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JW 03-main.jpg



한의사로 그리고 한의과대학 교수로 지내면서 출장을 가거나 학회에 참석하고 하루나 이틀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할까? 실제 환자에게도 “당신에게 하루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한다. 하루하루가 귀한 시간인데, 더군다나 바쁨이 일상인 우리에게 주어진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이번에 나에게 주어진 이틀의 장소는 시카고다. 한의학 세계화 사업 중 교육 사업의 일환으로 10월 6~7일 동의보감 아카데미에서 현지 한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한국 한의학으로의 정신건강’이란 강의를 하게 되었다. 금요일 진료를 마치고 저녁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시작하여 현지에서 토/일 각 8시간씩 총 16시간의 강의 후 월요일 하루, 그리고 화요일 밤 비행기 전까지 이틀의 휴식이 주어진 일정이다. 이틀의 강행군 강의에 이은 꿀맛 같은 시간이 주어진 것이다.


KJW 03-06.jpg


number-01.jpg  첫 번째 원칙 : 하이라이트를 공략한다.


일요일 강의를 끝마친 시간은 저녁 6시가 되어서였다. 이때 지쳐 버리면 여행을 할 수 없다. 이 시간에 무엇을 할지 고민된다면 그곳의 하이라이트를 찾아야 한다. 그렇게 찾은 곳이 ‘시카고 아키텍처 리버 크루즈 (Chicago Architecture River Cruise)’였다. 시카고는 건축의 도시다. 1871년 시카고 대화재 이후 재건되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건축물들이 시카고 강을 끼고 다운타운을 꽉 채우고 있다. 1시간 반을 가는 동안 건축을 예술로 만나게 된다. 2층 갑판에 앉아 맥주 한잔과 함께하면 이틀간 강의의 피로는 사라지고 여행에 대한 기운을 일깨워준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면서 트럼프 타워 (Trump Tower)를 보게 되면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KJW 03-01.jpg


number-02.jpg  두 번째 원칙 : 현지인들이 쉬는 것처럼 쉰다.


월요일 아침, 지쳐버린 몸을 이끌고 간 곳은 시카고 교외에 위치한 시카고 보타닉 가든 (Chicago Botanic Garden)이다. 385에이커 부지에 26개의 테마 정원이 조성된 이곳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고 있으며 특히 영국과 일본 정원이 돋보인다. 방문자 센터에서 맞이하는 아메리칸 브렉퍼스트는 진한 커피와 함께 몸과 마음을 각성시키고 이어지는 2시간의 산책은 일상적인 자신의 리듬으로 돌아오게 하는 치유의 힘을 가져다준다. 바로 현지인으로 다시 탄생한 것이다.


number-03.jpg  세 번째 원칙 : 현지인과의 만남을 즐긴다.


이어지는 일정은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시카고에는 초등학교 동창이 여럿 있다. 그래서 그들이 살아가는 마을과 식당, 대학 캠퍼스 같은 곳을 찾아가 보았다. 시카고 교외에는 빌리 그래함  (Billy Graham) 목사의 모교인 휘튼 대학교 (Wheaton College)와 박물관인 빌리 그래함 센터 (Billy Graham Center)가 있는데 캠퍼스를 거닐면서 영적 메시지를 얻을 수 있다. 여행의 본질은 자신의 일상적인 삶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체험해 보는 것인데, 관광객에게 보이는 모습이 아닌 현지인의 삶에 들어가 보는 것은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이자 핵심 가치라고 할 수 있다.


KJW 03-02.jpg


number-04.jpg  네 번째 원칙 : 밤 역시 또 하나의 시간이다.


한국 생활에서 가장 활력이 있는 시간이 밤이라면, 이것은 외국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이른바 밤 문화는 그 나라의 또 다른 매력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미국이라면 조금 부담스럽기는 하다. 특히 미국의 대도시 시카고라면 마음껏 돌아다니기에는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래서 선택한 곳은 가장 높은 곳에서 도시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존 핸콕 타워 전망대 (John Hancock Tower 360 Chicago Observation Deck)였다. 전 층이 전망대이기 때문에 시카고의 동서남북 모두를 눈에 담을 수 있다. 역시 높은 곳에서 밑을 내려다보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본성인 것 같다. 이른바 조감도, 새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다.


number-05.jpg  다섯 번째 원칙 : 새벽 시간이 소중하다.


새벽은 그 지역을 가장 원초적으로 만나게 해준다. 시카고의 동쪽은 미시간 호수 (Lake Michigan)와 닿아있다. 미시간 호수는 남한 면적의 3분의 2에 해당하기 때문에 호수라기보다는 바다에 가깝다. 따라서 수평선이 있고 일출을 볼 수도 있다. 이제 완전히 현지인의 리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새벽을 즐기는 것이 어렵지 않다. 네이비 피어 (Navy Pier)는 일출의 명소다. 새벽의 이곳은 조깅하는 사람들, 즉 가장 활기가 넘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할 수 있고 또 그 태양의 줄기를 받아 반짝이는 도심 빌딩의 빛남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다. 새벽은 이렇게 에너지를 느끼며 몸에 쌓일 수 있게 해 준다.


KJW 03-03.jpg


number-06.jpg  여섯 번째 원칙 : 그래도 여행에는 맛집이 필요하다.


여행을 다니는 어느 곳에서나 인상 깊게 남는 것이 있다. 바로 그곳의 맛이다. 맛으로 시카고를 떠올리면 시카고 피자와 스테이크다. 시카고는 미국 중부에서 광활한 초원과 호수가 만나는 곳으로 육류 가공업이 발달하여 당연히 최고의 스테이크를 즐길 수 있다. 또 뉴욕의 피자와 달리 속이 깊은 접시에 담기는 두꺼운 딥 디쉬 피자 (Deep Dish Pizza)가 있다. 맛집을 검색하여 찾아가 보기도 하였지만, 현지에 와서 먹는 것인데 어디인들 맛있지 않을까? 스테이크나 피자 말고도 브런치로 즐기는 에그 베네딕트, 심지어 해산물까지 맛이 넘친다. 맛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일차적 욕구이자 욕망이다. 이런 원초적 기쁨은 멀리 타향에서 더 강력하게 확인할 수 있다.


KJW 03-04.jpg


돌아오는 비행기는 밤 비행기였다. 밤 11시 시카고를 출발하여 서울에 새벽에 도착하는 13시간 동안의 비행이다. 비행기를 타자마자 안대를 부탁하고 바로 잠이 들었다. 식사를 거르고 오로지 잠만 잤다. 비행기에서 내리려는데 스튜어디스가 “배고프지 않으세요?”하고 안쓰러움을 표해 준다. 그러나 이렇게 시차를 극복하고 다시 바로 아침 진료를 시작으로 일상으로 돌아온다. 단지 이틀만 주어진 바쁜 생활 속에서의 선택이다.


KJW 03-05.jpg


혹여 어떤 분들은 왜 그렇게 빡빡하게 여정을 잡았는지 의아해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에서도 여행이나 걷기라는 것을 통해 휴식을 찾는 이들에게 이틀이라는 시간은 무척이나 짧지만 소중하다. 특히 가보지 않았던 곳이라면, 혹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면...



© 김종우 교수의 걷기. 여행.. 치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