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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몸은 어른과 다르다


동의보감 소아 문의 첫머리를 여는 글귀는 ‘소아병난치(小兒病難治)’이다. 즉, 소아의 병은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 뒤를 바로 이어 등장하는 문장이 바로 이것이다. “차라리 열 명의 남자 환자를 치료할망정 한 명의 부인 환자는 보지 말고, 차라리 열 명의 부인 환자를 치료할망정 한 명의 소아 환자는 보지 말라. 대개 소아는 증상을 묻기가 어렵고 맥을 살피기가 어려워 치료하기가 더욱 어렵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에서는 한 명의 소아 환자를 보느니 열 명의 부인 환자 혹은 백 명의 남자 환자를 보는 것이 더 쉽다고 말하는 것이다. 왜 이런 얘기를 했을까? 아이의 몸이 무엇이 유별나기에 이렇게 소아 환자는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것일까?


특징 1 :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싸늘해진다


유치원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은 작은 아들이 처음으로 자전거를 배우기 시작했다. 새로 배운 자전거 타기가 재미있는지 쌀쌀한 날씨임에도 자꾸 타고 싶다고 졸라서 아파트 마당으로 함께 내려갔다. 자전거 페달을 신나게 밟으며 아파트 마당을 한참 동안 쌩쌩 달렸다. 그런데 집으로 올라온 후에 일이 생기고 말았다. 자전거를 탈 때만 해도 멀쩡하던 녀석이 순식간에 열이 39℃로 올라버린 것이다. 그날 밤 아들은 펄펄 끓는 고열에 허덕이게 되었다.


한 시간 정도 자전거를 신나게 탄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약간 쌀쌀한 듯한 날씨에 그만 열 감기에 걸려버린 것이다. 잠바를 입히고 태웠는데도 자전거로 쌩쌩 달렸던 것이 안 좋았었나 보다. 밤새 39℃의 체온은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집에 비상용으로 두었던 계지탕을 먹였다. 계지탕이란 약은 열 감기가 생겨 열이 펄펄 끓으면서 으슬으슬 추워할 때 쓰는 감기 치료 한약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쌩쌩하던 녀석이 하루 온종일 축 늘어져 눈도 못 뜨고 밥도 못 먹고 끙끙 앓고 있는 걸 보자니 참 안쓰러웠다. 아이에게 그날 먹인 계지탕만 해도 다섯 봉지였다.


그렇게 하루 온종일 고열로 헤매던 녀석이 다음 날이 되자 금세 멀쩡해졌다. 열이 떨어지자 언제 아팠냐는 듯이 또 자전거를 타러 나가겠다고 한다. 참 아이들은 신기하다. 금세 열이 2℃가 넘게 훅 올랐다가도 또 금세 정상 체온으로 떨어지니 말이다.


그런데 실은 이게 소아의 특징이다. 열 감기에라도 걸리게 되면 순식간에 체온이 훅 오른다. 그리고 나으려고 하면 또 순식간에 열이 훅 떨어진다. 무슨 변온동물인가 싶을 정도로 체온이 순식간에 오르내린다. 그러니 지켜보는 엄마는 하루에 열두 번도 더 놀랄 지경이다. 하지만 너무 놀랄 필요는 없다. 똑같이 열 감기에 걸려도 어른보다 더 높은 체온에 금방 도달하는 것이 아이들 몸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도 소아는 싸늘해지기도 쉽고 뜨거워지기도 쉽다고 하였다.


특징 2 : 쉽게 막히고 쉽게 비워진다


한 친구의 어린 딸에게 생겼던 일이다. 잘 놀던 녀석이 갑자기 배에 가스가 차기 시작했다. 전날 먹었던 것이 잘못되었나 보다 싶었다. 마침 어제 이후로 대변이 나오질 않고 있었다. 아침에 소변을 한번 본 이후로는 계속해서 소변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아이의 배는 점점 더 빵빵하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 밤이 되자 배가 터질 듯하게 부어 버렸다.


급한 마음에 전에 약국에서 사두었던 관장약을 이용해서 아이에게 관장을 하였다. 그러자 대변이 폭탄처럼 터져 나오더라는 것이다. 또한 거의 하루 가까이 보지 못했던 소변도 동시에 터져 나왔다고 한다. 마치 터진 둑이 무너져 내리는 듯 대변과 소변이 터져 나왔고 동시에 빵빵하던 배도 꺼졌고 가스도 모두 빠졌다고 한다.


아이에게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는 지금까지도 미스테리라고 하였다. 전날 무엇을 먹어서 잘못된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고 하였다. 어쨌든 갑자기 대변과 소변이 막히는 증세가 생기더니 배가 부어오르기 시작했는데 관장으로 대변과 소변을 열어주자 모든 증세가 다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동의보감에서는 아이들은 막히기도 쉽고 비워지기도 쉽다고 하였다. 떡 한 조각에 체해서 꽉 막히기도 쉽다. 꽉 막힌 체기가 뻥 뚫어지기도 쉽다. 뭘 잘못 먹었는지 변비가 생기기도 쉽다. 그 변비가 뚫려서 비워지기도 쉽다. 잘 막히고 잘 뚫린다. 잘 채워지고 잘 비워진다. 변화가 순식간이다. 대변이 잘 안 나와 관장을 하면 금세 변이 풀어지지만 욕심에 한 번 더 관장을 하면 금세 설사가 생겨버린다. 이러한 소아의 특징을 염두에 두고 보살피면 급격한 증세 변화에 덜 당황하게 된다. 약을 쓸 때에도 이를 잘 살펴서 써야 한다. 그래서 소아의 병이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특징 3 : 가느다란 실과 털처럼 연약하다


늦둥이를 본 친구가 해외로 가족 여행을 가기로 했다면서 신이 났다. 아이가 돌을 막 넘겼기에 첫돌 기념으로 가족이 해외로 놀러 갔다 오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후에는 잘 다녀왔냐는 인사가 무색해질 정도로 엄청 고생을 했다며 고생담을 늘어놓았다.


