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된장의 비밀


조선 시대 성종 12년 5월 경기도 및 삼남 지방에서 혹독한 기근이 발생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끼니를 잇지 못하고 굶주려 죽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이에 임금은 즉시 명을 내려 굶주림에 대처하는 방법인 구황법을 따르도록 하였다. 그 구황법의 첫 번째 항목이 바로 이것이었다.


“소금과 된장이 구황에 가장 요긴하다.”


많은 것들 중에서 된장과 소금이 인간이 오랫동안 굶주린 상황에서 죽지 않고 생명을 유지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된다고 한 것이다. 왜 그럴까? 일단 소금에는 미네랄이 함유되어 있으므로 기아 상황에서도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성종 임금께서 말한 이 소금은 반드시 천연 소금이라야 한다. 꽃소금이나 맛소금과 같은 인공 소금으로는 절대로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될 수 없다.


된장을 기아 상황에서 생명 유지용으로 사용한 것은 된장이 발효식품이었기 때문이다. 콩을 발효시켜 만든 된장은 그 속에 엄청난 수의 장내 유익균이 살아있다. 사람의 장 속에서는 유익균이 항상 거주하면서 음식의 분해와 소화 흡수를 도와준다. 만약 장 속의 이 유익균이 줄어든다면 장의 기능도 붕괴되어버린다. 기아라고 하는 극한의 조건 속에서 된장을 먹으라고 한 것은 된장이 품고 있는 여러 유익균들을 제공하라는 뜻이다. 비록 장기간 밥은 먹지 못하더라도 된장을 먹으면 그 된장 속의 무수한 유익균이 장을 계속 살려주고 있을 거라는 뜻이다. 된장의 여러 효능 중에서는 “오장을 편안하게 해준다.”는 효과도 있으니 말이다.


김치의 비밀


중국 금나라 말기에 있었던 일이다. 학경이라는 사람이 하남 땅에서 살던 중 그만 전란이 생기고 말았다. 부모님을 모시고 급히 어느 움막에 숨어들었는데 그만 병사들이 불을 질러 움막을 태워버린 것이다. 학경의 어머니가 연기에 질식해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이 되자 어린 학경이 김치 국물을 가져와 어머니의 입에 부어 넣었고 놀랍게도 다 죽어가던 어머니가 정신을 차리게 된 것이다. 이를 본 주위 사람들이 어린 아들의 기지에 모두 놀라워했다고 한다.


김치 국물이 과연 화재로 인한 질식사의 위험에 처한 사람을 구해줄 수 있는 것일까? 의서에 이와 비슷한 얘기가 있기는 하다. 화재의 연기로 인해 숨을 쉬지 못하고 죽으려 할 때는 무의 즙을 입에 넣어주라는 응급처치법이 있다. 그렇다면 김치 국물이나 무즙이 화재로 인한 질식사에 효과가 있긴 있는 모양이다. 전해 내려오는 요법 중에서는 연탄가스에 질식했을 때 동치미 국물을 마시라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동의보감에서도 김치 국물의 효능에 대해 말하고 있다. 김치 국물은 숭채제(菘菜虀)라고 부르며 “약으로 쓰기도 하는데 담연이라고 부르는 소화기나 기관지의 더러운 점액을 토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 소화기의 기운을 보강해주고 술과 밀가루의 독을 풀어준다.”고 한다.


가만히 보니 된장도 굶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지 않도록 살려주고, 김치도 호흡기 손상으로 다 죽어가는 사람이 죽지 않도록 살려주는 작용을 한다. 이렇게 놀라운 효능을 가진 김치에서 현대인들은 또 다른 효용을 찾아내었다. 얼마 전 사스(SARS)가 전 세계에 유행했을 때 한국인이 비교적 사스에 덜 감염된 이유가 바로 김치 덕분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이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다. 아토피의 치료에도 김치가 효과가 있더라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김치 속의 유산균이 아토피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고 한다. 김치 속에 살고 있는 유산균을 추출하여서 아토피를 앓고 있는 아이에게 투여했더니 아토피가 어느 정도 호전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밀가루의 독을 풀어주는 김치 국물의 효능이 과자나 인스턴트 음식을 자주 먹은 요즘 아이들에게도 적용되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의 전통 음식이 음식도 되지만 응급 질환이나 난치병에 약도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장뇌력(腸腦力)


요즘 장뇌력이라는 용어가 일본에서 유행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의 몸에는 두 개의 뇌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머릿속의 그 뇌이고, 또 하나는 장 속에 있는 뇌라고 한다. 그래서 두뇌(頭腦)와 장뇌(腸腦)는 서로 간에 영향을 주고받는다는 것이다. 또한 사람이 먹는 음식에 의해 장내 환경이 많이 좌우되므로 신체가 변화하는 힘은 결국 장(腸)에 달려있고, 두뇌의 변화도 결국 장(腸)에 달려있다는 것이 바로 장뇌력(腸腦力)이라는 단어가 전하는 바이다.


