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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큰 아들, 큰 작은 아들


대한민국 엄마들이라면 자식들의 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러하다. 아이들이 태어난 후부터 키와 체중을 계속 체크하면서 몇 퍼센트에 속하는지 확인해왔다. 작은 녀석은 키의 발달이 남달랐다. 키가 상위 10%에 속했다. 유치원에 입학한 후 같은 반 아이들과 찍은 사진을 보니 마치 ‘도-레-도-레-솔-도-레’라고 적힌 음표를 보는 것 같았다. 고만고만한 아이들 중에서 혼자 ‘솔’ 음표가 되어 우뚝 서 있었다. 남편이 워낙에 키가 커서인지 키와 관련된 유전자는 아빠 쪽을 닮은 것 같았다. 반면에 큰 녀석은 키가 딱 중간 50%에 속해 있었다. 또래 녀석들과 세워 놓으면 딱 중간이었다. 실은 나의 키가 평균치 정도 되는 키이다. 큰 녀석은 키 유전자를 나한테서 받았나 보다. 작은 아들은 쑥쑥 자라고 큰 아들은 찔찔 자라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두 녀석의 키 차이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작은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에 올라갈 무렵이 되자 그토록 우려하던 일이 마침내 일어나고 말았다. 두 아들의 키가 역전되어 버린 것이다. 작은 아들의 키가 큰 아들의 키를 추월해 버리고 말았다. 두 녀석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면 함께 탄 주민이 작은 아들을 보고서 “네가 형인가 보구나.”라고 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두 녀석이 달라도 너무 다르다


두 녀석은 같은 부모에게서 났지만 모든 면에서 다 달랐다. 먼저 수면 습관부터가 달랐다. 큰 녀석은 밤에 잠을 빨리 안 잤다. 제발 좀 일찍 자라고 사정을 해도 안 되고 혹시 보다가 잠들까 싶어서 만화 영화를 틀어주어도 별 소용이 없었다. 뭘 하든지 간에 첫째 녀석은 밤 열두 시는 되어야 겨우 잠이 들었다. 반면에 둘째 녀석은 그냥 내버려두면 알아서 잠이 쿨쿨 들어 있었다. 저녁 아홉 시만 되면 저가 알아서 방에 가서 눕더니 저가 알아서 잠들어 버리는 것이다. 잠자는 둘째 녀석 옆에서 큰 아들은 밤 열두 시가 될 때까지 놀았다.


식성도 무척 달랐다. 큰 녀석은 식성이 무척 까다로웠다. 제 입맛에 맞는 음식이라야 먹었다.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를 추구하는 녀석이었다. 반면에 작은 녀석은 식성이 아주 너그러웠다. 뭘 차려줘도 맛나게 먹었다. 내가 만들었지만 별로 맛이 없다 싶은 음식도 이 녀석은 참 맛나게 싹싹 긁어 먹었다. 세상의 모든 먹을거리를 사랑했고 먹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는 녀석이었다.


성격도 차이가 났다. 큰 아들은 밥 먹기 전에 손 씻고, 밥 먹는 중간에 또 손 씻고, 밥 먹고 나서 또 손을 씻었다. 물 먹기 위해 컵을 쓸 때에도 이미 깨끗하게 씻어놓은 컵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직접 다시 씻어야 했다. 작은 아들은 청결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컵은커녕 자신의 손발도 잘 안 씻었다. 제발 좀 씻으라고 잔소리를 해도 어지간해서는 씻지를 않았다.


활동량에 있어서도 차이를 보였다. 컴퓨터 한 대를 놓고 두 녀석이 공평하게 한 시간씩 번갈아 가면서 사용할 때가 있었다. 큰 녀석은 동생이 컴퓨터 할 차례가 되면 주로 조용히 책을 보거나 혹은 다른 장난감을 가지고 조용히 잘 놀았다. 한 시간이 지나 교대할 타임이 되면 큰 녀석이 컴퓨터 앞에 앉는다. 그러면 작은 녀석은 절대 조용히 혼자 놀지 않았다. 나에게 조르르 달려와 내 등 위에 올라탔다. 그러고서는 “이랴, 이랴!” 말 타기를 하는 것이다. 올라타고 짓밟고 그것도 모자라 코를 쥐어뜯고 얼굴을 혀로 핥아대는 등 한시도 가만히 있지를 않았다. 활동량도 이렇게 차이가 났다.


