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의성 여행을 준비하면서 낯선 이름을 발견했다. ‘조문국’. 처음에는 사람 이름인 줄 알았다. 의성 문턱을 넘자마자 곳곳에서 다시 그 이름을 마주한다.
조문국을 아시나요
의성에서 마주하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이었다. 조문국이라는, 좀처럼 감을 잡을 수 없었던 그 이름의 정체는 나라 이름이었다. 우리의 역사에서 사라진 미지의 국가. 간략하게 찾아본 결과로는 삼한 시대에 존재했다고 전해진다. 기원전과 후를 나누는 즈음에 실존했던 나라였다. 한국사에서 사라진 퍼즐 한 조각이 의성에 있는 셈이다. 그 이름이 지워진 건 신라에 의해서였다. 기원후 185년경 신라에 복속됐다. <삼국사기> 신라 벌휴왕 이사금 2년의 짤막한 서술이 남긴 그 국가의 흔적이 그렇게 말한다. 그해 2월에 신라가 조문국을 쳤다는 내용이다. 그 뒤에도 조문국이라는 이름은 간간이 기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려사>나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그 나라가 실존했음을 전하는 또 다른 기록이다.
먹고 마시고 힐링이나 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여행도 좋지만, 또 다른 여행의 묘미는 길 위에서 생각지 못한 순간에 문득 찾아온다. 여행이란 어쩌면 나의 일상을 떠나 새로운 세계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행위다. 그 세계의 일상에도 지나간 시간이라는 게 있다. 그 흔적은 이방인의 눈을 대번에 사로잡는다. 낯선 것의 물성이 그렇다. 솔직히 말해 ‘조문국’이라는 이름으로 의성에 남은 흔적은 사실 거의 없다. 신라에 복속되어 버린 후손이 남긴 게 대부분인데, 그중에서도 고분군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의성조문국사적지’라는 이름으로 의성 금성산 산마루에는 크고 작은 고분군이 남았다. 널찍한 들판에 야트막한 경사를 따라 점점이 앉은 고분은 얼핏 보아 십수 기에 달한다. 하지만, 이 고분군 뒤로 금성산 산마루를 향해 숱하게 앉아 있는 것까지 치면 무려 374기의 고분이 있다. 엄청난 숫자다. 고분하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경주 ‘대릉원’에도 이만한 숫자의 고분은 남아 있지 않다. 물론 여행길에 온전히 볼 수 있는 건 잘 단장해 놓은 십수 기뿐이다. 조문국 사적지라 이름 붙인 이 고분군은 정갈하고 아름답다. 너른 들판과 군데군데 봉긋하게 솟아난 고분은 한 폭의 그림이다. 이곳을 다녀간 여행자들은 이곳을 일러 “윈도우즈 바탕화면”이라고 평을 남겼다. 어떤 느낌으로 이곳을 둘러봤는지 단번에 와닿는 평가다.
남다른 권위를 누린 조문국의 후예
조문국이라는,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린 국가의 이름을 달아놨지만 실상 이 고분군은 신라의 것이다. 발굴한 결과로 미루어 4~6세기 무렵 조성한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이 지역은 신라의 땅이었다. 그럼에도 조문국의 이름을 거론하는 데 거리낌이 없는 건 같은 신라의 고분이지만 이 지역의 고분에서 쏟아진 유물이 남달랐기 때문이다. 우선 경주 이외의 지역에서는 이처럼 정교하고 수준 높은 유물이 대거 발견된 적이 없다. 상당히 드문 케이스다.
대표적인 예가 탑리리 고분에서 나온 금동관이다. 신라의 금관을 닮았지만, 금속을 얇게 자르고 비틀어 꼬아서 마치 큰 깃털처럼 장식해 놓았다. 이는 고구려 무용총과 쌍영총 벽화에서 볼 수 있는 형식이다. 멀리는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까지 소급해서 비교해 볼 만한 것이기도 하다. 토기도 물레로 빚는 경주의 것과 달리 점토 접합으로 빚는다. 형태나 종류, 모두 의성의 것은 독특한 그만의 개성이 있다.
