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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대(宋代)의 시인 석개(石介)는 "춘근학두향(春近臛頭香)"이라 하여 봄이 가까이 올 때 지그시 고아지며 풍기는 곰국의 향기를 노래했다. 또한 금대(金代) 이동원(李東垣) 선생은 봄의 발산하는 기운에 적응하지 못하는 허약한 환자는 맵고 따뜻한 음식을 먹으라 하였으니 곰국에 매콤한 양념을 넣어봄이 어떠리오. 


봄과 간(肝)은 오행으로 목(木)이요 궐음(厥陰)은 풍목(風木)이니 봄에는 풍병(風病)을 조심해야 한다. 평소에 풍한습(風寒濕)으로 인한 비증(痹證)을 앓던 사람이 쉬지 못하고 지속적인 과로를 하여 그 피해가 축적되거나, 풍(風)의 기세가 강해지면 오장육부가 제 역할을 못 하는 상태로 돌변할 수 있다. 


이럴 때 『의방유취(醫方類聚)』, 『식료찬요(食療纂要)』 등에서는 오골계(烏骨鷄)를 센 불에 완전히 푹 익힌 다음 잘게 쪼개어 파, 생강, 후추, 및 간장을 넣은 시즙(豉汁)으로 고깃국을 끓여서 먹으라고 하였다.


원래 시즙(豉汁)이란 담두시(淡豆豉)에 후추, 생강, 파, 소금, 및 물을 넣고 가공한 것인데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만드는 방법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연기가 나지 않게 끓여서 졸인 불순물이 없는 참기름 1되와 양질의 담두시 3말을 섞어서 찐 후에 널어서 식히고 햇볕에 말린 다음 다시 섞어서 찌기를 2회 반복한다. 여기에 소금 1말을 찧어 혼합하고 뜨거운 물을 부어 여과한 즙 3~4말을 가마에 넣고 후추, 생강, 파, 귤사(橘絲; 귤껍질 안쪽의 섬유질)를 넣어1/3로 줄어들 때까지 달여서 넘치지 않는 넉넉한 용기에 담아둔다. 


고전에 시즙은 향기와 맛이 매우 뛰어나다고 기록되어 있다. 여기에 오골계를 넣어 고깃국을 끓이면 그 얼마나 맛이 있겠는가! 또한 후추, 생강, 파 등 매운맛이 곁들여 봄철의 보양식이 되니 금상첨화라 아니 할 수 없다.


오골계는 간(肝)에 들어가 간(肝)을 평안하게 함으로써 풍사(風邪)를 제거하고, 또한 신(腎)에 들어가 신(腎)을 보익(補益)함으로써 음액(陰液)을 기른다. 간신(肝腎)의 혈분에 들어가 혈(血)을 치료하므로 풍사(風邪)와 번열(煩熱)을 제거할 수 있다. 


오골계를 먹어 보혈(補血), 익음(益陰)하면 지속적인 과로의 피해를 복구할 수 있다. 음액(陰液)이 돌아오고 번열이 제거되어 음평양비(陰平陽秘; 水火陰陽이 조화되어 있는 건강한 상태)하고 표리(表裏)가 든든해지면 사악(邪惡)한 기가 침범할 수 없다.


무릇 모든 사기(邪氣)는 몸이 허약해진 틈을 타고 침입하여 질병을 일으킨다. 풍사(風邪)도 위기(衛氣)가 쇠약해져 주리(腠理)가 열릴 때 만나면 속으로 깊이 들어가 갑자기 심한 질병이 된다. 그러나 혹시 풍사의 침입이 가능한 여러 조건에 노출이 되어 있다 하여도 기혈(氣血)이 충만하면 풍사가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얕은 곳에 머물러 있으면서 완만하게 진행이 된다. 『영추(靈樞)』


추운 겨울 동안 겨울의 한파를 견디고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모든 생명체는 저장물질을 밖으로 보내지 않고 소중하게 간직한다. 그러다가 대기에 따뜻한 기운이 발생하여 점점 지표를 녹이면 겨울 동안 간직해 온 저장물질들을 필요한 곳으로 이송시키는 것이 자연의 순환 현상이다. 


사람이 심한 노력을 하면 오장(五臟)은 저장되어 있던 물질을 필요한 곳으로 내어 보낸다. 그런데 지속적으로 저장량보다 배출량이 많아서 오장의 생명현상이 유지되는데 필요한 최소량만 남게 되면 생명을 지키기 위해 모든 문을 닫고 소통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아도 자연적으로 저장되었던 물질이 발산하는 봄철에, 지나친 방출을 거듭 부추기는 행위를 하면 문 닫는 현상이 곧바로 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렇게 문이 닫히면 보양 음식이 가까이 접근해도 쉽사리 문을 열지 않고 배척하게 된다. 


이때의 치료는 어떤 음식을 선택적으로나마 받아들이냐에 달려 있는데, 오골계는 그중 한 가지에 속한다는 것을 선인들이 경험적으로 알아낸 것이다.


시즙에 오골계 곤 것을 넣어 끓인 고깃국은 굳이 약선설계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경험적 산물이라 당연히 효과가 있는 데다가 향기와 맛 또한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그야말로 가장 귀중한 고전적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게다가 내용에 딱 맞는 계절에 소개하니 어찌 즐겁지 않으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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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선설계론은 식치방(食治方) 맛 내기에 대한 경험적 기록이 대부분 없기 때문에 필요한 이론이다. 간혹 경험적 기록이 있는 처방에서는 경험이 항상 논리보다 앞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즉, 더 이상 손을 대지 않아야 가장 좋다는 뜻이다.


병원이나 요양소 등 환자가 거주하는 집단 시설에서는 식치(食治)를 공부한 한의사가 환자를 진료하여 식치방을 처방하고 약선설계를 습득한 조리사가 설계하여 약선으로 조리를 해내면 가장 적합한 약선을 환자에게 제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그 환자가 맛이 좋지 않아도 식치방 그대로 주기를 원한다면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한다. 왜냐하면 논리가 아무리 완벽해도 천연동식물 사이의 관계는 반드시 경험이 논리보다 앞서기 때문이다. 즉, 약선설계는 필수가 아니고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막상 약선을 만들어 놓으면 그것이 원칙에 맞도록 만들어졌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방법이 없다. 다만 오랜 시간 후에 그 시설에서 제공하는 음식을 먹으면 확실히 건강에 좋다는 환자들의 평가로나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약선설계는 비록 환자들이 당장은 알아주지 않아도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이로운 음식을 제공하겠다는 운영자의 철학이 있어야만 활용이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저 유능한 조리사 한 사람 대신에 식치 한의사와 약선설계사가 필요하고 그만큼 경비가 더 들기 때문이다.


이제 머잖아 또다시 봄이 온다. 그리고 할 일은 산적해 있다. 이럴 때 잠시 쉼표를 찍고 오늘 등장한 '시즙오골계'를 한번 만들어 먹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그 일대에서는 시인 석개(石介)가 읊조렸던 "춘근학두향(春近臛頭香)" 한 구절이 은은히 울려 퍼질 것이다.


"봄은 가까이 오는데 지그시 고아지는 곰국의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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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은 필자의 개인적 견해로, KMCRIC의 공식적 견해와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안문생 박사의 약선설계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