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문경 윤필암을 찾았던 건 사찰음식을 배우기 위함이었다. 만추에 흠뻑 젖은 윤필암에서 뜻밖의 선물을 받았다.
찬란한 만추의 풍경
윤필암은 문경에서도 동북쪽인 산북면의 사불산 안쪽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차를 몰고 사과밭을 지나 안쪽으로 훌쩍 더 들어가서야 비로소 비탈진 산마루에 암자의 모습이 나타난다. 절의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문경에서는 손꼽는 명찰 중 하나다. 사시사철 계절의 옷을 바꿔 입어도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는 곳. 이 암자의 역사는 고려 후기인 138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대의 고승이었던 나옹 화상이 입적했다. <서왕가>로 잘 알려진 그의 원래 법명은 혜근이다. ‘나옹’은 법명이 아닌 호. 사실 그가 <서왕가>를 지었다는 명확한 근거는 없다. 내용이나 시상을 전개하는 방식이 나옹 화상의 다른 작품과 일맥상통하고 있어 학계에서는 <서왕가> 역시 그의 작품이라고 추정한다. 그가 입적한 이후 나온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지은 사찰이 지금의 윤필암이다. 그런데 암자의 이름이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불교계에서 사용하지 않는 이름. 보통의 절 이름은 불교와 관련있는 명칭을 사용하거나 혹은 이 절만의 유래에서 비롯한 이름을 쓰는데, 윤필암은 후자의 경우다.
나옹 화상의 사리를 봉안할 절을 지은 장본인은 각관 스님과 김득배 씨의 부인 김 씨다. 창건 기록에 나오는 내용이 그렇다. 아마도 각관 스님은 절의 창건을 직접 이끌었을 터이고 김 씨 부인은 이 절을 짓는 시줏돈을 댄 화주보살이 아닐까 싶다. 절의 창건 경과를 기록한 기문은 당시 최고의 문장가인 목은 이색이 썼다. 목은 선생은 기문을 넘겨주면서 이에 대한 원고료를 받지 않았다. 해서 이 암자에 붙은 이름이 윤필암이다. ‘윤필’이란 원고료를 뜻한다.
암자의 경계로 들어서자마자 일행에게서 감탄이 연달아 터진다. 이토록 아름다운 늦가을의 풍경이란. 사불산은 깊숙한 안쪽을 윤필암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었다. 바스락거리며 밟히는 낙엽은 정겹고 눈으로 주워 담는 풍경은 찬란하다. 공기마저 상쾌해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올해의 마지막 절경을 윤필암이 보여준다.
사찰음식을 배우러 왔으니 우리가 가야 할 곳은 이 절의 공양간이었다. 지금 이 절을 관리하는 주지는 공곡 스님과 정효 스님. 출가 선후배 사이이자 사찰음식 지도자 과정 1기 동기인 두 사람이 함께 이곳을 가꾼다. 비구니가 머무는 공간이라는 게 여기저기서 느껴질 만큼 전반적인 사찰의 분위기가 정갈했다. 이른 새벽부터 출발해서 도착했음에도 약속한 시각에서 10분여가 지나서야 공양간에 들어설 수 있었다. 두 스님은 이미 일행을 맞을 준비로 분주하다. 인사를 제대로 건네기 어려울 만큼 스님 두 분의 손과 발이 날래게 움직이고 있었다.
서로 다른 성격의 두 스님
사찰음식을 함께 만들 스님은 정효 스님이었다. 주지 공곡 스님은 정효 스님의 일임에도 마치 자기 일인 양 곁에서 꼼꼼하게 거든다. 그런데 이 스님, 성격이 대장군이다.
“정효 스님, 그 그릇보다 이게 더 나을 것 같아. 색깔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좀 더 예쁜 거로 바꿔봅시다. 기왕이면 출가자의 위의를 보여줄 수 있는 옷을 입는 게 좋지 않을까? 여기는 내가 볼 테니 가서 깔끔하게 옷 바꿔 입고 와요.”
목소리도 쩌렁쩌렁. 여느 사람 같으면 그 기에 눌릴 법한데도, 정효 스님은 마냥 생글생글 웃는다. “네, 스님” 함께하는 내내 이런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마치 위풍당당한 소나무와 바람에 꺾이지 않는 유연한 대나무를 보는 것 같다고 할까. 두 사람의 모습은 무척 대조적이지만, 의외로 그런 와중에 조화를 이룬다. 이색적이었다.
정효 스님에게 배운 사찰음식은 육근탕과 표고버섯밥, 새송이구이였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육근탕이었다. 육근탕은 해인사 보현암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음식. 한겨울 동안거에 용맹정진을 시작하면 빠르게 기가 쇠하고 경우에 따라 잇몸이 내려앉는 스님도 나온다. 이럴 때 보양식의 일환으로 준비하던 것이다. 감자, 당근, 우엉, 연근, 토란, 무를 차례로 넣으며 들기름에 오래 볶다가 채수를 붓고 들깻가루를 넣어 완성한다. 방법은 간단한데, 뿌리채소가 눌어붙거나 타지 않도록 채수를 조금씩 부어가며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볶아 만든다. 뿌리채소가 완전히 뭉그러질 때까지 볶아야 해서 예전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나절을 가마솥 옆에 붙어있어야 했단다.
