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무가내로 우는 아이
순한 아이들은 키우기가 쉬운 반면에 고집 세고 툭하면 짜증과 화를 내는 아이들은 참 키우기가 어렵다. 조금만 화가 나도 울고불고 난리를 치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등의 막무가내 식 행동을 하면 달래야 할지 야단을 쳐야 할지 엄마로서는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어진다.
필자의 큰 아들도 참 고집이 세고 화를 잘 내는 아이였다. 갓난아이 때부터 벌써 울음이 많고 짜증이 심했다. 배가 고플 때가 되면 슬슬 울기 시작하는데 혹시라도 분유를 늦게 대령하면 온 집안이 떠나가도록 울어 젖히기 일쑤였다. 분유가 아직 뜨거워 잠시 식히는 동안도 기다리기 힘들었는지 천정이 무너질 정도로 울어댔다. 그러다가 분유통을 입에 딱 물리는 순간 아이의 울음은 뚝 그쳤다. 내 아들의 성격이 꽤나 다혈질이겠다는 것을 그때 예감할 수 있었다.
한 번은 유치원 시절에 아이를 데리고 가족 동반 모임에 나간 적이 있었다. 편한 친구들끼리의 모임이 아니라 선배와 은사님이 함께 하는 모임이어서 조심스럽고 어려운 자리였다. 그날따라 아이의 기분이 좋지 않아서 외출하기 싫은 눈치였는데 집에 아이를 혼자 둘 수는 없었기에 겨우 달래서 데리고 나왔다. 아니나 다를까 레스토랑에 도착하자마자 저가 오기 싫은 곳에 억지로 데리고 왔다면서 바닥에 대자로 드러누워서 엉엉 울기 시작했다. 정말 얼굴이 화끈거리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 어려운 모임에서 내 아이가 천장이 무너지도록 울고 있으니, 이 상황을 어찌 해야 할 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분노는 건강의 가장 큰 적
성인들도 화가 나고 짜증이 나는 일이 잦으면 건강에 좋지 않은데, 자라는 아이들의 경우에도 자꾸 짜증을 내는 것이 반복되면 아이의 정서에 좋지 않을까봐 엄마로서 걱정이 된다. 실은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 중에서 분노가 가장 해로운 감정이다. 왜냐하면 분노란 화산 폭발과도 같기 때문이다. 한번 화산이 폭발해 버리고 나면 주위의 도시는 일순간에 초토화되어 버린다. 재건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한번 화를 낼 때마다 사람의 몸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기게 된다.
동의보감에서도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특히 당부해 두었다. 그래서 “일곱 가지 감정이 모두 사람을 상하게 하는데 그 중 분노가 제일 심하다.”고 하였다. 기뻐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는 등의 여러 감정 중에서 화를 내는 것이 가장 사람의 몸을 상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화를 많이 내면 온갖 맥이 고르지 못하게 된다.”고 하였다. 마치 지진이 나면 고요히 흐르던 강물이 갑자기 치솟아 오르고 거꾸로 흘러버리는 것처럼, 분노가 한 번 일어나면 고요히 흐르던 경맥이 끓어오르고 격동하게 된다는 것이다.
분노라는 감정이 폭발하고 나면 건강을 해칠 수 있기에 동의보감에서는 화를 낸 후에 먹는 처방을 적어놓았다. 약의 이름은 치노방(治怒方)인데 ‘분노를 다스리는 처방’이라는 뜻이다. 향부자와 감초라는 약재를 가루 내어 잘 섞은 후 뜨거운 물에 타 먹는다. 얼마나 분노가 몸에 좋지 않았으면 분노를 다스리는 처방까지 따로 적어 놓았을까?
분노를 잘 다스리면 변화의 원동력이 된다
화를 잘 내는 성격의 아이를 둔 엄마라면 걱정이 안 될 수가 없다. 그런데 화를 잘 내는 성격이 나쁘기만 한 성격일까? 그렇지는 않다. 아이의 성격을 잘만 다스려 준다면 ‘변화의 원동력’을 품은 사람으로 자랄 수도 있다. 왜냐하면 분노라는 것 없이는 변화라는 것이 일어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 분노가 자신을 향한 개인적인 분노라면 그것이 나태한 자신을 변화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다. 만약 그것이 사회적인 분노라면 혁명이 되어서 썩은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 물론 그것이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이기적인 분노라면 매우 소모적인 감정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런 이기적인 분노가 아니라 더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분노라면 변화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이 아직은 미숙하다. 걸핏하면 화를 잘 내고 떼를 쓸 수 있다. 하지만 잘 다스려지기만 하면 긍정적인 분노, 생산적인 분노, 변화를 일으키는 분노로 다듬어질 수 있다.
