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드라마 <의사요한>에서 유전성 희귀질환 `파브리병`이 소재로 다뤄져 관심을 모았다.

 

지성이 연기한 마취통증의학과 의사 `차요한`은 환자가 겪는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 복부 통증, 각막 혼탁, 무한증, 혈관각화종 등의 증상에 대한 집요한 추적 끝에 파브리병을 진단해낸다.

 

파브리병은 전체 인구 10만 명당 1명 꼴로 발생하는 희귀질환으로, 그만큼 드라마를 통해 이 질환을 처음 접한 사람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이 낯선 질환을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서는 드라마 속에 그려진 파브리병의 모습과 실제 진료 현장에서의 진단 및 치료 과정을 비교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파브리병은 당지질 대사에 필요한 `알파-갈락토시다제 A`(α-galactosidase A)라는 효소가 선천적으로 부족해 발생하는 질환으로, 혈관벽에 당지질인 `GL-3`(globotriaosylceramide)가 쌓여 조직과 기관의 기능을 손상시키는 질환이다.

 

질환의 초기 증상은 드라마 속의 환자가 겪은 손과 발이 타는 듯한 통증, 무한증, 복부 통증, 혈관각화종, 각막 혼탁 등이 대표적이다.

 

◆ 의심 증상 및 진단 방법, 유전 질환으로써 가족 스크리닝의 필요성

 

드라마에서 차요한은 환자의 증상을 바탕으로 파브리병을 의심한 후 가장 먼저 `신장 생검`을 지시한다. 하지만 파브리병 진단을 위해서는 일차적으로 혈액 검사를 통해 알파-갈락토시다제 A 효소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효소 수치를 우선적으로 파악한 후, 필요에 따라 유전자 검사를 진행해 질환을 확진한다.


드라마에서 차요한은 마취통증의학과 의사였다. 하지만 실제로 파브리병에 대한 의심 및 진단은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마취통증의학과 보다는 내과(신장내과 또는 심장내과), 소아과, 피부과, 안과, 신경과 등 파브리병의 주요 증상과 연관된 진료과에서 이루어진다.

 

GL-3가 지속적으로 축적됨에 따라 환자들은 신장, 심장, 뇌혈관계 등 전신에 다양한 증상을 나타내게 되는데, 그중에서도 특히 40~60%가 좌심실 비대, 부정맥, 협심증 등 심장 관련 질환을 겪고, 10대에서 20대 사이에 단백뇨, 미세알부민뇨 등으로 신장 손상을 경험한다. 따라서 원인 불명의 신장, 심장 및 신경계 질환을 앓고 있는 경우라면, 가까운 대학병원에 내원해 전문의와 상담하는 것이 필요하다.

 

파브리병은 X 염색체 관련 열성유전을 하는 유전성 질환이다. 따라서 가족력을 바탕으로 환자가 새롭게 진단되는 경우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가족력(환자의 형, 누나, 어머니)이 파브리병 확진에 주요한 단서가 됐다. 이와 같은 특성으로 파브리병 환자가 발견되면, 추가로 다섯 명의 환자가 진단될 수 있다고도 알려져 있다.

 

◆ 효소대체요법(ERT) 치료 및 효과

 

파브리병은 효소대체요법(ERT) 치료를 통해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하다. 이는 진단이 돼도 치료제가 없어 안타까운 상황을 겪는 다른 희귀질환에 비하면 매우 다행스러운 점이다. 미국 및 유럽의 승인을 획득한 ERT 치료제 `파브라자임`(성분명: 아갈시다제베타)은 환자 체중 1kg 당 1.0mg을 적정 용량으로, 주입 속도 0.25mg/min(15mg/hour) 이하로 격주마다 투여해야 한다.

 

극중 주인공은 ERT 치료제를 확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하고, 드라마에 극적 효과를 주고자 우여곡절 끝에 구한 ERT 치료제를 주사로 한 번에 밀어 넣는다. 다만 이는 치료제 투여 방법에 대한 오해를 일으킬 수 있으며 주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추가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ERT 치료제를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점을 덧붙이고 싶다.

 

ERT 치료제 파브라자임은 임상 연구를 통해 효소 부족으로 체내에 축적되는 당지질 GL-3의 제거 효과를 입증했다. 20주간 58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연구 결과 파브라자임을 투여한 29명의 환자 중 69%에서 신장 혈관내피세포의 GL-3 제거가 확인됐으며, 이와 같은 제거 효과는 심장 및 피부의 혈관내피세포에서도 일관되게 나타났다.

 

더불어 신장 및 심장, 뇌혈관계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나 임상 증상을 지연시키는 것으로 입증됐으며, 10년간 파브라자임 바탕의 장기 치료를 진행한 파브리병 환자 52명 중 42명(81%)이 신장 투석이나 이식, 심장 관련 사건, 뇌졸중, 사망 등 중증의 임상 사건을 겪지 않은 것이 확인됐다.

 

◆ 파브리병 조기 진단 및 치료의 중요성

 

특히 강조되는 점은 ERT를 통한 조기 치료이다. 10년의 장기 연구에서,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 신장 손상이 적은 환자가 가장 큰 치료 효과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파브라자임을 통한 조기 치료는 신장 기능 안정화 외에도, 심장 기능을 개선하며 뇌졸중 발생 위험도 안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소아 파브리병 전문가들은 파브리병 변이 유전자를 보유하고 있는 남아에게는 증상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을 지라도, 8세에서 10세 사이에 ERT 치료를 시작하는 것을 권유한다.

 

ERT를 통한 조기 치료의 예후가 긍정적인 만큼, 조기 진단은 파브리병 치료의 핵심이라 일컬을 수 있다. 하지만 드라마 속에서도 파브리병의 가능성에 대해 의사들 간 의견이 분분해 진단이 늦어졌던 것처럼, 낮은 질환 인지도와 비특이적인 다양한 증상으로 진단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환자들은 증상에 따라 여러 진료과를 전전하다 확진 시까지 길게는 15년 가량 소요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에서도 파브리병 진단 환자 수가 약 200명 정도로 알려졌으나, 전체 인구 고려 시 아직 미진단된 환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처럼 원인 모를 고통에 시달리는 파브리병 환자가 생기지 않도록, 파브리병을 조기에 발견하기 위한 의료진 간의 다학제적 접근 및 정보 교류와 활발한 유전상담 등의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대만 및 미국 일부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신생아 스크리닝을 도입하는 것도 고려해볼 만하다. 보통 파브리병은 남성 기준 4만 명당 1명 정도의 발생 빈도를 보인다고 알려졌으나, 신생아 스크리닝을 시행하는 대만에서는 남성 기준 1천 6백 명당 1명 꼴로 파브리병 환자가 진단되고 있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통해 질환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으니, 그만큼 미진단된 환자가 발견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기를 기대해 본다.


http://medipana.com/news/news_viewer.asp?NewsNum=245422&MainKind=A&NewsKind=5&vCount=12&vKind=1