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읽은 한의학 관련 서적 중에 가장 잼있게 읽어서 추천합니다.
사회학 전공자가 한의학을 20년 바라보고 쓴 글이에요.
이제 한의학도 근대화 산업화 세계화 - 하이브리드 한의학 / 돌베개
■ 사회학자가 한의학 실험실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20대 사회학과 대학원생이 한의학 실험실 관찰을 시작한 이래 40대가 되어 한의학을 주제로 한 권의 책을 펴냈다. 20년이라는 시간 동안 현장의 경험이 연구의 탄탄한 사실성을 보장하는 한편, 과학기술학과 사회과학, 인문학이 융합된 이론적 사유가 경험적 사실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한다. 사회학자가 한의학 실험실에 뛰어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왜 연구실, 협회, 진료실, 기업 등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한의학 관계자들을 만나 인터뷰했을까? 사회학자가 한국의 ‘전통의학’인 한의학을 연구하여 알아내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넘치는 열정과 강한 집념을 소유한 이 사회학자는 경희대 사회학과 김종영 교수이고, 연구 결과물은 『하이브리드 한의학: 근대, 권력, 창조』이다.
이 책은 경험연구로부터 추출하고 과학기술학 이론에서 응용한 ‘창조적 유물론’과 ‘권력지형’이라는 개념을 통해 한의학의 근대화, 과학화, 산업화, 세계화를 탐구하고, 나아가 한국 사회의 근대성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기하고자 한다.
■ 한의학의 근대화는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권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
한의학은 전통의 지식 체계인 동시에 한국의 근대화 과정 속에서 제도화되었으며, 서양 과학의 패러다임과는 다르다는 인식 아래 ‘과학화’의 길을 걸었으며, 과학이 아니라는 편견 속에서도 정식 의료 체계로서 한국 사회제도에 편입되는 등 모순적인 행보를 보였다. 저자 김종영은 한의학이 지니는 이러한 모순적 속성이 ‘근대’(modernity)의 모순성과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주지하는바 근대는 질서를 강조하지만 폭력적이고, 자유를 강조하지만 억압적이다. 김종영은 마찬가지로 한의학의 근대화 과정도 모순적이었다고 말하면서도, 한의학이 제도화되고 과학화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이러한 모순 속에서 발견한다. 요컨대, 20세기 한의학은 한국 사회의 ‘근대성’과 ‘권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 음양오행론, 이분법적 패러다임론으로는 한의학의 과학화, 산업화 등을 설명할 수 없어
한의학이 음양오행론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렇기에 양의학은 한의학이 ‘과학’이 아니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한의학이 음양오행의 단일 원리에 기원한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과학’이 아니라는 양의학의 비난에 한의학이 서양 의학과는 인식론이 다르다고 맞받아치는 것에 대해서도 저자는 ‘패러다임론’, ‘본질론’, ‘세계관’에 입각한 이분법적 인식이라고 비판한다. 과학기술학의 패러다임론은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제기된 이론인데, 이에 따르자면 한의학과 양의학의 패러다임은 서로 공통되는 체계를 가지지 못한다(공약불가능성). 쿤의 패러다임론은 과학혁명의 비약을 통해서만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다고 본다. 이 패러다임론을 통해서는 지난 백 년 동안 이루어진 한의학의 근대화와 전문화, 과학화와 산업화를 설명할 수 없다.
20년 전과 비교해도 한의계는 놀라울 정도로 성장했다. 한의계는 이 짧은 기간에 어떻게 비약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으며, 또 우리는 이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김종영은 경험연구를 바탕으로 직접 고안한 ‘창조적 유물론’(creative materialism)과 ‘권력지형’(powerscapes)이라는 답변을 제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