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강릉시에 자리한 한국과학기술연구원(키스트) 강릉분원에는 식물을 ‘제조’하는 공장이 있다. 지난달 12일 오후 ‘스마트-유팜’이라 이름 붙은 시설 옥상의 유리온실에서는 수백 개의 네모상자에 담긴 고추들이 컨베이어벨트 위에 놓여 일광욕을 하고 있었다. 네모상자 위 천장에는 온습도 센서가 달려 있고 구름이나 눈 때문에 광량이 적을 때를 대비해 램프도 설치돼 있었다. 박재억 키스트 연구원은 “고추들은 상자에 담긴 채로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하루 두 번씩 ‘건강검진’을 받는다.”며 “한곳에 오래 두면 환경에 영향을 받아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다시 나올 때는 건강 상태에 따라 조금씩 위치를 바꿔준다. 상자에 이름표가 달려 있어 섞일 염려는 없다.”고 설명했다.


키스트 강릉분원은 스마트팜, 곧 식물공장을 2015년부터 구축하기 시작했다. 양중석 스마트팜융합연구센터장은 “식물공장은 식물을 공산품처럼 재배하는 것으로 균일한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공장 안 광량, 온도, 습도 데이터를 수집해 중앙과 구석에 고르게 분포하도록 조절하는 기술이 핵심이다.”라고 말했다. 특히 식물의 잎 크기 등 생장 상태를 지속적으로 촬영하는 자동식물영상측정분석시스템은 식물공장을 산업화하는 밑돌이다.


강릉분원 스마트팜은 최근 국내 화장품제조업체에 인삼 재배 ‘레시피’를 제공했다. 이 회사는 화장품 제조에 인삼 열매를 쓰는데 노지에서 재배할 경우 주변에서 살포한 농약이 함유될 염려가 있다며 키스트 쪽에 식물공장 재배법 구축을 의뢰했다. 스마트팜연구센터는 13개월 동안 두 번 꽃을 피워 생산력을 두 배로 높이고, 화장품 제조에 쓰이는 유효 성분도 더 많이 나오는 재배 매뉴얼을 작성했다.


공장 제품 조립라인처럼 생긴 식물 재배틀에서는 케일과 청경채가 자라고 있었다. 스마트팜연구센터는 캐나다와 국제공동협력연구로 셀러리·비트·케일 등의 재배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보조금으로 여유 있게 살다 보니 비만·당뇨가 많은 캐나다 원주민들의 건강을 개선하기 위해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엽채류 시설재배 스마트팜의 일환이다.


연구센터는 향후 대마 연구도 시작할 예정이다. 대마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마약으로서는 규제 대상이지만 진통제·마취제 등 의료 활용도가 높다.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국내 연구는 미흡하다. 강릉분원은 최근 삼베가 지역 특산물인 안동시와 업무협약을 맺고 규제 당국의 허가를 받는 등 본격 연구 준비 작업을 마쳤다.


하성도 강릉분원장은 “눈도 많이 오고 광량·광질도 좋은 편이 아닌 강원도 강릉에 식물공장을 구축한 것은 열악한 환경에서 약효가 많은 천연물이 더 잘 자랄 수 있기 때문”이라며 “북한 지역의 개마고원이나 백두산에 천연물 단지를 만들어 연구하면 여러모로 쓸모가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키스트 강릉분원은 스마트팜연구센터와 함께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와 천연물소재연구센터로 구성돼 있다. 천연물 성분 발굴과 분석, 천연물 재배, 제품 개발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을 전주기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을 확보한 것이다. 천연물인포매틱스연구센터는 최근 3년의 연구를 통해 자생식물인 고추나물에서 분리한 광역학 치료 후보 물질(KGn-C)을 개발했다. 연구팀은 이 물질이 피부 건선 치료에 쓰이는 솔라렌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셀러리에서 유래한 솔라렌을 바르고 자외선 에이를 쬐어주는 방식으로 건선을 치료하는데, 파장이 짧아 피부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단점이 있다. 케이지엔-시는 660나노미터의 빛을 받았을 때 효과가 나타나 깊숙한 진피까지 침투할 수 있다.


천연물소재연구센터에서는 아토피 치료에 효험이 큰 물질을 함유한 천연물을 찾아냈다. 2001년 이후 미국 식품의약국(FDA) 승인을 받은 아토피 치료제는 없다. 국제 제약회사들은 현재 신약 후보 타깃 물질로 인터루킨-4와 스핑크5에 주목하고 있다. 천연물소재연구센터는 인터루킨-4의 발현은 떨어뜨리고 스핑크5는 증가시켜주는 천연물 소재 후보를 발굴하기 위해 2,500여 점의 천연물 라이브러리를 검색했다. 최종적으로 우리나라 논·밭둑에서 흔히 찾을 수 있는 수염가래꽃을 의약품 후보로 선정하고,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대나물·노랑어리연꽃·땅콩을 후보군으로 가려놓았다.


강릉분원에는 스마트팜에서 고추나물이나 수염가래꽃 같은 천연물을 재배하는 최적의 조건을 찾아낸 뒤 대량생산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할 수 있는 실증팜이 구축돼 있다. 6.5m 높이의 비닐온실인 실증팜에는 토마토가 공중에 매달린 채 자라고 있었다. 뿌리는 흙이 아니라 섬유로 된 양액공급기에 박혀 있고 줄기에는 고른 모양의 토마토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이주영 스마트팜연구센터 선임연구원은 “질소·인·칼륨·마그네슘 등 14가지 원소가 섞인 양액을 자동으로 공급하는 장치를 개발했다.”며 “토마토의 경우 이마트·홈플러스 등 대형 매장에서 파는 80%가 이미 양액으로 재배한 것”이라고 말했다. 실증팜에서는 광양과 광질을 조절하면서 잎과 열매의 모양과 색깔을 수시로 영상화해 최적의 재배 조건을 데이터화하고 있다. 실증팜 한쪽에서는 건조화 지역에서의 적응력을 실험하기 위해 최소한의 수분을 공급하며 토경 실험을 하고 있었다. 강릉분원은 현재 인도네시아와 업무협력을 맺고 스마트팜 기술 이전을 추진 중이다. 또 아랍에미레이트와는 ‘데저트팜’, 러시아와는 ‘툰드라팜’ 공동연구를 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출처: http://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9044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