이와 유사한 내용의 다른 연구도 있다. 미국의 신경생리학자인 마이클 거슨의 연구에 의하면 사람에게 사랑과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은 두뇌에서는 별로 만들어지지 않고 오히려 장에서 95%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장을 ‘제2의 뇌(the second brain)’라고 부르기까지 했다.


이만하면 한 사람의 장의 상태가 그 사람의 몸을 결정짓고 성격을 결정짓고 두뇌를 결정짓는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그 사람의 장의 상태를 결정짓는 것은 그가 매일같이 먹는 음식이다. 그러니 어떤 음식을 먹느냐에 따라서 몸과 성격과 두뇌가 달라지는 것이다. 더러운 음식을 먹으면 몸도 성격도 두뇌도 더러워진다. 깨끗한 음식을 먹으면 몸도 성격도 두뇌도 깨끗해진다. “더러운 기운을 가까이하면 진기(眞氣)가 상하고, 죽은 기운을 가까이하면 생기(生氣)를 혼탁하게 한다.”


아이의 성장이란 뼈가 자라고 키가 크는 것이기도 하지만 오장육부가 성장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장육부가 모두 다 중요하지만 후천지기(後天之氣)에 해당하는 소화기가 가장 근본이 된다. 태어날 때 이미 타고난 오장육부의 상태는 선천지기(先天之氣)라고 부르며 이는 바꿀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생활습관 혹은 식습관에 의해 부족한 선천지기를 보충할 수도 있다. 이렇게 후천적인 습관에 의해 보충되는 기운을 후천지기라고 부르는데 오장육부 중에서는 특히 음식을 매일같이 받아들이는 소화기가 후천지기에 해당한다. 음식이 깨끗하면 후천지기가 깨끗해진다. 음식이 더러우면 후천지기도 더러워진다. 한창 소화기가 성장하고 있는 우리 아이들에게 특히 중요한 것이 이 후천지기를 좋은 음식으로 채워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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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유산은 바로 할머니 입맛


나의 친정엄마는 마흔이 넘은 나이에 나를 낳으셨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다 보니 심란하기 그지없었다고 한다. 죽기 전에 저거 대학 가는 거는 볼 수나 있을까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 입학뿐만 아니라 졸업하는 것도 보시고 시집가는 것도 보시고 아들 둘 낳는 것도 보시고 그 손자들이 입학하는 것까지 줄줄이 보셨다. 심지어는 아이들 방학 때만 되면 멀리 부산에서 온갖 반찬거리를 바리바리 싸가지고 올라오신다. 올라오면 온 집안을 구석구석 청소해주고 가신다. 그 힘의 원천은 아마도 된장찌개와 김치가 아닐까 싶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와 살게 된 후로 가끔 부산 집에 내려갈 때가 있었다. 딸들을 보내고 두 분만 살면서 반찬은 간소해졌다. 항상 된장찌개와 김치 위주로 해서 제철 나물 한두 개를 곁들여 드셨다. 저거 드시고 노인이 무슨 힘이 나려나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화려한 서울 음식에 이미 맛이 들어버린 나의 혀에는 그 된장찌개와 김치가 투박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데 나의 친정 부모님은 정말 건강하시다. 팔순이 넘은 지금까지 그 어떤 성인병도 앓아본 적이 없다. 감기나 교통사고 외에는 병원 문을 넘어본 적이 거의 없다. 그 힘은 바로 전 세계가 놀라고 인정한 된장과 김치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싶다.


돈 많은 부모들은 온갖 진귀한 산해진미를 아이에게 먹이고 값비싼 영양제들도 줄줄이 구비해서 먹일 것이다. 그런 것보다는 오히려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은 바로 ‘할머니 입맛’이 아닐까 싶다. 구수한 된장찌개를 잘 먹고 매운 김치도 잘 집어 먹고 제철 나물도 잘 씹어 먹는 할머니 식성을 아이에게 형성시켜준다면 가장 중요한 건강의 기반을 만들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나의 조부모님께서는 나의 부모님에게 최고의 유산을 물려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의 부모님이 늘 된장찌개와 김치를 즐겨 드셨기에 팔순이 넘은 나이에도 건강할 수 있었고, 덕분에 늦게 낳은 자식이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는 것을 모두 볼 수 있도록 해주신 것이니 말이다.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게 하는 입맛을 가지게 해주는 것, 그것이 부모가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본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