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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대로 하자면 사람 해치는 표창 같으나 마개가 예쁘고 껍데기에 뿔이 달린 녀석으로 섬에서는 꾸죽, 꾸적이라 부른다. 소라는 내가 어떤 역할을 하고 맨 처음 일당으로 받아본 것이기도 하다. 이렇게 된 일이다.


할머니가 물질을 나갈 때 장작을 들고 따라간 게 여덟, 아홉 살 때이다. 그때는 해녀들, 참 많았다. 밭일 집안일에 지쳐도 물질을 해야만 현금을 쥘 수 있기에 열댓 살 어린 처녀에서부터 환갑 할머니들까지 그 일을 다녔다.


출발은 한 명씩이지만 이 골목 저 골목에서 나와 붙어 마을이 끝날 때쯤에는 수십 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그들이 간 곳은 해수욕장 너머 갯돌이 길게 늘어선 곳. 그들은 도착하자마자 물안경 쓰고 서둘러 물속으로 들어갔다. 물안경은 일반 안경처럼 동그란 알 두 개짜리였다(여러 해 뒤 알 하나짜리 커다란 물안경을 사드렸는데 할머니는 멀미가 난다며 다시 돌려주었다). 내 일은 넓은 바닷가에 일정한 간격을 두고 널려 있는 함지박과 옷가지를 지키는 거였다.


무료함을 본격적으로 맛본 게 그때가 처음이었다. 사람이 쓰는 물건은, 주인이 손을 떼면 그 자세 그대로 한정 없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것도 그때였다. 물이 나면서 검푸른 해초 더미가 거듭 솟아났고 수십 벌의 옷가지는 갯바위 위에서 햇살만 받았다. 나는 갯돌을 뒤졌고, 천천히 흘러가는 구름을 보았고, 포로롱 날아가는 바다 직박구리 울음소리를 들었다. 시간은 물보다 더디 흘렀다. 다시 밀물이 시작되고도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고 비행기가 세 대째 지나갔다.


그리고 모든 기다림에는 끝이 있듯, 휘유휘유 숨비소리를 내며 그들은 돌아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미련처럼 다 와서까지 자맥질을 하더니 일제히 입술을 부르르 떨면서 올라왔다. 배불뚝이가 된 헝설이(채집물을 넣는 동그란 그물)에서는 푸른 바닷물이 뚝뚝 떨어졌다.


쌀쌀한 가을날씨 아래서 해녀들은 썰물 앞뒤로 세 시간 넘게 물질을 한 것이다. 바다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하는 것은 장작불 일으켜 몸을 녹이는 거였다. 때아닌 불이 바닷가에서 타올랐고 모두들 손발을 앞으로 내밀며 코를 훌쩍였다. 


“짐 잘 지켰냐?”
한 아주머니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다섯 번이나 옷가지의 수를 세었고 바람에 휘날리려고 하는 것은 돌로 눌러놓았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보답으로 소라를 하나 주었다. 몇몇 해녀가 거기에 동참했다.   


자그마한 전복을 도려내 입에 넣어준 할머니는 소라 두 개를 낫 뒷등으로 깨고 남은 서너 개는 장작불가에 얹어주었다. 생것은 오독오독 씹혔고 불 위에 있는 놈은 김을 내며 익어갔다. 처음으로 받은 일당이었다. .....중략


몇 명 남지 않았지만 지금도 섬에서는 해녀가 소라를 딴다. 직접 사면 요즘 1킬로그램에 6천 원 정도 한다. 이 녀석의 장점은 회가 된다는 것이다. 동그란 입구 옆 단단한 은색 바탕 쪽을 때려서 깨고 내장 부분을 모두 떼어낸 다음 씻어 엷게 잘라먹는다. 섬에서는 주로 기름소금에 찍어먹는다. 생것일 때는 소라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는다. 맛이 달고 맑다.


삶았을 때는 젓가락을 찌르고 껍데기를 돌려 빼낸다. 그리고 몸통을 둘러싼 얇은 막은 벗겨낸다. 내장 끝 부분에 달린 노란 생식소는 아주 고소한데, 변비 해소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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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창훈 작가의 산문집 <내 밥상 위의 자산어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