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필요 이상의 공을 세우려는 소양(昭陽)에게 책사 진진(陳軫)이 그러면 도움도 안 되고 괜히 목숨만 위험해진다고 말리며 사족의 비유를 들었다는 이야기가 전국책(戰國策)에 나온다.
“뱀을 빨리 그린 사람이 상으로 술을 마실 수 있게 하는 내기에서 제일 먼저 뱀을 그린 사람이 ‘나는 뱀 발도 그릴 수 있다.’라며 덧그리자, 다른 사람이 술병을 빼앗으며 ‘뱀은 발이 없으니 네 그림은 무효’라고 했습니다.”
비유 속에 등장할 뿐, 누군가 사족을 보았던 경험에서 나온 고사성어는 아님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사족이 존재할 수 있을까? 다른 말로 하면 뱀에게 돌연변이로 다리가 생길 수 있을까? 답부터 말하자면 가능하다.
모든 동물은 배아가 자라면서 머리, 가슴, 배, 다리, 꼬리가 정해진 마디에서 생겨난다. 체절, 즉 신체 구획이 뒤죽박죽되면 상당히 곤란하다. 예를 들면 팔이 나올 자리에 음경이 나오는 일이 발생한다. 이 몸의 순서를 결정하는 것은 핵심 스위치 역할을 하는 툴킷 유전자 (genes toolkit)인데, 혹스 유전자 (hox gene)라고 부른다.
혹스가 작용하는 방식은 코딩과 비슷하다.
인간의 척추로 비유하면
1행: 경추 만들기
2행: 1행을 7번 반복
3행: 흉추 만들고, 늑골과 쇄골 만들어 연결하고, 견갑골 만들어 연결하고, 견갑골 옆으로 상완골, 요골, 척골, 손목뼈, 손등뼈, 손가락뼈 만들어 차례로 연결
4행: 흉추와 늑골 만들기
5행: 4행을 11번 반복
6행: 요추 만들기
7행: 6행을 5번 반복
8행: 천추 만들고, 대퇴골, 슬개골, 경골, 비골, 발목뼈, 발등뼈, 발가락뼈 만들어 차례로 연결
이런 식으로 순서대로 명령어가 활성화되어 몸의 순서가 정해진다.
그런데 뱀은 이 명령 코드 5행에서 돌연변이가 일어난 것과 비슷하다.
4행: 흉추와 늑골 만들기
5행: 4행을 11번 반복 * 4행을 11번 반복 * 4행을 11번 반복 * 4행을 11번 반복 * 4행을 11번 반복.....
그러니까 뱀은 수백 개의 척추가 전부 인간의 흉추인 셈이다. 형태의 대격변을 가져온 돌연변이지만, 진화에서 뱀처럼 다리가 없고 가늘고 긴 형태가 적어도 26번 독립적으로 수렴진화한 것을 보면, 그렇게 치명적인 돌연변이는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뱀에게 다리가 생기려면, 다리를 만드는 유전자들이 전부 다 새로 생겨나야 할까? 그렇지 않다. 뱀에게도 3, 6~8행에 해당하는 유전자가 다 있다. 다만 5행의 무한 반복 때문에 비활성화되어 있을 뿐이다. <3, 6~8행 잠금>이란 명령어가 삽입된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따라서 <3, 6~8행 잠금>이란 부분만 삭제되어 다시 활성화되면 다리가 생길 수 있다.
실제로도 다리가 남아 있는 뱀 화석들이 발견되었고, 중국에서 다리 있는 뱀이 발견된 바 있다. 중국의 환경 오염으로 혹스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긴 것이 아닐까 추정된다고 한다.
사족의 이미지와 가장 비슷한 신체 디자인은 아마 양서류인 사이렌 또는 지렁이 닮은 파충류인 장님도마뱀에서 볼 수 있다. 자세히 봐야 보이는 아주 작은 앞다리가 있다. 이렇게 작은 다리로 대체 뭘 할까?
[사족]
⦁장님뱀은 부엉이가 자기 둥지에 잡아다 놓고 청소를 시키는 것으로 유명하다.
⦁독사는 잘못해서 혀 깨물면 자기 독에 죽는다.
⦁사족의 실제 모습이 궁금한 독자는 여기로 (링크 바로가기 클릭)
⦁사이렌의 모습이 궁금하면 Sirenidae, 멕시코지렁이도마뱀의 모습이 궁금하면 Bipedidae로 검색해보길 바란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