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5일 윤 대통령은 서울 성북구 한국과학기술연구원에서 열린 ‘2024년 과학기술인·정보방송통신인 신년 인사회’에서 “임기 중 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확대하고, 혁신적·도전적인 연구개발은 돈이 얼마가 들어가든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 예산 문제는 정부에 맡겨놓으시고 여러분은 세계 최고를 향해 마음껏 도전하시기 바란다”고 했다.
얼마 전 연구개발 예산을 크게 삭감해놓고 “임기 중 대폭 확대”하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발언이었다.
연구원들은 윤 대통령의 모순적 발언을 해석하려 하면서 글로벌 연구개발 문제를 꺼냈다.
글로벌 연구개발이란 외국 연구기관과의 공동 협력 RnD를 뜻한다.
“대통령이 전체 연구개발 예산을 크게 줄이면서 글로벌 연구개발 예산은 뜬금없이 지난해 5075억원에서 올해 1조8천억원으로 3배 이상 (355%) 늘렸어요.”
“대통령이 다른 나라 순방을 많이 하잖아요. 순방 때마다 외국 연구소를 찾는 일정이 많아요. 그렇다 보니 올해 순방 때도 국제 연구개발에 투자한다는 걸 보여주려는 것 같아요. 결국 글로벌 연구개발비 증액은 순방용 생색내기가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죠.”
“과학기술 현장을 잘 모르고 연구개발 예산을 삭감한 대통령이 뭘 알고 그랬겠어요? 이렇게 뚱딴지 같은 정책이 나올 때는 천공 강의를 봐야 한다고 하더군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전체 RnD 연구개발 예산 : 31조1000억에서 26조5000억으로 -4조6천억 (15%) 삭감
그 중 글로벌 RnD 예산 : 5075억에서 1조8000억으로 +1조2925억 (355%) 증액
지난해 10월 12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중소벤처기업부 국정감사에서 윤 대통령 부부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술인 천공이 거론됐다. 김성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천공이 같은 해 1월 ‘한국에는 과학자가 필요 없다. 외국에서 발표한 과학 논문을 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한 유튜브 영상을 틀었다. 김 의원은 “연구개발 예산 삭감 배경을 놓고 ‘우리나라에 과학자는 필요 없다’고 주장한 천공이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온라인에 퍼지고 있다”며 “대통령과 정부가 연구개발 삭감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하게 밝히지 않으니 이런 소문이 도는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안보와 기술주권이 강조되고 있는 상황에서 글로벌 연구개발의 실효성에 대한 회의도 크다.
이상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우리가 같이하고 싶어 하는 선진국의 연구진은 쉽게 기술이나 실험 성과를 공유하지 않는다. 충분한 준비가 안 된 상황에서 무리하게 글로벌 RnD를 추진하면 지식재산권·기술이전 등에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했다.
이경진 전국공공연구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은 “미국 나사나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같은 유명 연구소와 협력할 수 있는 분야에서만 글로벌 연구개발비를 딸 수 있다는 우려가 국내 연구진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다른 나라 연구소들은 협상에서 ‘갑’이 되고, 우리는 ‘을’이 될 수밖에 없다. 국내 연구진이 불리한 협약을 맺고 기술은 이전받지 못하면 결국엔 글로벌 연구개발은 외화 유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회입법조사처도 지난달 말 ‘과학기술 국제협력 법제 진단과 제언’을 주제로 발간한 ‘이슈와 논점’ 보고서에서 “기존에도 여러 부처나 기관이 상호 협의 없이 외국의 유명 기관에 중복적으로 협력을 요청해 우리나라가 비용을 지원하면서도 협상력이 떨어지는 문제가 있었다. 정부가 우수 연구진과의 협력(만)을 강조하면 역선택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https://www.hani.co.kr/arti/science/science_general/112420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