심지어는 근육의 느낌도 달랐다. 간혹 자기 전에 아이들이 다리가 아프다고 주물러 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허벅지부터 종아리까지 정성껏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런데 다리를 주무르면서 두 녀석의 종아리 근육이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큰 녀석의 종아리 근육은 그렇게 단단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무슨 돌덩어리를 만지는 것처럼 근육이 단단했다. 반면 작은 녀석의 종아리 근육은 마치 스펀지처럼 말랑했다. 딱딱한 느낌은 전혀 없이 말랑하기만 했다. 두 녀석이 성격도 다른데 심지어 종아리 근육도 이렇게 다르구나 싶었다.


흔히들 말하는 키 크는 비결


흔히들 말하는 키 크는 비결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가 잘 먹기이고, 둘째가 잘 놀기이고, 셋째가 잘 자기이다. 잘 먹고 잘 뛰어다니고 잘 자면 키는 저절로 자란다는 것이다. 지극히 옳은 얘기이다. 나의 두 아들들만 비교해 봐도 정말 그렇다. 잘 먹고 잘 놀고 잘 자던 작은 녀석은 큰 녀석보다 더 빨리 자랐고 결국에는 형을 추월해 버리고 말았으니 말이다.

동의보감의 내용을 살펴보더라도 키가 크는 비결에 관하여 간접적으로 말한 구절들이 보인다. 먼저 잘 먹어야 키가 잘 크는 것과 관련해서는 “골수란 음식에서 취하는 다섯 가지 맛의 열매와 꽃이다.”라고 하였다. “골수란 뼈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양질의 음식에서 좋은 양분을 많이 얻어야 골수가 뼈를 채워줘서 뼈가 쑥쑥 자라게 될 것이다. 잘 뛰어놀아야 키가 크는 것과 관련해서는 “운동을 많이 하지 않으면 경락이 통하지 않고 혈맥이 막히고 쌓인다.”고 하면서 자꾸 움직이라고 하였다. 잘 먹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운동을 해줘야 음식에서 섭취한 양분이 뼛속에까지 잘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최고의 운동은 실컷 뛰어노는 것이다. 잘 자야 키가 크는 것과 관련해서는 “양(陽)은 기(氣)를 변화시키고 음(陰)은 형체를 만든다.”라고 하였다. 음(陰)과 양(陽)은 포괄적인 개념인데 이것을 시간에 대입하여 풀이해 보자면 낮은 양(陽)의 시간이고 밤은 음(陰)의 시간이라 할 수 있다. 낮은 사람이 활동하는 시간이고 밤은 휴식하는 시간이다. 낮은 소비하는 시간이고 밤은 저장하는 시간이다. 그래서 음(陰)이 형체를 만든다는 것은 밤 시간에 뼈가 자라서 형체의 성장이 일어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충분한 음(陰)의 시간을 확보해야, 즉 밤에 충분히 잠을 자야 뼈가 자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두 아이를 키운 엄마로서 개인적인 경험에 의하면 위의 세 가지 비결 중에서 잘 자는 것이 제일 키 크는 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동생이 자신을 추월해 버리자 살짝 충격을 받은 큰 녀석이 자신도 키가 커야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서 제일 노력했던 것이 바로 일찍 자기였다. 특히 휴식 시간이 많은 방학 기간에 잠을 많이 자려고 애썼다. 물론 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한약도 먹었다. 골수를 보강하는 아교, 숙지황, 구기자와 같은 약재와 근육을 이완시키는 대조, 작약과 같은 약재를 이용한 한약도 먹었다. 온갖 정성이 통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년 정도가 지나자 큰 아들의 키가 다시 역전하게 되었다. 큰 차이가 나지는 않았지만 큰 아들이 작은 아들보다 약간 더 큰 상태가 되었다.


