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절벽 (demographic cliff)이라는 말을 요즘 많이 듣습니다. 전체 인구에서 생산 가능 인구, 즉 15-64세 사이의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줄어드는 현상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1980년대 80만 명에 달했던 신생아 수가 갈수록 줄어, 2002년 50만 명, 올해 40만 명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결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결혼 후에도 아기 낳기를 꺼리는 세태가 반영된 결과입니다.
그런데 반대로 아기를 낳고 싶은데 낳지 못해 고생하는 부부도 증가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에도 1년 정도 아이가 생기지 않는 경우를 불임이라고 하는데, 전체 부부 7쌍당 1쌍꼴로 나타나고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분들의 임신 성공을 위해 시험관아기 시술과 같은 임신 보조생식술을 지원하기도 하고, 한의학계에서도 임신을 돕기 위한 여러 시범사업들이 성공적으로 시행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이분들의 고통을 덜어 드리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습니다.
진료하다 보면 임신 잘 되는 법에는 어떤 것이 있냐고 물어보십니다. 그러면 저는 ‘부부 모두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것이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이런 말을 들으시면 당연한 소리를 하느냐라는 표정을 지으시지만, 이렇게 말씀드리는 것은 연구 결과로 밝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생활습관이나 식습관을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015년 호주 연구팀이 이전에 발표된 30개 논문을 데이터를 모아 메타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만 남성이 정상 체중인 남성에 비해 불임을 경험할 확률이 66% 증가하고, 생식보조술로 출산에 성공할 확률이 35% 감소한다고 밝혔습니다 [1].
그리고 비만 남성의 정자 운동성이나 정액 배출량, 정자 수와 형태 등은 정상 체중 남성과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낮은 미토콘드리아 막 전위 (mitochondria membrane potential), DNA 절편화 (fragmentation), 비정상적인 정자 형태가 증가한다고 합니다. 낮은 미토콘드리아 막 전위나 DNA 절편화는 활성산소의 증가 때문이고, 활성산소의 증가는 비만과 관련이 있기 때문으로 생각됩니다.
여성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여성의 외모를 중시하는 이야기는 아니니 오해 없길 바라며 말씀드리면, 허리와 엉덩이둘레의 비율이 0.7인 여성이 일반 여성에 비해 여성 생식호르몬인 에스트라디올 수치도 높고 임신 확률도 높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반대로 허리둘레가 엉덩이둘레에 비해 긴 경우 (허리와 엉덩이둘레 비율이 1 이상)는 배란장애의 위험성이 증가합니다. 배란장애의 대표적인 질환인 다낭성난소증후군을 보이는 여성의 80%는 과체중 이상의 비만 상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 다른 연구도 있습니다. 호르몬 중 항뮬러관호르몬 (AMH)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 호르몬은 여성의 난소의 작은 난포들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소위 ‘난소 나이’를 말해주는 난소 예비능 (ovarian reserve)의 지표로 이용되고 있는 호르몬입니다. 미국에서 23-35세 1,654명의 여성을 대상으로 진행된 연구에서 비만한 여성이 정상 체중을 가진 여성에 비해 호르몬 수치가 평균 23.7% 낮고, 현재 BMI와 18세 때의 BMI 모두 음의 상관관계를 보였습니다 [2]. 결과적으로 비만할수록 항뮬러관호르몬의 수치가 낮다는 것이고, 난소의 예비 난포들의 수가 적어 예비능이 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질병이 비만과 관련이 있습니다. 성공적인 임신을 위해 여러 시술이나 치료를 하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임신을 하기 위한 몸을 천천히 시간을 두고 만드는 것이 급선무입니다. 단순히 치료나 시술로 임신이 잘 되는 것이 아니고, 체중을 감량하거나 몸이 바뀌어야 여러 호르몬의 균형이 생기고 컨디션이나 면역력이 좋아지면서 임신 기능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지름길이 있는 것이 아니고 시간을 두고 건강한 생활습관과 식습관으로 차근차근 몸을 변화시키면 간절히 원하는 임신에 성공하실 수 있습니다.
References
[1] Campbell JM, Lane M, Owens JA, Bakos HW. Paternal obesity negatively affects male fertility and assisted reproduction outcome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Reprod Biomed Online. 2015 Nov;31(5):593-604. doi: 10.1016/j.rbmo.2015.07.012.
© 닥터 이훈의 엄마와 아이 건강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