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적이든 공적이든 제대로 된 사과라면 최소한 ‘무엇이 잘못됐는지’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또 ‘누가 누구에게 사과하는지’가 사리에 맞아야 한다. 하지만 김건희 씨의 사과는 그렇지 않았다. 김건희 씨가 6분 동안 읽은 사과문에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잘 보이려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습니다”라는 단 한 문장이었다. 용서를 구하는 대상도 국민이라기보다는 남편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는 사과였다.


때로는 잘못 그 자체보다는 잘못된 사과가 더 문제를 키우는 일이 있다. 


‘땅콩회항’도 그런 경우다. 이 사건이 처음 불거져 나온 것은 2014년 12월 한 신문에 실린 2단 기사였다. 대응이 적절했으면 쉽게 끝날 수도 있는 사건을 전 국민적 공분을 사는 대형 스캔들로 키운 것은 보도 당일 대한항공이 내놓은 한 장의 사과문이었다. 사과문의 요지는 3가지였다. 첫째, 승객에게 불편을 끼쳐 사과드린다. 둘째, 대한항공 임원들은 항공기 탑승 시 기내 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다. 셋째, 철저한 교육을 통해 서비스 질을 높이겠다. 조현아 부사장의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이 전혀 없이, 책임을 직원들에게 떠넘기는 생뚱맞은 사과문이었다. 


사과의 내용과 주체, 객체가 모두 핵심을 벗어난 김 씨의 사과가 ‘땅콩회항’ 사과와 본질적으로 다르다고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