약재 중에서도 이렇게 긍정적이고 생산적이며 변화를 일으키는 분노를 뿜어내는 것이 있다. 바로 대황(大黃)이란 약재인데 여뀟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의 뿌리로, 동의보감에서는 “활활 타는 열기를 쓸어버리고 오래된 것을 밀어내어서 새로운 것이 도달하도록 해주는 것이 마치 재앙과 혼란을 평정하고 안정시켜서 태평성대가 도달하도록 하는 것과도 같아서 ‘장군풀’이라는 별명이 있다.”고 하였다. 이는 마치 부패한 세상에 혁명을 일으켜 난세를 태평성대로 바꾸는 장군과도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분노가 나쁜 감정이기만 하겠는가? 대황이 숯불의 열기 속에서 구워지는 법제를 거치면 사람을 해치는 약이 아니라 사람을 고치는 약이 되듯이, 걸핏하면 화를 잘 내는 성품의 아이도 분노를 뿜어내는 방식을 잘 익힌다면 부패하고 어지러운 세상을 바꾸는 장군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화를 잘 내는 성격이 꼭 나쁘기만 한 것은 절대 아니다.
측은지심으로 법제하라
그렇다면 화를 잘 내는 아이들은 어떻게 다듬어주면서 키워야 할까? 툭하면 화를 잘 내는 경우에 동의보감에서는 이런 해법을 제시하였다. “슬픔은 분노를 이긴다.(悲勝怒)” 여기서 슬픔의 한자는 슬플 비(悲) 자이다. 하지만 아이를 때리거나 야단쳐서 슬프게 하라는 말이 절대 아니다. 이 슬픔이란 자비(慈悲)를 말한다. 상대의 아픔을 가엾이 여기고 안타깝게 여기며 함께 슬퍼하는 마음을 말한다. 아이가 어떤 대상에 대해 측은히 여기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풀이를 다시 하자면 “측은지심은 분노를 이긴다.”가 되겠다.
그 측은지심이란 이런 것이다. 예를 들어 강아지를 키우는데 아이가 무척이나 이 강아지를 아끼는 모습이 보인다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다. “강아지가 아직 오줌을 제대로 못 가리네. 이럴 때 짜증난다고 강아지에게 막 화를 내면 어떻게 될까? 비록 말은 못 하지만 강아지의 마음이 무척 아프겠지?” 이런 대화를 통해서 화를 내면 당하는 사람의 마음이 무척 아프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특히 아이가 아끼는 대상을 예로 들며 설명해주면 더 쉽게 이해할 것이다. 동화 속의 얘기를 예로 들어도 좋다. “용이 입으로 엄청 뜨거운 불을 뿜어버렸네. 그런데 만약에 용이 토끼에게 불을 뿜는다면 그 토끼는 어떻게 될까? 엄청 따갑고 아프지 않을까? 우리 아들이 입으로 나쁜 말을 하면서 화를 내는 것도 용이 불을 뿜는 거랑 똑같아. 화를 당하는 사람도 토끼처럼 엄청 따갑고 아플 거야.” 이렇게 눈에 보이는 어떤 것(용이 뿜는 불)에 눈에 보이지 않는 분노의 말을 대입시켜 설명해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혹은 막무가내로 떼를 쓰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진 동화책이 있다면 읽어주어도 좋다.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켜 볼 수 있다. 혹은 적당한 멜로디에 “화내면 아파요. 울면 아파요.” 대략 이런 가사로 개사하여 아이와 함께 부르면서 놀아도 좋다. 머리에 쏙쏙 들어가게 하기에 노래만큼 좋은 것이 없다. 어떤 형태이든 아이가 측은지심의 마음을 쌓아가도록 만들어 준다면 좀 더 생산적인 형태로 분노가 다스려질 수 있을 것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