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거잖아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이 집에서 모여 실컷 수다를 떨 때가 있다. 친구 중에서 가장 수다스럽고 외향적인 이가 있었는데 희한하게도 이 친구의 딸은 무척이나 내성적인 것이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다고 한다. 친구가 하소연하기를, 학교 선생님의 말씀에 의하면 딸이 다른 아이들에 비해서 말수가 적은 편이고 생전 손을 들고 발표하는 일이 없다고 한다. 수업 내용을 잘 따라오지 못하나 싶어서 한번은 손을 들지 않았지만 발표를 시켜보았다고 한다. 그랬더니 우물거리며 대답하긴 했지만 수업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에게 알면 손들고 발표 좀 하라고 했는데도 변화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뿐이 아니었다. 하루는 같은 반 남자아이가 거칠게 장난을 치다가 그만 자신을 때려서 맞고 들어온 일이 생겼다. 어디를 다친 정도까지는 아니었지만, 엄마 마음에 너무 속상해서 왜 참았냐, 너도 한 대 때리지 그랬냐고 했더니 “친구를 때리는 건 나쁜 거잖아.” 이렇게 대답을 하더라는 것이다. 아이의 대답이 틀린 말이 아니기에 더 이상 딸을 다그치지도 못했다고 한다.
깊은 통찰력을 기르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내성적이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주로 마음속으로 품고 있는 성격을 말한다. 그러다 보니 내성적인 성격의 사람이 간혹 별생각이 없는 사람으로 오해받기가 쉽다. 겉으로 자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뿐이지 그 마음속에도 아무 생각이 없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생각을 속에서 품고 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큰 장점이 있다.
우선 내성적인 사람은 함부로 표현하지 않기에 신중하고 실수가 적다. 외향적인 사람들은 매번 말과 행동이 빠르기 때문에 실수가 잦을 수 있다. 하지만 내성적인 사람들은 즉흥적으로 말을 내뱉지 않는다. 머릿속의 생각을 함부로 말이나 행동으로 분출하는 일이 적기에 실수가 적다. 내성적인 성격의 큰 장점이다.
또한 내성적인 성격은 깊은 통찰력을 기르는 원천이 될 수 있다. 내성적인 사람은 혼자서 조용히 자신의 시간을 가지면서 사고를 깊이 한다. 생각이 떠오른다고 바로 말로 내뱉어 버리지 않는다. 처음에는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생각이지만 충분히 사색하고 또 사색하여 무르익으면 그때야 비로소 표현한다. 언뜻 보면 소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은 내실이 있는 것이다. 이 시대의 유명한 리더인 루즈벨트, 간디, 오바마 등도 실은 내성적인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이는 마치 숙지황(熟地黃)이란 약재와도 비슷한 성품이다. 숙지황은 생지황이란 약재를 아홉 번 찌고 말려서 완성시키는 약재이다. 생지황이란 현삼과의 여러해살이풀인 지황이란 약재를 채취하여 아직 말리지 않은 생것을 말한다. 이 생지황을 시루에 넣고 쪘다 말리기를 총 아홉 번 반복하면 숙지황이 완성된다. 생지황은 성질이 차가워 열을 끄는 작용을 하지만, 숙지황은 성질이 따뜻하게 변하면서 최고의 보약으로 바뀌게 된다. “혈이 부족해진 것을 크게 보충해 주고 수염과 머리카락을 검게 하며 골수를 채워주고 살갗을 자라게 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고 허약증을 보하며 혈맥을 잘 통하게 하여 기운을 증강시켜주고 귀와 눈을 밝게 한다.” 이런 숙지황의 효능이라면 허약증을 보하는 최고의 정화를 품고 있는 약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생지황이 굳이 숙지황이 되지 않아도 된다. 아홉 번을 찌고 말리는 그 성숙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냥 생지황으로 살아도 된다. 혹은 한 번만 찌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짝퉁 숙지황으로 살아도 된다. 혹은 다섯 번만 찌고 말려져서 반쪽짜리 숙지황으로 살아도 된다. 그런데도 아홉 번의 그 과정을 다 견뎌내어서 진품 숙지황으로 탈바꿈을 한다.
혼자서 이겨내는 이 과정을 묵묵히 견딜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성격은 내성적인 성격이라고 생각된다. 고요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면서 깊고 내실 있는 사고를 할 수 있는 그 능력은 바로 내성적인 성격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얼마나 대단한 장점인가?
떨쳐 일어남으로 극복하고 기쁨으로 풀어주어라
이렇게 내성적인 성격이 장점도 있지만 너무 지나치면 병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사회라는 곳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하기에 외향적인 성격의 사람이 사회생활에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또한 너무 자신의 생각을 안으로만 감추고 있으면 그것이 때로는 오해를 낳을 수도 있고,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놓칠 수도 있다. 그러니 내성적인 성격이 극에 달하여서 내 아이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 자체를 뺏기는 일이 없도록 균형을 잡아주어야 할 것이다.
동의보감은 생각을 말로도 행동으로도 표현하지 않고 속으로 품고만 있는 경우에 이렇게 하라고 하였다. “지나치게 생각하여 비장을 상한 경우에는 떨쳐 일어남으로 극복하고 기쁨으로 풀어주어라.” 여기서 ‘떨쳐 일어남’의 한자는 성낼 노(怒) 자이다. 성낸다는 뜻으로 해석하자면 ‘분노로 극복하고 기쁨으로 풀어주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노(怒) 자에는 ‘떨쳐 일어난다’는 뜻도 있다. 그래서 ‘떨쳐 일어남으로 극복하고 기쁨으로 풀어주라’고 해석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본다. 아이를 화나게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떨쳐 일어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조용히 앉아 있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것, 무언가 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손을 번쩍 드는 것,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 이런 것이 떨쳐 일어난다는 것이다. 화가 나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에 성낼 노(怒) 자를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떨쳐 일어나게 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바로 아이에게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말로 뱉어내는 훈련을 시키는 것이다.
아이와 가장 친하고 편한 존재인 엄마가 계속해서 아이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이건 어떠니?” “이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니?” 계속 질문을 던져 아이의 입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가 우물거리며 대답을 잘 못하더라도 절대 다그치지 말아야 한다. 웃는 얼굴로 기다려 주어야 아이가 미숙하더라도 표현한다는 것에 익숙해진다. 가장 친한 사람인 엄마에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것이 편해진다면 단체 생활을 할 때도 더 용기 있게 표현할 수 있게 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떨쳐 일어남으로 극복하고 기쁨으로 풀어주라’고 하였다. 엄마의 질문에 아이의 대답이 끝나면 반드시 잘했다고 칭찬을 해서 아이에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음번 엄마의 질문에도 아이가 계속해서 입을 열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쁨으로 풀어주라는 것이다. 앞에서 말한 내성적인 딸의 엄마는 아이에게 칭찬으로 기쁨을 주지 못했다. 다그치기는 잘했으나 듬뿍 칭찬을 부어주지를 못했다. 만약 칭찬받는 기쁨을 아이에게 느끼게 해주었더라면, 친구를 때리는 것은 나쁜 것임을 이미 깨우친 그 생각 깊은 아이가 표현하는 것의 기쁨 역시 느꼈을 수도 있다. 그러니 반드시 기쁨으로 풀어주어서 아이를 계속 떨쳐 일어나게 해주어야 한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