아이를 데리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신나게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 일정이 다 끝나기도 전 어느 날 밤 아이에게 그만 설사가 생긴 것이다. 물 같은 설사를 쭉쭉 하기 시작했단다. 약간의 미열도 생겼다는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다가 결국은 일정을 다 취소하고 한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한국으로 돌아오자 이번에는 아이의 몸에서 열꽃이 생겼다. 설사도 여전했다. 새로운 환경에 처음 접해 본 갓 돌이 지난 아이는 그만 장염에 걸렸던 것이다. 한참을 치료한 후에야 아이는 겨우 회복되었다.


동의보감에서는 소아들은 장부가 취약하고 혈기가 아직 왕성하지 못하여 마치 실처럼 혹은 가느다란 털처럼 연약하다고 보았다. 그러니 낯선 환경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지고 외부의 변화에 대해서도 잘 대처하지 못한다. 똑같은 곳에 놀러 가서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이 생활했는데 엄마와 아빠는 멀쩡하고 아이만 아플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아이의 특징이다.


특징 4 : 말을 할 수도 가리킬 수도 없다


만 한 살도 되지 않은 큰아들이 어느 날 울음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배가 고픈가보다 싶어서 얼른 이유식도 줘보고 분유도 타 줘 봤지만 고개만 흔들어댈 뿐이었다. 기저귀가 젖었나 보다 싶었는데 확인해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로 갈아주었지만 역시나 아무 소용이 없었다.


삼십 분을 넘게 달래 보아도 울음은 그칠 줄을 몰랐다. 혹시나 싶어서 아이의 웃옷을 벗겨 보았다. 웃옷을 벗기고 찬찬히 몸을 살펴보니 세상에나 아이의 옆구리에 웬 상처가 보이는 것이다. 붉은색으로 상기된 피부에 뭔가 살짝 찔린 듯한 모양의 상처가 보였다. 웃옷을 손으로 샅샅이 훑어보니 아주 가늘고 작은 나무 가시가 옷에 박혀있는 것이 아닌가!

가시를 옷에서 뽑아내고 상처 부위에 반창고를 붙여주자 그제야 아이는 울음을 그쳤다. “엄마, 여기 옷에 가시가 있어.” 이 한마디만 했다면 아이나 나나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을 텐데 싶었다.


아이는 어른과 달리 의사 표현을 잘 못 한다. 말을 못 하는 영유아기 시절은 물론이고, 조금 말할 줄 알아도 사고력이 떨어져 어디가 아픈지 정확히 표현을 못 한다. 그래서 동의보감에서는 소아에게 증상을 묻기가 어렵고 맥을 살피기도 어렵다고 하였다. 어른을 문진하듯이 아이를 똑같이 문진하기는 힘든 것이다. 그러니 엄마가 잘 관찰하는 수밖에 없다.


미리 알면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어렵지만 아픈 아이를 치료하는 것 또한 무척이나 어렵다. 그 이유에 대해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의사가 되는 길은 대개 처방과 진맥이 어려운데 소아를 치료하는 것은 더욱 어려우니 이는 그 장부가 취약하고 피부와 뼈가 연약하며 혈기가 왕성하지 못하고 경락이 실과 같고 맥과 호흡이 가느다란 털과도 같으며 비워지기도 쉽고 막히기도 쉬우며 싸늘해지기도 쉽고 뜨거워지기도 쉽기 때문이다. 또한 입으로 말을 할 수가 없고 손으로 가리킬 수가 없어서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실과 같고 털과도 같아 연약하기 이를 데가 없다는 것이다. 비워지고 막히고 싸늘해지고 뜨거워지는 등의 증세가 격렬하고 변화가 급격하다는 것이다. 말도 못 하고 가리키지도 못해서 어디가 아픈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런 소아의 특징 때문에 치료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보면 쉽게 아프지만 쉽게 낫기도 한다는 뜻임을 알 수 있다. 아무리 아이의 체온이 39℃로 올라 펄펄 끓고 있다고 할지라도 금세 정상 체온으로 떨어질 수 있다. 좀 전까지 아이를 데굴데굴 구르게 만드는 중이염의 통증도 금세 사라질 수 있다. 어제까지 철철 흐르던 아토피의 진물도 금세 그칠 수 있다. 다만 격렬한 증상과 빠른 변화 때문에 엄마가 놀라고 당황하기 쉬운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아이의 특징을 미리 잘 이해하고 있자. 그래야 내 아이가 아프더라도 덜 놀라고 덜 당황하게 될 것이다. 또한 더욱 차분하게 대응할 수 있을 것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