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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머리 위에 우주를 얹고 있다.


공룡의 뇌는 체중의 1/20,000 정도.
고래의 뇌는 9kg, 체중의 1/10,000.
코끼리의 뇌는 4kg, 몸무게의 1/1,000이란다.

그렇다면 사람의 뇌는?


체중을 60kg으로 본다면 머리 무게는 1,200-1,400g 전후니까 대략 2% 정도로 1/50이다. 다른 동물과 비교한다면 엄청나게 크고 무거운 머리를 가졌다. 그래서 엄마 몸을 찢어야만 큰 머리가 나올 수 있기 때문에 임신과 출산의 희생과 고통은 지구 전체에서 가장 클 것이다. 커다란 뇌는 다른 영장류와 비교해봐도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지 알 수 있다. 인간과 유전자가 99%가 같다는 침팬지 어른은 몸무게가 약 30kg인데 뇌 무게는 400g밖에 안된다.
 
이미 아기 때 300g의 뇌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동물 중에서 체중 대비 가장 큰 ‘대두’다. 뇌 만들기에 치중하다보니 태어나자마자 툭툭 털고 일어나 걷고 달리는 동물에 비해서 신체기능은 상대적으로 허약하게 태어났다. 그러나 출생 후부터 머리는 또 한 번의 비약적인 발달을 하게 된다. 출생 후 1년이면 뇌가 두 배 이상 자라서 800g에 달하고 부피는 세 배로 늘어난다. 6세에는 1,300g으로 어른 뇌 무게에 육박하니 가히 폭발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리즈 엘리엇(Lise Eliot) 교수는 뇌를 ‘정신적 우주’라고 했다. 동서양의 엄마들끼리 마음이 통했는지 내게는 최고의 표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의학에서는 인체를 소우주(小宇宙)라고 하는데 뇌는 광대무변한 ‘사유(思惟)의 영토’로서 시공간이 함께 집적된 파노라마다. 티끌에서 거대함에 이르고 찰나에서 불멸에 도달하는 영육의 돛대다. 뇌의 사유를 통해 우리는 우주와 독대하는 단독자이며 지구를 스쳐 가는 순례자가 된다.


우주에서 은하별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둥근 지구를 ‘뇌’라고 상상해보자. 여기에 어린나무를 1,000억 개쯤 심어서 10년을 키워보자. 뿌리는 얽혀서 땅을 덮고 가지는 무성해서 숲이 되어 밀림으로 뒤덮인 초록별로 자랄 것이다. 뇌도 이처럼 아기 때 이미 1,000억개의 신경세포를 만들어서 해를 거듭해 청소년기까지 나뭇가지와 뿌리 같은 시냅스를 만들고 수초화를 시키며 구조조정에 신경회로를 강화하면서 자란다.


그 결과 한 개의 신경세포마다 몇천 개의 접속이 이루어지니 모두 합하면 1,000조의 접속이 이루어지는 뇌가 완성된다. 갓 태어났을 때 마치 잘 터지지도 않는 전화기 겨우 스무 대 남짓하게 가지고 있는 통신회사였던 것이 날로 시냅스 네트워크가 번성하여 지구의 60억 인구가 동시에 만 번을 접속할 수준으로 발달한 것이다.


남녀노소, 인종, 빈부차 없이 다 같이 어깨 위에 둥근 지구를 하나씩 얹고 있다고 상상해본다. 그 머릿속에서 불꽃처럼 별빛처럼 명멸할 억, 조의 신경세포를 생각하면 대견하고 힘이 나지 않는가.
심신에 깃든 내적인 조화와 사랑. 그리고 질서와 완벽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우리 애는 머리가 나쁜가 봐요.


아이들이 가장 싫을 때가 부모들이 싸울 때라고 한다. 공부 타령도 지겹고 성적표를 보고 야단치는 것도 서럽지만 참는다. 제일 난처한 것은 엄마 아빠가 서로 비난을 하면서 ‘당신 닮아서 머리가 나쁘다고’ 심지어는 ‘당신 집안 탓’까지 진도 나가면서 마구 다투는 경우란다. 점수보다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한지가 더 중요하지 않은가. 유전 탓과 어려서 잘 키우지 못했다고 너무 걱정 마시라. 이제라도 늦은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회복할 시간을 가지면 되니까.


