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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은 국내에서 가장 긴 해안선을 가진 곳이다. 그곳에서 만난 해안사구. 신비로운 땅에서 진득한 서해의 맛까지 만나고 돌아왔다.



서해 바다의 절정, 태안


태안은 알면 알수록 새롭게 다가오는 고장이다. 복잡하게 들고나는 해안을 따라 그 길이를 재었더니 무려 530.8킬로미터에 달했다. 그 길이를 한 줄로 쭉 펴면 무려 서울에서 부산을 가고도 남는 거리가 나온다. 비뚤비뚤 제멋대로인 해안선은 인간이 결코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을 품었다. 자연이라는 이름의 신만이 할 수 있는 예술. 그 위에 자연이 건강한 모습으로 살아 숨 쉰다. 1977년 태안이 국내 유일의 해안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유이자 차를 타고 달리기만 해서는 미처 알 수 없는 태안의 진면모다. 흔히 안면도가 잘 알려져 있지만, 태안의 바다가 품은 신비는 신두리 해안사구를 빼고 이야기할 수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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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사구는 모래언덕을 뜻한다. 국내에 사구가 몇 있지만, 그중에서도 태안의 신두리 해안사구를 으뜸으로 꼽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자명하다. 오랜 역사와 지형적 특징. 그리고 그 크기. 신두리 해안사구의 역사는 빙하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차갑게 얼어붙었던 땅은 바다와 땅의 움직임을 따라 침식과 퇴적을 반복했다. 허물어진 모래가 쌓이고 내린 비는 그 뒤로 고여서 바다와는 전혀 다른 습지를 만들어낸다. 어찌하여 모래 사이로 빗물이 흘러내려 가지 않았느냐고 묻는다면 시간의 힘 덕분이라고 말할 수밖에는 없겠다. 그렇게 형성된 사구는 한국 해안사구의 모든 지형을 관찰할 수 있는 땅이 됐고, 세계적으로도 이름을 떨치는 곳이 됐다. 해변을 따라 그 뒤로 펼쳐지는 규모도 대단하다. 3.4킬로미터의 해안을 따라 좁게는 50미터, 넓게는 1.3킬로미터에 걸쳐 사구가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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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만 봐서는 그저 그런 관광지에 지나지 않겠지 싶지만, 직접 그 땅을 마주하고 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 너른 모래언덕의 세상. 그 위에 서면 마치 오아시스가 있는 몽골의 초원 어딘가를 걷는 듯한 착각에 빠져든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연이 빚어낸 그 풍경에 한동안 말없이 서서 바라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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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 살아 숨 쉬는 땅


신두리 해안사구가 처음이라면 그곳으로 들어가는 초입의 신두리사구센터는 반드시 방문하는 게 좋겠다. 어떤 여행이든 아는 만큼 보인다. 이곳은 존재 자체로도 충분히 의미 있는 곳이지만, 형성 과정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수많은 생명에 관한 지식의 폭을 넓혀 둔다면 걸음걸음 내디딜 때마다 보이는 게 달라진다.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표범무늬장지뱀이라는 희귀종을 비롯해 말로만 들었던 모래귀신, 금개구리 등은 신두리 해안사구가 왜 특별할 수밖에 없는지를 설명해주는 키워드다. 자칫 자연 풍경구에 큰 흥미를 느끼기 어려운 아이를 둔 가족이라면 이곳의 중요성은 더 커진다. 사구의 형성 과정이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생물에 관한 다채로운 정보를 오감으로 체험하도록 여러 가지 프로그램을 준비해 뒀다. 한두 시간 이곳에서 시간을 보낸 후라면 비로소 준비 완료. 이제는 해안사구를 만나러 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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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서 사구를 향해 나아간다. 곁으로 드넓게 펼쳐진 해변을 보면 해안사구 따위가 다 무슨 소용인가 싶겠지만, 5분 정도의 시간을 들여 그 땅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느끼게 되리라. 눈 앞에 펼쳐진 저 광경을 보았다는 것만으로도 이곳을 찾아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것을. 신두리 해안사구는 그 넓디넓은 크기를 보여주듯 이곳의 진가를 경험할 수 있는 코스가 나누어져 있다. 가장 짧은 30분짜리 코스부터 60분짜리, 120분짜리 코스가 준비돼 있다. 대체로 각 코스는 나무를 짜 만든 데크를 따라 걸으며 해안사구의 이모저모를 즐기도록 되어 있는데, 걷는 이가 지루하지 않도록 다양한 풍경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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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동안 얻어가는 가장 큰 재미는 역시 이곳에서 사는 여러 생물을 마주하는 것.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것은 갯메꽃 같은 식물군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발아래로 모래귀신이 만들어 놓은 모래지옥이 수도 없이 보인다. 이게 이토록 흔한 것이었나 싶을 만큼 수가 많다. 마치 아이들이 깔때기 모양으로 모래에 구멍을 내어놓은 것처럼 원형으로 움푹 들어간 곳은 죄다 모래귀신이 사는 집이다. 이곳에 곤충류가 빠지면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한다. 발버둥 쳐봐야 흘러내리는 모래알에 미끄러질 뿐이다. 모래지옥 못지않게 자주 보이는 건 일종의 게시판이다. 뱀이 나올 수 있지만, 당황하지 말고 지나가라는 조언. 생태계가 잘 살아 있다 보니 뱀도 그만큼 많은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곳을 걷는 동안 한 마리의 뱀도 보지 못했으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뱀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것 이상으로 뱀도 사람을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주지하길. 이곳을 찾은 당신은 그저 이 신비로운 땅을 걸으며 즐기기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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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이 풀어내는 진한 국물의 매력


