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빵맨, 화생방 훈련을 받다
신기별을 지키기 위해 곧 우주로 떠나야 하는 호빵맨은 자신의 전투력을 키우고 싶었다. 전투력을 지금보다 더 키워야 적을 더욱 통쾌하게 무찌를 수 있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군인들이 받는 특수 훈련을 받기로 했다. 그 특수 훈련의 첫 단계는 바로 화생방 훈련이었다.
난생 처음 들어가 보는 화생방 훈련실이었다. 훈련실의 문이 닫히는 순간 어디선가 가스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스는 너무나 맵고 자극적이었다. 가스의 입자가 눈과 코와 입과 목구멍을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이대로 가다간 죽을 것만 같았다. 어느새 눈물과 콧물과 침이 줄줄 흐르고 기침이 연이어 터지고 있었다.
마침내 훈련 시간은 끝이 났고 훈련실의 문이 열렸다. 호빵맨은 얼른 밖으로 뛰쳐나왔다. “화생방 가스가 이렇게 독한 것이었나?” 호빵맨은 정신을 차리기 힘들 지경이었다. 여전히 얼굴에서는 분비물이 줄줄 흐르고 있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서야 겨우 진정이 되었다. 눈물과 콧물과 침도 더 이상 흐르지 않고 눈과 코와 입과 목구멍을 송곳처럼 찔러대는 것 같던 느낌도 사라졌다.
문제는 일주일 후 또 화생방 훈련이 예약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호빵맨은 다음 훈련을 어떻게 치러야 할 지 벌써부터 걱정이 되었다. 이 때 어디선가 세균맨이 나타났다. 그리고 호빵맨의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내가 너에게 신비의 캡슐을 줄게. 이 캡슐만 먹으면 화생방 훈련을 받을 때 눈물도 콧물도 침도 흐르지 않을 거야. 너한테만 특별히 주는 거야.” 그렇게 세균맨은 호빵맨의 손에 웬 캡슐을 쥐어주고 사라졌다.
마침내 두 번째 화생방 훈련이 시작되었다. 첫 훈련 때 고생했던 기억 때문에 호빵맨은 훈련실의 문이 닫히고 가스가 새어 나오기 시작하자 얼른 세균맨이 줬던 캡슐을 삼켰다.
그런데 이상했다. 캡슐약을 삼키자 정말 눈물도 콧물도 침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어떤 분비물도 나오지 않자 가스의 입자가 눈과 코와 입과 목구멍을 더욱 세게 찔러대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전보다 더 괴로웠다. 훈련이 끝나고 훈련실의 문이 열렸다. 호빵맨은 얼른 바깥으로 뛰쳐나왔다. 괴로움이 진정되기까지의 시간이 첫 훈련보다 오히려 더 오래 걸렸다.
그날 밤 세균맨이 다시 찾아왔다. 호빵맨은 세균맨에게 따졌다. “너 왜 날 속인 거야? 네가 준 약을 먹으면 훈련을 편하게 받을 거라며? 그거 먹으니까 더 힘들었다고!” 그러자 세균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내가 언제 너한테 훈련이 더 편해질 거라고 했니? 나는 눈물도 콧물도 침도 흐르지 않을 거라고만 했잖아! 네가 혼자서 착각한 거지!” 이렇게 말하고는 세균맨은 사라져 버렸다.
호빵맨은 그제야 깨달았다. 세균맨이 자신을 골탕 먹였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물청소를 하듯이 화생방의 가스 입자가 눈물과 콧물과 침에 실려 나와야 그 입자들이 몸 속 깊숙이 침입하지 않는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 세균맨이 준 그 캡슐은 분비물의 배설을 봉쇄하는 약이었기에 결과적으로 화생방 훈련을 더욱 힘들게 만든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했다.
주위에 세균맨 엄마들이 많다
짐작했겠지만 위의 호빵맨과 세균맨 이야기는 가상의 이야기다. 그런데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들이 엄마와 아이 간에도 일어나고 있다.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콧물을 줄줄 흘리는 것이 엄마는 보기 너무 안타깝다. 얼른 저 콧물이 좀 그쳤으면 좋겠다. 그래서 약을 타 와서 먹였다. 이 약은 콧물이 줄줄 흐르지 않게끔 해주는 신비의 약이라고 들었다. “저 콧물만 흐르지 않으면 감기는 낫는 거야.” 엄마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약을 먹일 때에는 콧물이 쑥 그쳤다. 그런데 얼마 지나자 또 콧물이 나는 것이다. 콧물이 안 나오기에 다 나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그래서 또 다시 약을 먹였다. 그러자 또 콧물이 쑥 그쳤다.