교도소 엄마와 고아원 이야기를 들려 드리겠다. 내게도 위안을 주는 의미심장한 이야기다. 오래전에 르네 스피츠(Rene Spitz)라는 심리학자가 한 실험이다. 교도소 근처의 탁아소에 재소자인 엄마의 아기들이 자라고 있었다. 엄마들은 비록 제한된 시간과 열악한 환경이지만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고 사랑으로 보살폈더니 아이들은 정상적으로 자랐다.


이와 반대로 가장 시설 좋은 고아원에 맡겨진 아이들. 환경도 적당하고 위생적이며 충분한 영양이 공급되었다고 한다. 다만 8명당 한 명의 간호사가 아이들을 돌보며 볼 거리 놀 거리 등의 자극이 없는 채 감염방지용 보에 둘러 싸여 침대에 각각 따로 키워졌다. 결론적으로 많은 아기가 두 살 전에 감염으로 죽었고 살아남은 아이는 세 살이 되어도 걷지 못하고 주위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정서적 육체적으로 발달장애를 보였다. 아이에게는 접촉과 애정을 주는 환경 역시 유전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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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들의 신경세포는 가변차선처럼 가소성이 아주 풍부하다. 예를 들면 간질인 어린아이 경우 어려서 대뇌반구 절제를 했음에도 지능장애와 운동장애가 거의 없었다는 놀라운 사실이 아기 뇌의 가소성을 간접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태어날 때 아무것도 씌여지지 않은 두꺼운 백과사전을 가지고 나와 듣고 느낀 경험과 생각들이 차곡차곡 쌓여서 완성되어가는 것이 뇌이다. 흔적 없는 길도 사람들의 왕래가 잦으면 큰길이 되고 고속도로가 뚫리듯이 유익한 경험들을 반복해 쌓아가면 신경회로들은 더욱 강화되어 발달한다. 이만하면 충분한 머리 들볶지 말고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하고 기운 나는 에너지를 채워주면 되니까 자신과 자녀들이 ‘머리 좋다고’ 자랑도 우습지만 ‘머리 나쁘다고’ 쫄지 말지어다.


신문 사회면에 실린 소식인데 우리나라 ‘최초’의 사건이다. 회사를 부도내 사기죄로 묶여 있는 엄마가 6년 만에 아이를 만났다. 법무부가 엄마 재소자와 아이들을 위해 ‘모자 관계 회복 프로그램’으로 2박 3일 동안 엄마와 아이들의 만남을 마련한 것이다. 입소할 때 4살이던 아이가 훌쩍 커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어 6년 만에 만난 다른 모자는 처음에는 낯설고 어색하였단다. 그러나 이름 부르기, 안마해주기, 엄마와 함께 몸으로 글자 만들기, 짝짓기 놀이로 살얼음처럼 서먹하던 관계는 사라지고 꼭 끌어안고 떨어질 줄 모르게 되었다. LG-고현정 펀드에서 지원하고 숙명여대 글로벌 인적자원개발센터에서 진행한 프로그램이었다고 한다. 매년 더 많은 엄마와 아이 모두에게 골고루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다. 일 년에 한 번이라도 품에 안고 안긴 기억의 힘은 초강력 마법처럼 뇌에 자리 잡아 아이들에겐 신경의 그물망이 튼튼하게 자랄 것이다. 머릿속에 든 것은 누가 훔쳐가지도 빼앗기지도 않는 온전히 자기 것이다. 언제라도 엄마를 생각하면 사랑의 호르몬 베타엔돌핀 옥시토신에 흠뻑 젖게 해줄 테니까. 


뇌는 스스로 프로그램을 짜서 생생하게 키우고 발전시켜 나간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의식-生覺-매 순간 깨달음의 존재로서 현존하는 육체와 살아있는 오감을 가지고 우주와 독대한다. 부디 몰지각 대신 유지각을 즐감하기를!


아기의 두뇌발달에 관해 자세히 알고 싶은 분은 아래의 참고도서 일독을 권한다.
<우리 아이 머리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리즈 엘리엇 지음. 안승철 옮김. 도서출판 궁리.



© 이유명호 원장의 애무하면 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