서해, 그중에서도 맛으로 이야기하자면 전라남도를 따라갈 곳이 있을까 싶지만, 충청남도의 맛도 결코 뒤진다고 이야기할 순 없다. 남도의 맛이 어떤 음식이든 맛깔나게 완성해낸다면 충남의 맛은 좀 더 섬세하게 식재료의 맛을 풀어내는 식이다. 특히나 태안 일대는 먹거리가 많은데, 우럭젓국은 충청남도의 해안가를 대표하는 맛이라 할 만하다.


태안 시내에서 안면도로 향하는 길. 샘골전주식당에 들렀다. 우럭젓국 잘하는 집으로 찾다 보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집이다. 절친한 친구와 둘이서 3만 원짜리 소자를 시켰다. 주인장은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 들어가더니 뚝딱 한 그릇을 내온다. 우럭이라는 생선은 살이 차지고 양도 많아서 찾는 이가 많다. 그런데 이것을 햇살에 반쯤 꾸덕꾸덕하게 말려 국으로 끓여 내면 횟감이나 조림 등의 요리에서 맛보던 것과는 또 다른 진미를 선사한다. 끓이면 끓일수록 진하게 우러나는 국물. 여기에 청양고추를 더해 국물을 한 입 밀어 넣으면, 처음엔 담백하게 밀려와서 알싸하게 뒤끝을 마무리 짓는다. “어후” 소리를 연신 내뱉으며 우럭 살도 발라 먹고 함께 끓여낸 채소도 아삭하게 씹다 보면 밥 한 공기는 뚝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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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저히 이대로 수저를 내려놓을 수 없어 다시 한 공기를 시켜도 그 많던 밥알이 오래 버티지를 못한다. 하얀 쌀밥을 한 입 밀어 넣고 그 뒤를 이어 국물을 떠먹어도 좋고, 아예 국물에 밥을 말아 먹어도 좋다. 어떻게 먹든 햇살에 말린 우럭이 품은 감칠맛은 일품이다. 우럭젓국은 양도 많아서 서너 명이 먹어도 충분할 듯하다. 곁들여 내주는 반찬마저 외면하기 어려울 만큼 알차다. 도대체 몇 그릇의 공기를 비워야 성이 찰 수 있을까. 한 번 그 맛을 보면 여름철 태안 여행에 이 별미를 빼놓기는 어려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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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좋게 배를 채우고 다시 길을 떠난다. 이렇게 맛있는 한 끼를 해결하고 나면 기분마저 좋아지기 마련. 배를 두드리며 다시 떠날 차례다. 어디로 향하든 속이 든든하니 다시 힘을 내서 떠나볼 만한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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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럭은 쫀득한 식감에 더해 비린내가 심하지 않아 찾는 사람이 많다. 더구나 크기가 크면 클수록 살점도 많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식재료다. 우럭의 원 이름은 조피볼락이다. 그 안에는 비타민 A, 타우린, 아미노산이 많아 피로 회복뿐 아니라 간 기능 회복에도 탁월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풍부한 아미노산은 고혈압, 동맥경화, 당뇨와 같은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 여기에 더해 칼슘과 철분도 많은데 이는 골밀도를 높여 골다공증 예방에 도움이 되고 성장기 어린이의 뼈 성장에도 좋다. 우럭의 껍질에는 단백질과 비타민 B2 등이 많다. 이는 뇌 신경을 진정시키고 뇌 기능 향상과 스트레스로 지친 심신을 진정하게 도와주는 효능이 있어 가능한 껍질도 함께 먹는 게 좋겠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