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에서는 ‘여름 한약 효과 없다.’는 도시 전설이 아마도 ‘가을에 구충제 복용 전에 한약을 복용해 봤자 기생충이 빼앗아 먹는다.’는 논리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론했다. 현재는 기생충 감염률이 현저히 낮기 때문에 딱히 구충제 복용 후 한약을 복용할 필요가 없다. 여름에도 한약을 복용할 수 있고, 특히 열사병이나 탈수, 체력 저하, 냉방병 등 여름의 계절병에 걸렸을 때는 한약이 큰 도움이 된다.
그렇다면 ‘보약은 가을에 복용한다’는 썰 또한 구충제와 관련되었을까?
그럴 가능성이 높다.
과거 기생충 감염이 만연하던 시기에, 1년에 두 번 봄과 가을에 구충제를 먹는 것이 권장되었다. 기생충 중에 가장 흔했던 것이 회충이었는데, 회충은 인분 (사람 대변)을 통해 전파된다.
인분 속에 회충 알이 있는데, 인분을 비료로 배추밭에 뿌리면 회충 알이 배추에 붙고, 이 배추를 먹으면 회충 알이 사람 배 속으로 들어간다. 회충 알이 두세 달 후에 성충이 되어 또 알을 사람 배 속에 낳으면, 인분 속에 회충 알이 있게 된다... (이하 반복되는 사이클)
1957년에 개발된 릴리 제약의 구충제 텔미드 광고 문구를 보자.
“기생충이 많은 사람은 보약을 아무리 써도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인체 내에 2종 이상 5-6종의 기생충을 대부분이 보유하고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시인하는 사실이다.”
1965년의 구충제 민테졸 광고 문구를 보자.
“누구를 위하여 밥을 먹는가/전 국민의 95%가 기생충 환자/한국인은 화학비료를 쓰지 않고 인분을 사용한 야채를 먹기 때문에 기생충 감염률이 높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
배추는 겨울 김장 때 많이 먹게 된다. 이때 회충 알이 사람 배 속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왜 겨울 김장 때 구충제를 복용하지 않을까? 알에는 구충제가 듣지 않기 때문이다. 알에서 까고 나와 어른 회충이 되어야 비로소 구충제로 죽일 수가 있다. 따라서 어른 회충이 되었지만, 아직 알을 대량으로 낳지는 않았을 두세 달 후에 구충제를 먹는 것이 효과적이다. 즉, 겨울 김장 때 알 형태로 몸에 들어온 회충을 봄에 죽이기 위해 구충제를 복용했다고 볼 수 있다.
봄을 지나 여름이 되어 겉절이로 배추를 많이 먹게 되는 시기가 되면 또 회충 알이 몸에 들어간다. 이 회충 알이 어른 회충이 되는 가을에 때맞추어 구충제를 복용했다. 그래서 봄, 가을에 맞춘 구충제 복용이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귀한 한약이 기생충 밥이 되지 않게, 구충제로 기생충을 제거한 뒤인 가을에 비로소 한약을 복용하자는 생각이 널리 퍼진 것으로 보인다. 가을은 수확 철이라 돈의 융통과 인심이 넉넉해지는 시기라, 춘궁기인 봄에 비해 한약 복용에 유리하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구충제 복용 시기와 한약 복용을 연결 지을 필요가 없는 시대이기 때문에, 한약을 굳이 가을에 복용할 필요는 없다. 한약 치료가 필요한 시기에 복용하면 된다.
© 한의사 김나희의 신화와 전설 근거중심 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