의성은 예로부터 경북 지역 안에서도 가장 중요한 요충지였다. 신라의 수도인 서라벌에서 안동, 영주로 올라가거나 문경을 거쳐 단양으로 넘어가 한강 유역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의성을 거쳐야만 했다. 이곳에서 나온 유물이 남다른 건 이 지역을 지배하는 지배계층의 권위가 남달랐기 때문이리라. 관련 학자들이 쓰고 토론한 기록으로 살펴볼 때, 이곳에 이토록 많은 고분이 남아 있고 수준 높은 부장품이 묻혀 있었던 이유는 그런 배경 때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조문국 사적지라 이름한 ‘금성산 고분군’ 근처에는 많은 고분에서 발굴한 유물을 모아둔 ‘의성조문국박물관’이 있다. 2013년 4월에 문을 열었는데 시설도 깔끔하고 구성도 좋다. 의성의 유물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경주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겠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은 깜짝 놀랄 만큼 의성만의 무엇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어린이를 위한 고고학 발굴체험 공간이 별도로 조성돼 있는 것도 큰 강점. 커플을 위한 여행으로도 좋지만, 아이가 있는 가족에게 의성은 더없이 좋은 여행지이다. 그곳에서 전설처럼 남은 옛 국가의 흔적을 살피며 승자의 역사에 파묻혀버린 그들의 삶을, 그들의 문화를 그려본다.
의성의 명물, 전통시장의 닭발 골목
의성을 여행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의성전통시장’이다. 수백 년 전 영화를 누렸던 시절과 달리 지금의 의성은 소박한 인심이 살아 있는 고장이 되었다. 그 푸근함을 십분 만끽할 수 있는 곳은 역시 시장. 그 안에서도 입소문을 타고 의성전통시장의 명물로 알려진 것이 닭발 골목이다. 길게 이어진 시장 복판을 걷다 보면 닭발 굽는 냄새가 콧속으로 스멀스멀 스며든다. 냄새를 따라가다 보면 닭발 골목을 찾아 들어가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닭발 골목 안쪽은 평범한 식당 골목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골목 밖으로 나가면 진풍경이 펼쳐진다. 연탄불 화로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닭발. 한쪽에는 커다란 스테인리스 쟁반 두 개에 미리 초벌을 해둔 닭발이 놓여 있고, 나이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끊임없이 석쇠를 바꿔가며 닭발을 굽는다.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곁에 서 있기만 해도 군침이 넘어가는 풍경이다. 지나가던 사람들도 발길을 멈추고 이 희귀한 모습을 구경하고 섰다. 잠시 구경하다 보면 결국은 식당 한 군데로 들어가 자리를 잡기 마련이다.
이곳의 닭발은 두 번 굽는 게 특징이다. 초벌로 구워서 속까지 양념이 스며들도록 하고, 주문을 받은 직후에 다시 구워 완성한다. 연탄불 위에 직화로 구워낸 닭발은 콜라겐 성분이 열에 녹아 부드럽게 변모한다. 양념 위에 불의 향이 덧입혀져 쉽게 질리지 않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다. 주문부터 손님상에 올라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10여 분 남짓. 그 사이에도 닭발 굽는 냄새에 뱃속에서는 빨리 내놓으라며 연신 아우성이다. 한국인의 빨리빨리 습성은 뱃속에서 유독 독하게 드러난다.
닭발이 너무 맵지는 않을까 싶어 잔치국수를 함께 시켰다. 멸치 국물에 말아낸 국수 역시 감칠맛이 뛰어나다. 기다리던 닭발을 한 점 물었다. 생각보다 맵지 않다. 잠시 톡 쏘고 사라지는 매운맛 뒤로 고소함이 슬며시 밀려와 겅중겅중 뛰어다닌다. 쫄깃한 식감도 일품. 캡사이신을 쓰지 않았음을 단박에 알 수 있는 맛이다. 국물에 졸이듯이 만드는 닭발에서는 느낄 수 없는 감칠맛도 살아 있다. 닭발 골목 안의 식당마다 손님이 한가득이다. 닭발 굽는 냄새로 저리 유혹하는데 배길 사람이 있기는 할까. 운 좋으면 시장에 장 보러 나온 컬링 국가대표 선수들도 만날 수 있다. 의성에서만 느낄 수 있는 소소한 재미다.
닭발은 아연이 많아 혈당조절에 도움을 주고 당뇨와 정력 강화, 면역 기능 향상에 효과가 있다. 키틴(chitin), 키토산(chitosan) 성분은 혈액 응고를 촉진해 지혈 기능에 좋고, DHA(docosa hexaenoic acid), EPA(eicosapentaenoic acid) 성분은 어린이의 두뇌 계발과 성장 발육을 촉진한다. 무엇보다 닭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건 피부나 관절을 구성하는 콜라겐(collagen)과 콘드로이틴(chondroitin) 성분이다. 신경통과 관절염에도 좋지만 피부 미용에 관심이 많다면 가까이 둘 필요가 있는 음식이다.
© 정태겸 기자의 길 위에서 찾은 밥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