 식욕도 잃고 빈혈이 있는 아이라 향진음(香陣飮)에 보혈제를 처방했다. 저체중에 간의 성장인자가 부족해서 키 성장이 안 되니 걱정이 컸지만 우선 아이의 ‘마음먹기’가 필요한 법. ‘나는 밥 안 먹는 아이야’라는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우리는 투약과 함께 홍보 전략을 짰다.

“주미가 밥 안 먹는다는 말은 이제 입 밖에 내지 마세요. 그 대신 단 한 가지라도 먹으면 동네방네 자랑해주세요. 긍정적 홍보 효과가 크거든요.”

얼마 후 들려온 기쁜 소식. 주미가 두부 넣은 청국장에 밥을 먹는단다.

“선생님, 어제는 백김치를 1/4포기나 먹고 바나나 같은 똥을 누었어요. 하하하”

염소똥 누기도 힘든 아이가 노랗고 굵은 바나나똥이라니 칭찬받을 만했다. 제 얘기 안 듣는 척하던 주미는 한의원 부엌으로 가더니 간호사 언니에게 배고프다고 밥을 김에 싸달래서 먹고 갔다. 스스로 잘 먹으려는 의지가 싹트는 순간이다.


한누리라는 예쁜 이름의 아이. 엄마는 교사로 남의 자식 돌보느라 자기 딸 키우기에는 힘이 달린다. 출산 시 저체중으로 태어나 안 먹고 안 자라고 코피를 쏟아 안쓰럽다. 한 달에 두 번쯤 찾아와서 진찰실에 있는 나의 ‘부우’인형을 만져보고 돌아간다.

배꼽 침도 잘 맞고 약도 잘 먹으니 노랗던 피부가 벗겨져 쌀가루를 바른 듯 뽀얘졌다. 얼굴을 쓰다듬으니 네 살짜리가 저 예쁘다는 줄 알아채고 웃음을 깨물고 있었다. 밥을 잘 먹는다기에 이번에는 약 처방만 주어서 내보냈더니 대기실에서 ‘으앙’ 우는 소리가 들린다.

“엄마가 때렸나?”
“아뇨. 침 안 맞았다고 우는 거예요.”
이그~~ 예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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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들은 밥만 잘먹어도 효도


밥 안 먹고 키가 작다고 찾아온 송이. 초등학교 들어가는 또래들 어깨만 하다.
“송이야~, 너 밥 잘 먹니?”
“아니요.”

냉랭한 표정으로 ‘밥 싫어해요.’라는 부연 설명까지 덧붙이며 방어가 세다. 밥 사절에 노상 감기로 훌쩍이고, 가래에 코 막힘에 배앓이, 차멀미 증상이 꼬리를 물었다. 학교에 가야 하는데 밥 떠먹이는 데 한 시간이나 걸리니 걱정이다. 보리차도 싫어하고 주스는 억지로 마시고 배가 자주 아프다 하니 병원에서는 신경성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아이고, 내가 얘 때문에 속상해 죽겠어요. 밥 먹으라고 하면 배 아프다고 숟가락을 놓고 화장실을 들락거려요.”

아이는 눈을 내리깔고 엄마의 하소연을 듣고 있다. 배에 찜질을 해주고 향진음을 처방해서 약을 지어줬다. 석 달이 지난 후 입학 때가 되어서 찾아왔는데 키도 크고 체중도 많이 늘었다.

“송이야, 반갑다. 다시 올 거라 기다리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많이 바빴나 봐요. 밥은 잘 먹나요?”
“여전히 고통의 연속이죠. 그래도 많이 양호해졌어요. 얼마 전엔 족발도 먹었어요.”

맞아, 밥 안 먹는 자식을 보는 엄마 마음은 ‘고통의 연속’이리라.

애들아, 밥만 잘 먹어도 효도란다.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