짜증나게도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콧물뿐만 아니라 가래기침이 찾아왔다. 콜록콜록 아이가 계속 기침을 한다. 이번에도 약을 먹였다. 콧물도 나오지 않게 하고 가래도 나오지 않게 하는 약을 말이다. 왜 이렇게 감기가 안 낫는 거냐며 무척이나 투덜거리면서 말이다.
화생방 가스의 입자는 감기 바이러스와 같다. 가스 훈련 후에 터져 나오는 눈물과 콧물과 침은 감기에 걸린 후 터져 나오는 콧물과 기침과 가래와 같다. 화생방의 가스가 눈물과 콧물과 침에 실려 나오듯이, 면역 세포에 의해 처리된 바이러스의 사체는 콧물과 기침과 가래에 의해 실려 나온다.
세균맨이 분비물을 막아버리는 신비의 캡슐을 주었듯이 엄마들 역시 분비물을 막아버리는 양약을 아이에게 준다. 세균맨은 호빵맨을 골탕 먹이기 위해 그랬지만 엄마들은 아이를 위하는 마음에 신비의 약을 주었다. 하지만 엄마는 이걸 미처 몰랐나 보다. 저 콧물과 가래는 감기가 낫기 위해서 생기는 것임을 말이다. 바이러스 입자가 콧속과 입속으로 깊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서 생기는 것임을 말이다. 눈물과 콧물과 침이 분비되어서 화생방 가스 입자의 침투를 막아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세균맨이 준 캡슐은 오히려 화생방 훈련의 괴로움을 더 오래 끌었다는 것을 말이다. 콧물이 뚝 그치고 가래가 뚝 그치게 하는 약을 먹이자 오히려 바이러스를 물청소하듯이 쓸어낼 수가 없게 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가 호빵맨이라면 엄마는 세균맨이었던 것이다.
감기 퇴치법 손자병법
아이들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겪는 질환은 대부분 감기이다. 이 감기를 잘 이겨내면 아이의 면역력은 한 단계 상승하고 체력은 더 튼튼해질 수 있다. 그런데 어린 자식이 감기에 걸려 열을 끙끙 앓고 콧물을 줄줄 흘리고 기침을 콜록콜록 하고 있으면 엄마의 마음이 찢어진다. 그래서 ‘빨리’ 낫게 하고자 이런저런 약을 먹이게 된다.
감기는 ‘빨리’ 보다 ‘제대로’ 낫는 것이 더 중요하다. 지금 빨리 열을 내리는 것보다 제대로 열을 내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재발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콧물이 빨리 사라지는 것보다 제대로 사라지는 것이 더 중요하다. 그래야 기침과 가래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감기를 ‘제대로’ 낫게 할 수 있을까? 아래의 세 가지 방법을 추천한다.
첫째, 따뜻하고 촉촉하게 해줘라. 무엇을 따뜻하고 촉촉하게 해줘야 할까? 바로 코에서부터 폐에까지 이르는 호흡기이다. 사람의 다섯 장기 중에서 외부의 공기와 접촉하는 장기가 바로 폐이다. 이 폐는 한기(寒氣)에 가장 취약하다. 그래서 “폐는 차가운 기운을 싫어한다.” 라고 동의보감에서 설명하고 있다. 따라서 아이가 감기에 걸렸을 때에는 절대 찬 물이나 찬 음료수를 마시게 하지 말아야 한다. 반드시 뜨거운 물, 따뜻한 물을 마시도록 해야 한다. 또한 호흡기를 촉촉하게 해줘야 한다. 호흡기는 차가운 것도 싫어하지만 건조한 것도 싫어한다. 호흡기가 촉촉해야 감기 바이러스를 콧물과 가래에 실어서 쉽게 배출시킬 수 있다. 그러니 뜨거운 물을 컵에 받아서 그 수증기를 코로 흡입한 후 물이 살짝 식어서 따뜻해지면 아이가 마시게 하는 방법을 써보라. 뜨거운 물과 수증기가 호흡기를 따뜻하게도 해주고 또 촉촉하게도 해 줄 것이다.
