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의료 체계에도 변화가 오고 있다. 전통적인 ‘대면’ 방식에서 ‘비대면’ 디지털 형식으로 빠르게 전환할 것이란 기대가 있다. 감염병 확산 같은 위기 상황에서 방역과 예방 활동을 개인이나 전자기기에 상당 부분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실감한 만큼, 코로나19 이후 의약시장의 ‘디지털화’와 ‘개인화’는 가속화될 것이란 전망이다.


먹거나 주사를 놓는 방식으로 투여하는 기존 약과 달리 디지털치료제는 주로 기기나 소프트웨어, 모바일 응용 소프트웨어(앱) 형태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 질병과 신경정신 질환이 급증하면서 의료진의 영향이 직접 미치지 못하는 일상생활 속 치료 영역이 디지털치료제의 수요로 떠오르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8월까지 미국 FDA는 디지털치료제 8개를 승인했다. 당뇨병, 암, 조현병, 천식, 약물중독, 공황장애 등 환자 개개인의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병이 치료 대상이다. 


환자 상태 변화를 포착해 약 투여량을 계산해주거나 인지·재활 치료 목적의 행동 요령을 알려주는 식이다. 초소형 센서를 담은 조현병 알약도 허가 받았다. 일본 오츠카제약과 미국 프로테우스 디지털 헬스가 함께 만든 이 약을 먹으면 센서가 위액과 만나 전기신호를 만들어내고, 이 신호가 환자가 착용한 전자기기를 통해 의사에게 전송된다. 


국내 바이오기업들도 디지털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라이프시맨틱스는 암 환자 스스로 몸 상태를 관리하는 모바일 플랫폼을, 와이브레인은 미세한 전류를 발생시켜 뇌에 자극을 주는 소프트웨어를, 뉴냅스는 뇌손상에 따른 시야 장애를 치료하는 가상현실(VR) 프로그램을 각각 개발하고 있다. 


디지털치료의 핵심은 개인이 생산한 건강 데이터가 의료 서비스의 중심이 되는 데 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때문에 사용 중인 자가격리 앱이 디지털치료의 보편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시각이 나온다. 개인이 스스로 앱을 통해 매일 증상을 확인·보고하고, 보건당국이 이 데이터를 방역에 활용하는 방식이 디지털치료제가 그리는 미래 모습과 비슷하다는 점에서다.


의료의 디지털화는 진단·치료 보조 영역으로도 폭넓게 확대되고 있다. 미국 페어 테라퓨틱스는 마약이나 알코올 중독 환자들에게 욕구 관리 요령을 알려주며 절제 상태를 유지하도록 돕는 앱을 내놓았다. 미국 인비절라인은 치아 구조를 디지털로 재현하는 3차원 스캐너를 출시했다. 본 뜨는 과정이 필요 없어 환자들의 불편 해소는 물론 감염 위험도 낮출 수 있다. 미국 코그노아는 발달장애아동을 조기 진단, 치료하는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디지털 의료는 아직까지 초기 단계다. 의료진이 환자와 직접 마주하지 않는 디지털 진단·치료가 활성화하려면 결국은 원격의료 체계가 갖춰져야 한다. 코로나19 확산에 따라 세계 각국에선 원격의료를 활용하는 움직임이 확산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NYT)는영국의 한 원격의료기기 업체의 서비스 수요가 매주 100%가량 늘고 있다고 전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3월 “가능한 1차 병원의 진료를 모두 원격으로 하라”고 권고한 데 따른 변화다. 미국은 원격의료에 대한 보험 재원을 마련했고, 홍콩 언론도 공공의료의 대안으로 화상진료를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