그 맛이 궁금했다. 마침내 육근탕이 완성되고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서 슬쩍 맛을 봤다. 들깻가루와 뿌리채소의 전분으로 걸쭉해진 국물은 고소한 맛이 강하다. 오래 볶아 만든 만큼 들깨의 고소함을 밀어내며 깊은 감칠맛이 뒤따라 올라온다. 정성이 진하게 느껴진다. 음식을 함께 만든 일행에게서 연이어 감탄이 나왔다.
절구로 빻아서 내린 커피의 향기
식사를 마치고 다상 앞에 앉았다. 이번에는 공곡 스님이 중심이다. 스님은 음식에도 일가견이 있지만, 차를 무척 좋아하신다. 스님이 커피를 꺼냈다. 뭇 중생의 눈에 스님이 커피를 내리는 풍경은 일견 낯설다. 스님이라면 나긋한 향기의 녹차를 즐기는 모습을 떠올리게 되는데,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 스님이라니 편견이라는 걸 알면서도 낯설다. 헌데 이 스님이 드립을 준비하는 과정에 눈이 왕방울처럼 커졌다. 스님은 꽤 부피 있는 절구에 원두를 한 가득 담고 묵직한 쇠공이로 빻기 시작했다. 쿵 쿵 쿵 쿵. 스님의 손목이 대단히 부드럽고 빠르게 움직였다. 그 많은 원두가 순식간에 보기 좋게 빻아진다.
스님은 그 많은 커피를 한 번에 담고 뜨거운 물을 부어 드립을 시작했다. 속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커피 너무 써서 사람이 마실 수 있을까?’ 그러나 기우였다. 짙은 커피 향기로 방안을 가득 채우며 스님이 잔을 건넸다. 에스프레소도 곧잘 마시는 편이니 맛이나 보자는 심산으로 한 모금 머금었는데, 이탈리안 에스프레소를 다시는 쳐다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게 될 만큼 압도돼 버렸다. 쌉쌀한 맛이 짙게 밀려와서 구수하게 여운을 남긴다. 분쇄기로 간 원두와 절구로 빻은 원두의 차이인 걸까. 비결을 명확하게 찾을 수는 없었지만, 깜짝 놀랄 만큼 커피 맛이 좋았다. 내리는 사람의 손맛도 무시하기는 어려울 테다.
스님은 이외에도 매화차, 발효유자차를 선보였다. 봄날 봉오리가 피어나기 전에 따서 잘 말려둔 매화차는 뜨거운 물에 한 웅큼을 집어서 넣자 하얀 꽃잎을 천천히 열면서 사방으로 매화향을 뿜어냈다. 봄날 안동 병산서원에서 맡았던 매화의 향기가 초겨울의 방안을 가득 메우는 신비한 경험이다. 따뜻한 물에 녹아든 매화꽃은 입안으로 들어와 맑고 깨끗한 향기를 남긴다. 설탕에 재워서 청으로 담근 것이 아니라 잘 잘라서 말리고 발효시킨 발효유자차는 또 어떤가. 유자청에서는 경험하지 못한 강렬한 시트러스향에 머리가 상쾌해지는 기분이다. 한 모금 머금었을 뿐인데 우뚝 솟아오르는 듯 입안을 휘감은 유자향은 경쾌한 피니시를 길게 이어갔다. 30분이 훌쩍 넘어도 좀처럼 그 향이 떠나지 않는다.
두 스님은 일행이 탄성을 내지르며 차를 마실 때마다 빙긋 미소로 화답한다. 자연에서 얻은 그대로의 맛이 얼마나 경이로운지를 깨닫는 시간. 우린 그 맛을 너무 많이 잊고 사는 건 아닐까. 문경 윤필암에서 적잖은 깨달음을 얻어 돌아간다.
몇 년 사이 한국인의 생활 깊숙하게 자리한 커피. 커피는 몸에 좋은 여러 효능을 가졌다. 커피를 마시면 혈관의 탄력성이 좋아져 심장병을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하루 네 잔 이상은 도리어 혈관의 탄력성을 해쳐 심장병과 뇌졸중의 원인이 될 수도 있으니 하루 한두 잔 정도가 적당하다. 커피 속의 퓨란(furan)이라는 물질은 구취를 제거하는 효과가 있다. 마늘이나 양파 같은 냄새가 강한 음식을 섭취한 이후에는 커피를 권할 만하다. 또한 카페인(caffeine)이 함유돼 있어 기초 대사율을 높이고 지방을 산화시켜서 체중 감소에 도움을 주며 당뇨병 예방에도 일정한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커피의 성분 중 하나인 클로로겐산(Chlorogenic acid)은 폴리페놀(polyphenol) 화합물의 일종으로 항산화 작용을 해 탄력 있고 매끄러운 피부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