둘째, 수족구(手足口)를 쉬게 하라. 여기서 수족구는 장바이러스에 의해 감염되어 손발이나 입안에 발진과 궤양이 생기는 질환이 아니라, 단어의 한자 뜻 그대로 손과 발과 입을 말한다. 먼저 수족(手足)을 쉬게 해줘라. 아이의 손발을 고단하게 하지 말고 충분히 휴식하도록 해주란 말이다. 감기에 걸려 열이 끓고 콧물과 기침으로 힘든 아이를 어린이집이나 학원에 보내지 말고 그저 푹 쉬게 해줘라. 푹 쉬게 하고 일찍 자게 하면 아이의 모든 에너지가 면역계에 집중되어 감기 바이러스를 빨리 퇴치할 수 있다. 다음으로는 구(口)를 쉬게 해줘라. 감기에 걸린 아이의 입을 보양식으로 고단하게 하지 말라는 말이다. 감기 걸린 아이에게 든든하게 먹어야 힘이 불끈 솟는다고 하면서 갈비 구워주고 삼겹살 구워줘서는 안 된다. 아이의 에너지는 면역계에 집중되어서 열심히 감기와 싸우고 있는데 기름진 음식으로 소화계에 부담을 줘서는 안 된다. 게다가 감기에 걸리면 대부분의 아이들은 입맛 없어 한다. 그럴 때 억지로 먹이려 하지 마라. 오히려 최소한의 양으로 최대한 담백하게 먹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소화계가 아닌 면역계로 에너지가 실릴 수 있다.
셋째, 삼일만 기다려 봐라. 특히 이는 엄마들이 가장 걱정하는 발열에 관한 얘기이다. 아이가 감기에 걸려 열이 끓으면 엄마들은 정말 미칠 것만 같다. 그런데 체온이 정상보다 올라가는 경우는 크게 나누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몸이 스스로 체온을 올리고자 해서 체온이 올라가는 경우이고, 또 하나는 몸이 스스로 체온을 올리고자 하지 않았는데도 체온이 올라가는 경우이다. 앞의 경우를 ‘발열’이라고 부르고 뒤의 경우를 ‘고체온’이라고 부른다. 발열은 몸의 중추가 시키는 대로 체온이 올라간 상태이다. 고체온은 몸의 중추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저 마음대로 체온이 올라간 상태이다. 발열이 생기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감기이고, 고체온이 생기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열사병이다. 감기로 인해 생기는 발열은 때가 되면 몸이 스스로 체온을 정상으로 떨어뜨린다. 그 시간까지는 아이가 앓도록 두어야 한다. 그 기간은 대략 삼일 정도이다. 해열제를 써서 빨리 체온을 떨어뜨리기 보다는 아이가 충분히 앓은 후 열이 저절로 떨어지도록 기다려줘야 한다. 물론 아이마다 체력이 다르니 어떤 아이는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어떤 아이는 닷새가 걸릴 수도 있을 것이다. 대부분은 삼일 전후에 고열이 떨어진다. 삼일만 기다려 봐라.
감기 한약의 도움을 받아 보자
아이가 감기로 고생하고 있다면 해열제나 항생제 보다는 감기 한약의 도움을 받아 보자. 아이에게 열이 난다면 열의 정도에 따라 대청룡탕, 구미강활탕, 계지탕 등의 한약을 쓸 수 있다. 콧물이 줄줄 흐른다면 소청룡탕, 배농탕 등의 한약을 쓸 수 있다. 목이 아프다고 한다면 청화보음탕, 형개연교탕 등의 한약을 쓸 수 있다. 기침이 유독 심하다면 사백산, 정력대조사폐탕 등의 한약을 쓸 수 있다. 만약 아이에게 항생제나 해열제를 많이 먹이는 것이 걱정되는 엄마라면 감기 한약의 도움을 받아 보자. 아이의 면역력을 한 단계 더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 한의사 방성혜의 엄마가 읽는 동의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