키를 자라게 하는 또 하나의 비결


흔히 알려진 위의 세 가지 비결에다가 나는 한 가지 비결을 더 보태고 싶다. 바로 ‘전족의 끈을 풀어주라.’는 것이다. 전족(纏足)이란 중국에서 여자의 발을 인위적으로 작게 하기 위하여 헝겊으로 묶던 풍습을 말한다. 옛날 중국에서는 여자아이가 서너 살이 되면 천으로 발을 힘껏 묶은 후 발 크기에 딱 맞는 가죽신을 신겼다. 이렇게 하면 발이 자라지 않아 어른이 되어서도 발의 크기가 10센티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고 한다. 이렇게 발을 끈으로 꽁꽁 묶어둔다고 하여 묶을 전(纏) 자와 발 족(足) 자를 써서 전족(纏足)이라고 불렀다. 자유롭게 두면 훌쩍 자랄 수 있는 발인데 끈에 의해 꽁꽁 묶여 억압되기에 10센티도 자라지 못하게 된다. 혹시 우리 아이들의 경우에도 자유롭게 두면 키가 훌쩍 자랄 수 있는데 뭔가에 의해 억압되어서 키가 자라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지 않을까?


얼마 전 한 연예인이 TV의 한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아이를 홈스쿨링을 했던 경험을 털어 놓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인성이 나쁜 아이들과 부딪히며 갈등을 빚고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자 일 년 간 홈스쿨링을 했다고 한다. 여러 효과들이 있었지만 그 중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훌쩍 자라는 결과도 생겼다고 한다. 스트레스에서 해소되니 아이의 품성도 긍정적으로 바뀌고 키도 쑥쑥 자라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자 그 아이의 마음을 억압하던 전족의 끈이 풀렸기 때문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키를 자라게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비결은 바로 아이를 ‘즐겁게’ 해주라는 것이다. 언뜻 시시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키가 크는 데 있어서 정말 중요한 비결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사람이 느끼는 여러 감정들을 통칭하여 ‘칠정(七情)’이라고 불렀다. 이 칠정이 마음에 깃들게 되면 몸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예로 들어 “기뻐하면 기(氣)가 이완된다. 기뻐하면 기(氣)가 조화로워지고 뜻이 잘 통하며 기혈이 잘 흐르게 된다.” 반대로 “고뇌하면 기(氣)가 뭉치게 된다. 고뇌하면 마음을 두는 바가 있고 정신이 귀착되는 데가 있어서 기(氣)가 머물러 돌지 못하므로 기가 뭉치게 된다.” 칠정 중에서 기(氣)가 이완되게 해주는 것은 오직 기뻐하는 감정뿐이다. 그러니 기뻐할수록 몸과 마음을 억압하는 전족의 끈이 느슨해지게 된다.


전족의 끈은 몸을 묶을 수도 있고 마음을 묶을 수도 있다. 몸을 묶어두는 전족의 끈은 자라고자 하는 뼈를 꽉 붙잡고 있는 뭉친 근육이라고 할 수 있다. 어른들도 스트레스가 극심해지면 뒷목과 어깨의 근육이 뭉치게 된다. 뭉친 근육이 뼈의 배열을 변형시켜 일자목을 만들기도 한다. 아이들도 근육이 말랑하지 못하고 뻣뻣하게 뭉쳐있는 경우들이 간혹 있다. 자라고자 하는 뼈를 뻣뻣하게 뭉친 근육이 꽉 묶어버리고 있는 것일 수 있다. 마음을 묶어두는 전족의 끈은 자유롭게 뛰어 놀고 싶은 아이를 틀에 가두어버려 마음을 슬프게 만드는 것이다. 그 사람이 혹시 엄마 자신은 아닌지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마음대로 자라고자 하는 소나무를 철사로 감아 분재로 만들면 바라보는 주인의 눈은 즐거울지 모르나 철사에 감긴 소나무는 분명 괴로울 것이다. 자유롭게 뛰어 놀고자 하는 아이를 엄마의 욕심이라는 철사로 감아버리면 아이의 마음은 분명 괴로울 것이다. 마음을 묶어두는 전족의 끈을 푼다면 몸을 묶어둔 전족의 끈 역시 풀릴 것이다. 그러니 아이를 즐겁게 살도록 해주자. 그러면 아이의 키는 쑥쑥 자랄 수 있을 것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